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8월 12일, 이승만의 하야로 수립된 제2공화국 국회에서 윤보선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것도 대단한 압도적 지지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윤보선의 당선보다 진짜로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대’자도 거론하지 않았던 성균관대 ‘김창숙’ 총장에게 약속이나 한 듯 29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그의 이름을 써낸 것이다. 당시는 후보 등록 없이 존경하는 이의 이름을 국회의원이 써내는 교황선출 방식의 간접 선거였다.
기구한 선비 김창숙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 때는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참형하라는 상소를 올렸고,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탄원서를 보내다가 체포되었으며, 1925년에는 무장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모금하다가 발각되었다.
중국의 쑨원(孫文)에게 한국독립후원회를 만들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이런 투쟁들로 인해 그는 경찰서를 자주 드나들었고, 고문으로 다리가 마비되었다. 1945년 8월에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광복을 맞았던 김창숙은 이른바 선비정신으로 무장된 꼬장꼬장한 선비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집도 없이 허름한 여관과 병원을 오가는 고단한 81세 노 선비의 이름이 제2공화국 대통령 선거 개표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동서고금 막론하고 덕망을 갖춘 지도자가 존경받았다. 대통령 선거는 자격고시가 아니며, 만물박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도 하나의 자연인이다. 따라서 각계 전문가 의견을 망라하여 국정운영을 빈틈없이 챙기는 일이 직책상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중을 홀려 내는 화려한 화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계의 의견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인성이 훨씬 중요한 대통령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는 “작금의 선거판이 무슨 격투기장을 방불케 한다.”고 비아냥거린다. “덕목 검증은 어디 가고, 큰 소리로 잘 받아치는 자에게 함성을 보내는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고 걱정한다. 이럴 땔수록 뚝심 있는 옛 선비의 절개가 간절해진다.
선거 합동 TV토론이 채택된 지 올해로 25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원숙해질 만도 하건만 아직도 함량이 부족하다. 선진국의 토론이 주로 정책 이슈에 초점을 둠에 비해, 우리의 토론은 주로 정치 공방에 매달려 있다. 오죽했으면 ‘토론하면 싸움밖에 안 난다’고 했을까? 말솜씨를 고르는 게 아니라 일솜씨를 골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잠시 잠깐 국민을 현혹하는 현란한 말솜씨는 지도자의 덕목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대통령은 특별히 도덕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모두 길을 잃게 된다.”라면서 은연중에 선비정신을 내비치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벌써 열 명이 다 돼가지만, 이들이 예전의 선비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인격적으로 썩 훌륭했다고 내세울 수 있는 대통령이 몇이나 될까?
“선비는 학문으로 인물을 모으고, 주변을 통해서 덕을 키운다.”고 한다. 한국의 선비정신은 세계 수준의 인성 브랜드이다. 국란을 맞아 나라를 구할 의병을 스스로 조직하였고,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내걸었다. 그런 진정한 선비정신의 지도자를 골라내는 안목이야말로 이 시대 유권자들이 갖춰야 할 꼭 필요한 시력일 것이다.
차라리 선비정신실천운동본부가 내세우는 ‘안자육훈(孝․忠․禮․信․敬․誠)’을 이번 선거판에 보내 줄걸 그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