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출신의 가수 박창근이 가요 오디션 결승전에서 자작곡 ‘엄마’를 불렀다. 대단한 가사나 멜로디 없이 엄마라는 말만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라는 말에 눈물을 훔쳤고, 그는 문자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우승을 차지했다. 마스터 중 한 사람은 노래에 엄마가 들어가면 반칙이라고 하면서 따뜻하고 좋은 곡이었다고 했다.
그는 “엄마를 팔아 1등을 했다.”고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은 대리자로 어머니를 보내셔서 우리를 돌보고 지키게 하셨다.” 엄마라는 말 앞에서는 남녀노소가 없다. 누구든지 숙연해지면서 목이 멘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말 중에서 그래도 의미가 변질되지 않고 쓰이는 게 어머니인 것 같다. 아버지에 비해서 왠지 어머니는 신의 영역에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의 의미를 더 지키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영주사람들은 소백산을 어머니를 닮은 산이라고 한다. 소백산은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비바람을 막아주듯이 영주 쪽으로 거세게 다가오는 태풍도 막아주고 폭우도 막아준다. 신기하게도 소백산만 넘으면 그렇게 몰아치던 태풍도 잠잠해지고 폭설도 비켜가는 것이다. 달밭골에서 비로봉을 오를 때, 비로봉 마지막 계단을 오를 때까지는 바람이 없다가도 비로봉에 오르면 특유의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것이다.
소백산은 어머니처럼 영주사람을 감싸면서 비바람을 막아준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안도현 시인은 눈발이 강물에 떨어져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살얼음을 깔았다고 표현했다(겨울 강가에서).
영주 사람 박승민 시인은 노인성 척추 측만증을 앓는 어머니를 지붕에 비유하면서 “밤새도록 내리는 장대비를 맞고 있는/ 한사코 제 등으로 비를 막는/ 어머니의 등뼈”(지붕의 등뼈)로 표현하여 아픈 가운데서도 집을 지키는 어머니의 모습을 노래했다. 소백산은 이러한 어머니 품으로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영주사람들을 감싸고 있다.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 올라 본 사람들은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을 보면서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보통 산에서 기암괴석을 보거나 발아래 펼쳐지는 풍광을 보고 감탄을 하는데 소백산 비로봉은 다르다. 연화봉이나 국망봉으로 가는 길은 완만하여 날카로운 것이 없다.
유순하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고 흐르는 능선은 소백산에서만 볼 수 있다. 비로봉에서 어의곡삼거리로 흘러가는 능선이나 주목군락지로 펼쳐지는 넓은 초지는 이미 큰 산 봉우리가 아니라 널따란 초원이라고 해야 한다. 이 경이로운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를 소백산을 산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다.
부드러운 능선이나 넓고 푸른 풀밭, 산정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야생화나 헐벗었으나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주목을 사시사철 품에 안고 살아가는 소백산의 모습은 바로 어머니의 모습인 것이다. 부드러우나 쉽게 부러지지 않고, 겨울 내내 내리는 눈발에 무너질 것 같으나 고매한 정신으로 겨울 산에서 번쩍이는 소백산의 모습은 모진 세월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견뎌내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소백산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저녁에 구름이 있어 별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한밤중에 누군가 급하게 깨워서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소백산 산정에서 보는 별은, 본다는 말보다는 그냥 내게로 쏟아진다는 표현이 바른 말일 것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능선이 온 몸으로 받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은 우리 어머니들의 굽은 등을 닮았다. 소백산은 그 굽은 등 안에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소백산은 사람들이 사는 집과, 집과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낳았다. 길을 걸으면서 만든 문화를 낳고 영주사람들은 낳은 것을 길러냈다. 어머니에게서 모든 생명이 흘러가듯이 소백산의 품에서 영주사람들이 몸으로 써 내린 역사와 인물과 문화도 숨 쉬면서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