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와우형(臥牛形) 언덕 아래 형성된 아늑한 마을 ‘오양골’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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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96]봉현면 오현3리‘오양골’

와우형(臥牛形) 언덕 아래 형성된 아늑한 마을 ‘오양골’

2018. 04. 27 by 영주시민신문

고려 때 절, 오향사에서 유래하여 오향골
동구(洞口) 느티나무와 송대, 마을의 자랑

오양골 전경
와우형 지형

봉현면 오양골 가는 길
오양골은 봉현면사무소에서 서쪽하늘 장군봉 방향 산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봉현교차로에서 봉현면사무소 앞을 지나 좌측길로 접어든다. 자동차전용도로·고속도로 지하차도를 통과하면 신록이 싱그러운 느티나무숲이 보이고, ‘오현3리 오양골’이라 새긴 마을표석이 탐방객을 맞이한다. 지난 15일 오양골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김형길 이장, 남병훈 노인회부회장, 전영희 부녀회장, 오복자 씨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전설을 들었다.

역사 속의 오양골
오현리 오양골 지역은 삼국시대 때는 신라의 기목진(基木鎭), 고려 때는 기주(基州), 조선 태종13년(1413) 기천현(基川縣), 1450년 풍기군(豊基郡)에 속한 마을이었다.

조선 중기(1700년) 무렵 군(郡)의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오양골은 풍기군 와룡동면(臥龍洞面) 흥인동리(興仁洞里,남원·오현지역)에 속했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조선 8도제를 13도제로 개편할 때 와룡동면이 와룡면으로 개칭되고 오향골과 엄고개가 엄현동(奄峴洞)에 속하게 됐다. 1914년 일제(日帝)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순흥군, 풍기군, 영천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풍기군의 와룡면과 노좌면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봉현면(鳳峴面)을 탄생시켰다. 봉현이란 지명은 당시 이곳 선비들이 의논하여 정했는데 히티재 중간쯤에 있는 봉정지(鳳停地)의 봉(鳳)자와 여현(礪峴.히티재)의 현(峴)자를 조합하여 봉현(鳳峴)이라 이름지었다.

또 와룡동면의 엄현동(奄峴洞,오향골·엄고개)과 흥인동(興仁洞)을 합쳐 오현동(梧峴洞)을 새로만들었다. 오현이란 오향골(梧香谷)의 오(梧)자와 엄현동의 현(峴)자를 따 오현동(梧峴洞)이라 했다. 1980년 영풍군 봉현면 오현3리, 1995년 영주시 봉현면 오현3리가 되어 오늘에이르고 있다.

오양골 표석
오양간 안 풍경

지명유래
마을 동구에 있는 표석에 ‘오현3리 오양골’이라고 새겨져 있다. 1984년에 발간된 경북지명유래총람에 보면 「오양골은 오현동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과 같아 오양간(외양간)에 비유하여 ‘오양골’이라 불렀다. 또 고려 때 이곳에 오향사(梧香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화재(火災)로 소실(燒失)됐다고 전한다. 그 후 오향사 절 이름을 따 오향골이라 부르게 됐다」고 기록했다. 2010년에 발간된 영주시사와 영주시청홈페이지 지명유래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다음(daum) 지도에는 오향골로 표기했다. 남병훈(78) 노인회부회장은 “마을 표석에는 오양골로 새겨져 있으나 실제 오향골로 널리 쓰여지고 있다”면서 “송대(松臺)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 형상이 확연(確然)하다. 여기에 살았던 선대님들께서 풍수지리를 잘 알고 ‘오양골’이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근면과 덕의 상징 와우형
소가 누워서 먹이를 먹는 와우형 지형은 “장차 나라를 경영할 큰 인물이 태어나고, 자손 대대로 부(富)를 누릴 명당”이라고 풍수는 말한다.

(댁으로 가서 만난) 박찬동(79) 노인회장은 “뒷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소의 머리(松臺), 소의 목, 소등(뒷산), 허리, 뒷다리에서 꼬리(洞口)까지 소가 누워있는 형상과 꼭 같다”며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기에 살았던 선조님들은 지형을 잘 살핀 후 오양간(외양간의 사투리)에 비유하여 ‘오양골’이라는 이름 지은 것 같다. 예로부터 와우형은 부(富)의 상징이다”고 말했다. 이 마을 오복자(75) 씨는 “오양골 사람들은 근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열심히, 부지런히 일한만큼 빛깔좋고 새콤하고, 야무진 사과를 얻을 수 있다. 땅은 심은대로 거둔다”고 말했다.

동구 느티나무
동샘

마을의 상징 동구(洞口)
마을 마다 동구가 있지만 오양골의 동구는 다르다. 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전영희(66) 부녀회장은 “느티나무 숲에 반해 오양골로 이사 오게 됐다”며 “멀리서 보면 숲의 싱그러움이, 가까이에서 보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다복함이 소복소복 담겨 있는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오양골에서 태어나고 대대로 살고 있다는 이정두(79) 어르신은 “동구에 있는 수령 500년 넘는 느티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이라며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안정 백골에서 오양골로 시집왔다는 박찬자(78) 씨는 “단오날이면 동구 느티나무에서 그네를 뛰었었다”며 “이웃마을 처녀총각들이 몰려와 그네도 뛰고, 눈맞추기도 했다. 또 그네를 뛰다 미나리꽝에 ‘쿵’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대 소나무
수령 500년 노거수

마을의 보물 송대(松臺)
송대란 소나무 언덕이다. 소가 누워있는 모습에서 소의 머리에 해당되는 곳에 송대가 있고, 소의 머리와 꼬리가 맞닿는 지점에 동구가 있다.

오양골 송대에는 남산 위의 저-소나무보다 더 멋진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자연 그대로 자랐는데 속리산 정2품 소나무 모습과 꼭 닮았다.

김형길(60) 이장은 “동구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바람의 노래가 아름답다”며 “아이들에겐 놀이터이고, 어른들에겐 정자가 됐다”고 말했다.

신영자(77) 씨는 “송대에는 수백년 수령의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는데 시름시름 시들다 죽고 이제 두 그루가 남았다”며 “아마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지금처럼 잘 생긴 모습그대로였을 것으로 상상된다”고 말했다.

사과의 고장 오양골
동구 앞 과수원에 사과꽃이 활짝 피었다. 마을 안쪽 오현정 뒤로 보이는 넓은 두들에도 하얀꽃이 백두산을 이루었다. 이 마을 사과전문가 김용기(71) 씨는 “봉현면은 어디를 가더라도 과수원뿐”이라며 “오양골 사람들은 고품질 좋은 사과를 생산하기 위해 거름내고 전지하고, 꽃 따내고 약치고 적과(摘果)하고, 약치고 봉지 싸고 잎 따고, 빛깔내고 사과 따서 저장 처리하는 과정까지 수많은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용식 씨

최용식(58) 씨는 “사과도 사과전문가가 생산한 사과를 먹어야 제맛이 난다”면서 “오양골에는 30-50년 사과농사 경력을 가진 사과전문가가 많아 달고 야무진 사과를 생산해 낸다”고 말했다.

오양골 새댁들
오양골 사람들
김형길 이장
박찬동 노인회장
전영희 부녀회장
이정두 어르신
남병훈 노인회부회장
박찬자 씨
손순자 씨
신영자 씨
오복자 씨
김용기 씨

오양골 사람들
기자가 마을에 도착하자 김 이장의 안내로 경로당 안으로 들어갔다. 일철인데도 16명이나 모여 성황이다. 김 이장님이 떡을 하고 전 부녀회장님이 다과상을 차렸다고 한다.

김 이장은 “현재 49가구에 90여명이 살고 있다”면서 “예전에 비해 가구수는 별로 줄지 않았지만 인구수는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손순자(77) 씨는 “지금은 일철이라 적게 모이지만 겨울철에는 30여명이 모여 1,2,3조로 나누어 화투를 친다”면서 “큰방에는 젊은 새택네들, 사랑방에는 선비어른들이 모이고, 웃방에는 젊은 시어머니들이 모인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과 오양골의 유래와 동구 이야기, 송대 자랑과 사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교회 가셨던 분들이 도착했다. 안춘도·이종희·김성옥·윤기동·이순란·차순옥 여섯 분이다.

안춘도 씨는 “우리마을 사람들은 일할 때는 쭉쭉 일하러 가고, 쉴 때는 쭉쭉 다모여 신나게 재미있게 논다”면서 “어느 마을보다 단합이 잘 되는 게 오양골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오양골의 자랑을 더 물었더니, 이종희 씨는 “경로당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고, 김성옥 씨는 “봉현면에서 상수도가 제일 먼저 들어온 마을”이라 했다. 윤기동 씨는 “우리마을은 행복택시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고, 이순란 씨는 “물이좋아 장수하는 마을”이라고 했다.

차순옥 씨는 “고속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가 좀 시끄럽다”고 했다. 회관에서 나와 신영자 씨와 뒷산에 올랐다.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천지가 사과꽃이다.

김금옥 씨
홍만표 씨

샘가에서 김금옥(65) 씨를 만났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나온다”면서 “에전에는 샘에서 빨래를 했고, 샘가가 방송국이었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양홍씨 교수공파 홍만표(73) 댁에 갔다. “강원 태백에서 살기좋은 고장을 찾아 이곳 오양골로 왔다”며 “벼, 인삼 농사에서 최근 사과농사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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