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대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신재 주세붕(周世鵬)이 풍기군수를 역임할 때 순흥 출신 고려 유학자 회헌 안향(安珦)을 흠모하여 설립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서 출발한다. 그가 1542년에 안향의 사묘(祠廟)를, 1543년에 백운동서원을 설립했고, 이를 다시 퇴계 이황(李滉)이 명종으로부터 『紹修書院』이라는 친필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학교로 치자면 하버드대학보다 93년이나 앞선 고등교육기관이 이곳 순흥에 설립된 것이다. 그래서 유림(儒林)에서는 소수서원을 수서원(首書院)이라 칭한다. 으뜸서원이라는 뜻이다.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서원의 시초를 제공하였으며, 서원 건설의 본보기가 되었고, 또한 서원 입지선정과 공간구성의 기준점을 제시한 측면도 있다. 그리고 상처 난 백성들의 가슴을 치유하고, 현실세계 너머 이상세계를 연결해 주는 신성한 공간으로서 그들의 꿈을 응원하는 카운슬러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공로라고 할 수 있다. 서원은 성현(聖賢)을 기리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진 사설 교육기관이다. 관료양성 중심의 중국의 서원과는 달리, 한국의 서원은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서원 교육은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성현을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성현의 모든 것이 유생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셈이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타고 난 본성을 회복하는 일에 초점을 두었다. 이처럼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전당은 한때 1000개 가까이 설립되어 조선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 나라의 축을 담당했던 서원의 외양은 오히려 소박하고 검소한 편이다. 의도적으로 건물을 작고 수수하게 지은 것이다. 신재가 지은 소수서원 원규에도 “제사를 정성으로 받들 것, 어진 이를 예우할 것, 사당을 수리할 것, 창고를 잘 준비할 것, 서책을 점검할 것” 등으로 그야말로 소박하고 실질적인 내용을 규칙으로 삼고 있어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선비들은 책에서만 배움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할 때는 물론, 문을 드나들고,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선비들의 마음자리가 서원 곳곳에 남겨 두고 있는 것이다. 서원의 모든 공간에 교육 철학과 수련 목표가 담겨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비들은 배움의 목표를 강당의 당호(堂號)로 새기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도산서원의 ‘전교당’, 돈암서원의 ‘응도당’, 남계서원의 ‘명성당’처럼 소수서원의 ‘명륜당’은 교육을 행함으로 인륜을 밝히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직방재, 일신재도 마찬가지다. 학구재, 지락재도 매 한가지이다. 이런 다짐으로 400여 년을 지속해 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자산이자, 정신문화의 산실인 서원은 현재 전국에 600여 개가 분포하고 있다. 그 중 9개 서원이 이번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 두고 있다.
한국의 서원은 특히 명현을 제사하고 인재를 양성하면서도, 조선조 양반문화의 선비정신을 오롯이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선비정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이어져 내려오는 귀중한 유산으로 정착되어 현재까지도 선비정신을 계승, 교육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 그 자체가 되었다. 조선 선비의 학문과 도덕적 실천, 그리고 지역의 전통과 문화의 정체성까지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을 갖추고 있어 보편적 가치, 진정성(진실성과 신뢰성), 완전성(탁월한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 빼어난 유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수서원을 비롯한 9개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하는 당위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비정신’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정신문화라고 한다면, 그런 선비를 길러내는 곳이 바로 ‘서원’이고, 그런 서원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소수서원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곳 소수서원이 「유교성지」로 선포되고, 「선비도시」로 인증됨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며, 더구나 이곳에서 한국의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한국선비문화축제>가 개최됨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소수서원의 동문들은 4000명이다. 동문회를 개최한다면 쟁쟁한 인사들이 대거 몰려올 듯하다. 학봉 김성일, 약포 정탁, 오리 이원익, 한음 이덕형, 미수 허목, 격암 남사고까지 당대 내로라하는 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안향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스승으로 퇴계 이황 같은 거유가 망라되고, 초대 이사장인 신재 주세붕도 초청 대상이 될 것이다. 나머지 8개 서원의 배향인물인 최치원을 비롯한 이언적, 정여창, 김굉필, 이황, 류성룡, 김인후, 김장생도 이곳으로 봄나들이를 하지 않을까? 소수서원 동문회 모임은 조선 선비들의 질곡을 오롯이 지켜 온 학자수림 솔밭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찌감치 자신의 자리를 선뜻 내주고 뒤로 물러앉은 사찰 숙수사(宿水寺)가 보내는 내공의 박수소리도 함께 들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