봄은 버드나무 가지 끝에서 돋아 온다고 한다.
버드나무는 북반구에 넓게 분포하며 한반도에만 40종류가 넘는단다. 갯버들, 냇버들, 떡버들, 왕버들, 수양버들 등등…. 그것들은 예부터 인간 생활에 용해되어 수많은 민속을 나았고, 시가와 회화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생활과 친근한 나무이다. 그리고 버드나무는 사람을 만나면 허리를 숙이는 처신이 몸에 잘 배어 있다.
누구를 만나도 먼저 몸을 굽히는 수양버들은 잘 조련된 선비정신의 교련사 같다. 그리고 특히나 낮고 습한 땅을 즐긴다. 자신을 낮추고 물과 교분할 줄 안다는 말이 된다.
우리 문학의 단골 소재는 소나무지만, 대중가요·가곡·판소리 등에서는 버드나무의 출현 빈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버들가지를 문간에 달아 잡귀신을 막는다. 우리나라도 오월 버들가지가 귀신을 물리친다 하여 울에다 버드나무 단을 올린다. 청명에 버들 햇잎으로 차를 우리면 모든 재앙이 사라진다고 한다.
버들가지는 기우제(祈雨祭)에도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마을 앞 버드나무 노거수는 당연히 신목(神木)으로 받들어진다. 버들꽃은 소양제 효과가 있다. 또한, 정수(淨水) 작용이 탁월하므로 예부터 후원의 연못가나 우물가에 즐겨 심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뭇가지들이 위를 향하는 것과는 달리 버드나무는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늘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능청거리기까지 하기에 요염하다. 금빛 노을을 받으며 강둑에 서 있는 버들이 마치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돌아선 여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길고 부드럽고 윤기 나는 여인네 머리칼을 유발(柳髮)이라고 한다. 가지가 가늘어 미인의 허리를 상징하는 수양버들을 세류(細柳)라고 한다. 여인의 가는 허리를 유요(柳腰)라고 하고, 미인의 눈썹을 유미(柳眉)라 한다. 이 외에도 사내를 상대로 살아가는 여인을 화류(花柳), 여인의 교태를 유태(柳態), 예쁜 모습을 유용(柳容)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버드나무가 여인의 모습이 된 것은 부드러운 속성 때문일 것이다. 옛날 평안도 사람들의 기질이 너무 강인하여 정서를 순화시키기 위해 평양에 수양버들을 많이 심었고, 그래서 평양을 유경(柳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결과 평양에는 풍류객이 많이 나게 되었다나?
버드나무는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자랑한다. 물가 어디서나 잘 활착한다. 심지어 몸통을 잘라 물속에 던져도 보란 듯이 살이 돋는다. 버드나무는 거꾸로 꽂아도 뿌리가 내린다고 한다. “여자 팔자, 버들 팔자”라는 말도 있다. 버드나무나 여자는 아무렇게나 던져 놔도 잘 살아간다는 말이다. 한번 심어두기만 하면 어느 곳에서나 그런대로 살아간다.
그처럼 여자는 별달리 보호받지 않아도 잘 버티는 강인함이 있어 버드나무를 닮았다는 뜻이다. 또한, 버드나무는 마을 앞 강이나 호숫가에서 연둣빛 긴 가지를 떨며 지나는 바람을 붙들고 한바탕 춤을 춘다. 그러다가 헤어지게 되면 ‘묏버들 가지 꺾어 님의 손에’ 보내는 것이다.
순흥 벽화고분에도 버드나무가 등장한다. 최근 영주댐 가장자리도 온통 버드나무밭이 되어 간다. 혹 버드나무 행운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암시는 아닐까?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어머니가 ‘유화(柳花)부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왕비로 삼은 우물가 17세 오씨 여인이 또한 유화(柳花)이다. 왕건이 회군하면서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청했을 때 여인이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하나 띄워서 건넸다.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버들잎을 불면서 천천히 마시라’는 사려 깊은 뜻을 값지게 산 것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도 버들잎 3개를 띄운 우물가 강씨 여인을 그의 둘째 왕비로 삼았다.
버들개지 피는 봄소식에도 옆구리 허전한 여인이여! 버들가지 하나 뚝 분질러 창가에 꽂아두고 밤새 간절히 기다리든가, 차리고 우물가에 나가 종일토록 버들잎 띄운 물바가지 하나 들고 서 있어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