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9] 부석사, 108 계단을 오르며 <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 오피니언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 [9] 부석사, 108 계단을 오르며

2022. 03. 18 by 영주시민신문

부석사를 향한다. 순흥 청다리를 지난다. “니는 순흥 청다리에서 주 왔데이.” 엄마 말을 떠올린다. 유년 시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겁에 질려 울음을 뚝 그쳤던 기억이며, 서러웠던 지난날들이 뇌리를 스친다. 이런 일화와는 달리 청다리를 무량청정(無量淸淨)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보는 분들도 있다. 불가에서 무량청정불은 아미타불을 의미하고, 무량청정토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라고 한다.

청다리는 바로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정토로 들어가는 다리요,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저어가는 배라고도 하겠다. 예부터 나무나 돌에 금을 그어 신성한 것을 선포하는 것처럼 영주사람들은 부석사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나라를 설정하여 세상의 시름을 잊고 살고 싶은 염원을 나타낸 것이니, 다리를 지나는 마음이 새삼 아련해진다.

첫 시집 「집에 돌아와 불을 켜다」를 내면서 수없이 부석사를 오르내렸다. 새벽과 낮, 저녁을 가리지 않고 부석사를 오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땐 주로 한 석공의 시각에서 부석사를 바라보는 시편들을 썼다. 석공의 시각에서 바라본 의상과 선묘, 무량수전과 저녁노을에 관한 시편들을 쓰면서 밤을 샜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석사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는 떨림이 없이는 써내려갈 수가 없다.

사바의 능선들을 바라보니/ 공양의 저녁연기들이/ 슬금슬금 산기슭을 오릅니다./ 당신은 아마 저녁을 들며/ 강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하루 일들을 건네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가람은/ 지는 해를 감추며 묵시의 손을 내밀어/ 화두(話頭)를 내어놓듯이, 툭/ 노을을 던집니다./ 이런 날은 막새기와를 내려/ 산문 뜰에 가득한 백일홍 대신에/ 무덤덤한 당신을 새겨서/ 뒤란 추녀에 올리고 싶습니다(졸작 ‘부석사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앞부분).

「내 손안의 부석사」의 저자 배용호님은 부석사를 대표적 산지형 가람이라고 하면서 기승전결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찰 입구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 공간이 기(起)라면, 천왕문에서 범종루 앞까지가 전개 공간인 승(承)에 해당하고, 여기에서 축이 꺾이면서 전환점이 되는 안양문까지가 전(轉)의 공간이며 안양루와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하므로 결(結)에 속한다고 했다.

석축은 모두 9단으로 돼 있는데 불가의 구품연대를 상징하며, 계단은 108개로 돼 있으니 불가의 숫자 108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구조화 시켰다고 하겠다. 아무래도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건축의 심오한 뜻에 더하여 몇 가지 생각을 더하면 좋을 것이다.

무량수전을 오르는 계단은 생각보다 가파르다. 아마 세속의 삶이 가파르고 힘든 것임을 계단에 새겨 넣은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이란 천상을 향하여 쉼 없이 달려가는 것보다는 가끔씩 돌계단에 앉아 쉬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류창수님이 쓴 것처럼 크고 작은 돌을 생긴 형태대로 면을 맞춰 쌓고 그 사이사이 작은 틈서리에는 자잘한 돌을 끼워 넣고 층의 형성 없이 ‘막돌 허튼층’으로 쌓은 석축을 보면서 자잘한 것과 큰 것의 조화를 느끼기도 하며, 부분이 전체요, 전체가 부분인 우리네 삶도 생각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108 계단을 올라가면서 천상을 향하여 땀범벅이 돼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과정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지긋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뜻을 새길 수도 있다.

계단을 오르면서 무조건 앞만 보고 가서는 안 된다. 아홉 단의 석축이 있는 곳마다 계단이 끝이 나는데 그때마다 뒤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계단의 높이에 맞는 풍경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은행나무와 사과나무가 보이지만 올라가다 보면 여행객의 눈높이에 따라 아스라이 소백산이 나지막하게 보이면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보일 듯하다.

신기한 것은 계단을 오르면서 돌아보는 풍경이 내려보거나 올려보지 않고 그냥 눈높이쯤으로 봐야 안성맞춤이다. 더하거나 덜할 것도 없이 그쯤이 가장 적절하다. 108 계단은 그렇게 말한다. 헉헉대며 정신없이 살아서는 안 된다. 가끔은 뒤를 돌아보면서 삶을 돌아보되 그렇다고 너무 아래를 보면서 교만하거나 높은 곳을 보면서 상처받지 말고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