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 선조에게 지어 올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는 사실상 왕사(王師)였던 퇴계가 새로 등극한 어린 국왕에게 국정 방향을 잡아주는 일종의 통치 인성의 교본이었다.
“숭정대부(崇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주: 종1품) 신(臣) 이황은 삼가 재계하고 두 손 모아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 전하께 아룁니다. 추론해서 6조로 나눈 글을 전하께 바치오니, 가까이 두고 경계의 말씀으로 삼는 데 약간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겠는지요?
① 繼統(계통, 임금의 대를 이음)을 중히 하여 인효(仁孝)를 온전히 하소서. ② 讒訴(참소, 헐뜯어서 죄를 고함)와 이간을 막아서 양궁(兩宮, 주: 명종과 선조)을 친근하게 하소서. ③ 聖學(성학, 성리학)을 돈독히 하여 정치의 근본을 확립하소서. ④ 道術(도술, 이치의 길)을 밝혀 인심을 바로잡으소서. ⑤ 腹心(복심, 깊이 신뢰함)에게 맡기시고 이목(耳目)을 통하게 하소서. ⑥ 眷愛(권애, 사랑으로 보살핌) 수양과 반성을 성실히 하여 하늘의 권애를 받으소서.”
68세인 퇴계 이황이 손자 벌인 17세 선조에게 제왕(帝王)의 길을 제시하며 왕도정치를 실현하라고 한 내용이다. 형이상학적 관념적인 말로 점철돼 있다. 퇴계는 그해 12월 선조 임금에게 무진육조소와 맥락이 비슷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또 지어 올린다.
<성학십도>와 <무진육조소>는 실천하는 지성으로서의 퇴계 면모가 오롯이 드러난 상소이다. 선조는 이것을 천고의 격언, 당금(當今)의 급무로서 한시도 잊지 않을 것을 맹약했다고 한다.
1557년 단양군수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의 '민폐10조소'는 그가 부임한 단양 고을의 참혹한 현실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거진 잡초와 험한 바위 사이에 있는 마을 집들은 모두 나무껍질로 기와를 대신하고 띠풀을 엮어 벽을 삼았으며 전지(田地)는 본래 척박해서 수재(水災)와 가뭄이 가장 먼저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항산(恒産, 고정 수입)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 연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단한 민초(民草)들의 삶이 절절하다. 여기서 그는 단양을 살리기 위한 상·중·하책 대안을 제시한다. ① 10년 동안 부역과 조공을 면제하여 백성을 살려내는 것이 상책(上策)이며, ② 군(郡)을 혁파하여 현(縣)으로 강등시켜 아직 살아남은 백성들을 다른 고을로 옮겨가게 하는 것이 차책(次策)이요, ③ 이 둘을 모두 선택할 수 없다면 마지막 하책(下策)으로 10가지 항목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그런데 상책과 차책의 두 정책은 당시 상황으로는 채택되기 힘든 이상론에 가까웠다. 금계의 상소는 이어진다.
『부역에 나갈 수 있는 가구가 40호도 되지 않고, 한 집이 100호의 부역을 부담합니다. 힘껏 밭 갈고 농사지어도 세금과 부역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자는 병들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흩어져 땅은 텅 비었습니다. 농토와 마을을 버리고 찬 이슬을 맞으며 산속에서 살다가 승냥이나 살무사에 물려 죽어도 돌아오려 하지 않으니 온 고을이 폐허가 돼버렸습니다. 마을은 가시덤불로 덮이고 인가에 연기가 나지 않아 전쟁이 난 뒤보다 더 참혹합니다.』라며 읍소했다.
당시 이 상소는 상당한 반향을 불렀다. 중신들이 단양 고을만 특혜를 줄 수 없다고 반대했으나 국왕은 마침내 주청을 받아들여 10년 동안 20여 가지 공납과 세금을 특별 감면했다.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흩어졌던 백성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고을이 되살아난 것은 물론이다.
금계의 상소가 관철될 수 있었던 것은 유려한 문장도 일조했다고 한다. “이 상소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관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460년이 지난 지금이어도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이다.
이로써 금계는 단양 고을을 나락에서 구해낸 불천의 수령이 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중종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회재나, 명종을 직설적으로 심하게 꾸짖어 깨치게 한 남명에 비해, 퇴계는 큰 어른다운 어조로 선조를 이끌었고, 금계의 상소문은 눈물로 호소하여 국왕의 가슴을 파고든 상소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