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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시인)

김신중의 영주 톺아보기[3] 말은 빛이다

2022. 01. 20 by 영주시민신문

말이 퍼지다. 말이 많은 사람이나 여러 곳에 전해진다는 뜻이다. 머릿속에 있는 말이 입으로 나와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서 여기저기 퍼져 나간다. 머릿속에 있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정리돼 있지도 않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있다.

이게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입을 통해서 나가게 되면 사람들이 듣기도 하고 들은 것을 옮기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말이 입을 통해서 퍼져나가게 되면 들으면서 상상력으로 보는 것처럼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렇게 말에 대해서 요모조모 뜯어보면 말이란 게 여간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로고스(logos)라는 말이 있다. 백과사전에는 로고스를 말, 논리, 이성으로 풀이한다. 논리(logic)라는 말의 어원이 로고스니, 로고스는 논리적인 말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어린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도 뜻이 있고 이치가 있다. 좀 쉽게 말하면 말이 된다. 말이 된다는 것은 말이 논리적이어서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로고스에 있는 말의 풀이 중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 있다. 말이란 게 머릿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말로 입 밖으로 나오게 되면 뜻을 우리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둠 속에 있는 것이며 보여준다는 것은 밝은 빛에 드러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머릿속에 있는 말은 어둠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그것이 입을 통해 나오게 된 말은 빛과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김춘수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말’을 시 ‘꽃’으로 명쾌하게 표현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처럼 어둠 속에 있으니 어떤 모습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꽃이라고 말을 하는 순간 꽃이 어둠 속에서 드러나면서 꽃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밝은 빛 가운데 서게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말은 빛이다. 상대방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어두운 마음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말을 잘 하면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환하고 시원하게 한다. 반대로 어두운 말을 내뱉는다면 안 그래도 답답한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말하기에 따라서 우울한 마음을 기쁘게 할 수도 있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답답하고 음울하게 할 수도 있으니 빛의 의미를 가진 말의 중요성을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을 향하여 사랑이나 감사를 말하면 아름다운 결정체를 만들고, 분노의 언어나 비속어를 말하면 물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파괴된다는 책도 있었다. 물도 말에 따라서 반응이 다른데 예민한 사람들의 가슴이야 오직 하겠는가?

빛은 따뜻하다. 빛은 어둠을 물리치고 사물을 세상에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물을 따뜻하게도 한다. 빛이 비취면 얼음이 녹고 나뭇잎이 자란다. 말도 빛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환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빛을 내는 말은 사람들의 온도를 높여준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에는 말의 따뜻함에 대한 많은 글이 있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따뜻한 말은 삶의 온도를 높여주고,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작자미상으로 전해 오는 시조가 있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우리 선조들의 경계를 드러내는 시조다. 어쩌면 말은 경계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하면 빛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

말을 잘못하면 도끼가 되고 칼이 된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끼나 칼을 잘못 사용하면 사람을 다치게도 하지만 잘만 쓰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이처럼 생각의 온도를 높여주는 말, 얼어있는 사람들을 녹여주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면 우리 삶의 온도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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