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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호의 문화확대경

배용호 (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배용호의 문화 확대경[210] 선비의 반려식물, 난초(蘭草)

2021. 07. 08 by 영주시민신문

난초만큼 이야기보따리가 두툼한 식물도 많지 않다. 지조, 우의, 정녀(貞女) 등 ‘얼굴’도 천 가지다.

그래서인지 어느 집을 방문해도 난초 화분 몇 분은 쉽게 볼 수 있다. 인사철이면 기업, 관공서마다 축하 난이 성시를 이룬다. 난 애호가(愛護家)만도 100만 명이나 된단다. 얼마 전, 얘깃거리가 하나 더 보태졌다.

춘란 경매에서 14촉짜리 난 분 하나가 7400만 원에 낙찰됐다는 이야기이다. 국내 최고 기록이다. 예전에는 난 화분이 정말로 금수저였는데, 요즘은 정치권, 재계, 일반 회사 등에서도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에 난 화분 선물이 일상화되었다.

난을 선물하기 시작한 정확한 유래는 없다. 그저 고려 시대부터 난을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보일 뿐이다. 우리나라 정치권 등에서 난을 선물로 보내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이후인 듯하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는 가격이 비싸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1990년대 대만 등지에서 보세란이 대량 수입되면서 대중화되었다고 본다.

난 화분을 선호하는 것은, 꽃말이 ‘지조와 절개’이고, 난을 치면서 자신를 수양했다는 선비들의 고등 반려식물이었으며, 특히나 향이 그윽하다는 점이 꼽힌다.

난향은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댄다고 맡아지는 그런 헤픈 향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매력이다. 일찍이 성삼문은 난 향기의 가치를 다른 열 가지 종류의 꽃향기를 능가한다고 했다. 그리고 난은 우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주역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基利斷金 同心之言 基臭如蘭]” 구절에서 ‘금란(金蘭)’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래서 「금란지교(金蘭之交)」,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말이 우정을 일컫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로 발탁되었다.

난초는 그 모습이 고아(高雅)할 뿐 아니라 줄기와 잎은 청초하고 그윽하여 어딘지 모르게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기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난초의 이러한 모습을 군자나 고고한 선비에 비유했다. 난초가 사군자 등 군자로 존칭됨은 속기(俗氣)를 떠난 골짜기에서 고요히 남몰래 유향을 풍기는 고귀한 모습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군자를 지향하는 학자의 곁에는 난초 화분 하나쯤 놓여 있어야 제격이었다. 그 화분에는 자기의 형상과 난의 모습을 일치시켜보는 것으로서 군자의 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선비의 고결한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구매하는 카네이션은 ‘효도’의 대명사로 통한다. ‘성년의 날’이나 ‘부부의 날’에는 장미로 마음을 전한다. 나리꽃 향기가 초등학생의 시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아이에게 반려동물보다 반려식물로 난을 추천한다면 훨씬 더 차분하고 깊이 있는 심성이 길러지지 않을까. 함께 물을 주고 말을 걸고 계절의 시계에 맞춰 식물을 반려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도 난처럼 향기롭고 은근해질 거란 생각이 든다. 어린 선비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는 “지초(芝草)와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중단하는 일이 없고, 군자는 도를 닦는 데 있어서 곤궁함을 이유로 절개나 지조를 바꾸는 일이 없다.”라고 적고 있다. 군자의 반려자가 난초라는 뜻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난초를 사군자의 으뜸으로 당연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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