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은 미국 출신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저서이다. 그는 한국명을 ‘이만열’이라고 쓰고, 한국에 살고 있다. 예일대, 대만대, 동경대를 거쳐 하버드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2020년에는 미국 대통령에 출마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최고 브랜드로 「선비정신」을 꼽고 있다. 「선비정신」이라 함은 물질을 탐하지 않고, 권력 앞에 굴하지 않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성품을 말한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던 임진왜란과 독립운동을 거치면서 한국의 「선비정신」은 잘 증명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을 좀 안다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이런 「선비정신」을 만들어온 한국인들의 의지에 놀라고, 이런 위대한 「선비정신」을 가공하지 않은 한국인들에 다시 놀란다고 한다.
나라는 각기 특유의 민족정신을 지니고 있다. 국가 브랜드이다. 그리고 그 브랜드를 바탕으로 단결하게 된다. 영국은 ‘신사도(紳士道)정신’, 미국은 ‘개척정신’, 독일은 ‘장인정신’, 중국은 하다못해 대륙다운 ‘만만띠(漫漫的)’정신이라도 있다. 일본 또한 ‘무사도(武士道)정신’으로 무조건 똘똘 뭉치고 있다.
한국은 왜 그런 정신이 없을까? 한국의 민족정신은 없었던 게 아니라 찾지 않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정옥자 위원장도 「선비정신」은 한국적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한다.
지금 사회는 철학이 사라지고 쾌락이 득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신 나간 사회가 된 것이다. 정신이 돌아오게 하기 위한 대안은 「선비정신」뿐이다. 「선비정신」이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게 아니라, 가공하지 않았고,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선비정신」은 한국의 교육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또한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상품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작 ‘선비의 고장’ 영주 사람들은 「선비정신」을 고리타분한 무엇으로 치부하고, 「선비정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꼰대로 몰아세운다.
경남 산청군은 「한국선비연구원」을 세워 남명(南冥)의 선비정신을 연구·교육하고, 남명선비문화축제를 45회나 개최하면서 자신들이 ‘선비의 고장’이라며 남명을 등에 업고 다닌다. 안동은 안동대로 정조대왕이 ‘추로지향’으로 안동을 지정했다며 자신들이 ‘선비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영주가 ‘선비의 고장’을 포기하는 날 얼싸 좋아할 지자체가 전국에 수두룩하다는 뜻이다.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선비와 「선비정신」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들 식민통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강제 통폐합 때는 선비고을의 전통마을은 철저히 배격시켰다. 부(府)-목(牧)-군(郡)-현(縣)이 조선의 행정구역 체계인데도, 영해도호부를 영덕현에 강제 통합시킨다든가, 순흥부를 영천군(榮川郡)이 흡수하도록 배치한 개편이었다. 퇴계의 예안현은 더더욱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계종택을 두 번이나 불 질렀던 일제였다. 행정 읍치(邑治)만이 아니라 선비 동네에는 도로, 철로를 배치하지 않는 등 철저한 고립 정책이었다. 또한, 선비들의 부정적인 면만 들추어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 교과서로 식민지 백성들을 철저히 쇄뇌시켰다. 이렇게 세뇌된 학교가 똑같은 내용을 후손들에게 되풀이하는 참담한 교육현장이다. 누구 하나 일제가 증여해준 엉터리 지명이나 사관을 바로 잡으려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전 세계로 나가야 할 민족의 브랜드이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서는 선비에 관한 책자를 만들어 놓고는, 그 ‘추천사’를 받기 위해 영주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영주 사람들은 제대로 기억해주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