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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30]이산면 두월2리(해맬)

매화가 호수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마을 ‘해맬(湖梅)’

2016. 12. 23 by 영주시민신문

▲ 해맬마을 전경
매화청담(梅花靑潭), 호림석연(湖林石淵)
평택임, 안동권, 전의이씨 400년 세거지

두월2리 해맬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영주중 방향으로 가서 남간재를 넘는다. 술바우사거리에서 영봉로를 따라 충혼탑-용상2리(어실)-달래삼거리를 지나 두월교차로에서 우회전한다. 새로 생긴 두월교를 건너 두월2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영주댐 수변도로로 접어든다.

길 아래쪽에는 영주댐 수몰로 아직 이건하지 못한 괴헌고택이 강둑에 갇혀 스산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두들마을 뒤를 지나 갈마골 언덕을 넘으면 바로 해맬마을 입구다. 지난 11일 해맬 노인회관에서 우은하 이장, 이기종 노인회장, 임복남 부녀회장, 이상용 지도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듣고 왔다.

▲ 마을표석
행정구역의 변천
두월리 지역은 1413년(태종13) 조선의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영천군(榮川郡) 임지리(林只里) 두월방(斗月坊)이라 했다. 영주지에 보면 ‘임지리에는 창팔래방(昌八來坊.덕현남쪽)과 황분토방(黃墳土坊.덕현)과 두월방(斗月坊) 등 12개 마을이 있다’고 기록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임지면(林只面)이 월경지(越境地) 정리에 의해 봉화군 상운면으로 이관되는 바람에 두월리는 봉화땅이 됐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산이면, 어화면을 이산면으로 통합했다. 1973년 7월 1일 봉화군 상운면에 속해있던 두월리가 주민대표 송병찬(宋秉璨), 금교성(琴敎聲), 김우규(金佑奎) 등의 진정으로 영주군 이산면에 복귀됐다.

▲ 두월2리 노인회관
지명 유래
조선 때 영천군 ‘산이면’이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이산면’이 됐다. 이 때 ‘이산면’이라 한 것은 본면에 저명한 이산서원’이 있으므로 그것을 면명으로 정하게 됐다. 또 두월(斗月)이란 지명은 마을에 달이 뜨면 산의 모습이 말(斗)과 같다 하여 말 두(斗)자에 달 월(月)자를 써 두월이라 하였고, 두들 뒷산 이름 또한 두월산(斗月山)이라고 부르게 됐다.

두월산 북편에 자리 잡은 마을이 ‘해맬’이다. 예전에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물이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고 한다. 이 마을 선비들이 빼어난 산수를 보고 매화가 호수 위에 떠있는 것 같다하여 호수 호(湖)자에 매화나무 매(梅)자를 써 ‘호매(湖梅)’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음이 변해 ‘해맬’이 됐다고 한다.

해맬 북쪽에 ‘돌고개’란 마을이 있다. 예전에 인근 고을에 사는 한 선비가 과거(科擧)보러 가다가 이 고개에서 쉬고 있을 때 하인이 헐레벌떡 뛰어와 “서방님, 큰일 났습니다. 대감마님께서 갑자기…”라는 전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돌아간 고개’라 하여 ‘돌고개’가 됐다고 한다. 또 돌고개에서 상운으로 넘어가는 골짜기를 사시골이라 부른다. 예전에 사슴이 많이 살았다 하여 ‘사슴골’이라 부르다가 ‘사시골’이 됐다고 한다.

▲ 돌고개마을 전경
마을의 개척과 세거
해맬의 평택임씨(시조 林八及)는 중시조 몽주(夢周)의 후손들이다. 후손 임춘식(72)씨는 “조선 때 호조참판을 지낸 문수(汶秀.14세손) 선조께서 임진왜란(1592년) 때 난을 피해 이곳으로 이거하여 영주 입향조가 되셨다”며 “해맬은 평택임씨 400년 세거지로 지금도 10여호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안동권씨가 두월에 터 잡은 시기 또한 임진왜란 무렵이다.

후손 권오현(71.35세손)씨는 “시조 태사공의 22세손 지용(之龍)선조께서 임진왜란 때 안동 도촌에서 두월로 이거하여 두월 입향조가 되셨다”며 “그의 후손 일부가 두들에서 해맬로 이거하여 지금까지 세거해 왔다”고 말했다.

전의이씨(시조, 李棹) 두월 입향조는 조선 때 영의정을 지낸 청강공(淸江公) 제신(濟臣)의 여섯번째 아들 자암공(字岩公) 원준(遠俊,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이다. 공은 계축옥사(1613년) 때 가솔을 거느리고 죽령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하기는 하였으나 혼란이 계속되자 환향하지 못하고 영천땅 두월(덕골)에 터를 잡았다.

후손 이기종(73)씨는 “자암공의 8대손 복민(福敏)선조께서 1800년대 초 덕골에서 해맬로 이거하여 해맬 입향조가 되셨다”며 “1960년대까지 20여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10여호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청강공의 손자이자 입향조 자암공의 조카인 습정공(厚基. 이조판서)이 영천군수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이후기(李厚基) 군수. 1633년 부임. 1637년 제주감정(濟州監正)으로 전임. 아전과 백성이 선정비를 세우다」라고 영주지에 기록되어 있다.

▲ 남원부사 신도비
춘향전 남원부사?
해맬에서 돌고개 방향으로 올라가면 도로 우측에 돌고개마을이 나온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시골 입구에 부용당(芙蓉堂) 성안의신도비(成安義神道碑)가 있다.

성안의는 춘향전에 나오는 이도령(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成以性,1595-1664년)의 아버지다. 성안의(1561~1629)는 1591년(선조24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08년 남원부사로 부임 하게 된다. 이 때 13살 소년 성이성이 광한루에서 춘향과 만남으로써 춘향전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성안의는 옛 순흥땅인 봉화 가평리(계서당)에서 살았다. 부자(父子)는 죽어서 아버지는 두월2리에 아들은 신암리에 묻혔다. 신도비 옆에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후손 성호영(69)씨는 “이 느티나무는 부용당께서 돌아가셨을 때 아들 계서(성이성)선조께서 시묘살이를 할 때 심은 나무”라며 “이곳에 있는 부용당의 묘, 신도비, 재사, 느티나무 등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성이성이 심은 느티나무
해맬마을 사람들
마을로 들어서니 교회도 보이고 옛 정미소도 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노인회관을 찾아 갔다. 현관 앞에 여러 켤레의 신발이 비친다. 거실에 들어서니 임복남(61) 부녀회장, 권영희(88) 할머니, 이월향(79)씨, 이태숙(73)씨, 임분난(63)씨와 여러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임복남 부녀회장은 “자랑할 것도 없는 오지마을을 찾아주셔서 고맙다”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내 주셨다. 이월향 할머니는 “노인회관은 여름에는 시원한 쉼터가 되고, 겨울에는 따뜻한 사랑방으로 사랑받고 있다”며 “오늘도 점심을 함께 먹었고, 서로 의지하고, 돌보며 산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더니 권영희 할머니는 “선대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라며 “해맬에는 아주 청량하고 수량이 풍부한 호림석연(湖林石淵)이라는 우물이 있다”며 “이 우물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해맬은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두월산을 바라보는 양지마을이다. 한 걸음만 달려가면 내성천이 나타나고 그 주변에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우은하 이장은 “두월2리는 해맬을 중심으로 돌고개, 음지마, 샘골 등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 농촌마을”이라며 “매화청담(梅花靑潭)의 빼어난 산수와 내성천변의 넓은 농토는 풍요롭고 넉넉한 미풍양속을 많이 만들었다. 지금은 60가구에 1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회관에서 나와 건너마로 갔다. 비닐하우스 10여동이 있다. 하우스 안에서 어린 양파를 돌보고 있는 서상호(52)씨를 만났다. 서씨는 “이곳은 종자채취용 양파재배단지”라며 “면적은 1천평쯤 되고, 종묘회사와 협약재배를 하고 있으며, 벼농사 보다 수익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성안의 신도비를 찾아 돌고개로 가던 중 농로에서 강현구(69)씨를 만나 길을 물었다. 강씨는 “두월2리 지역은 산이 얕고 산세가 부드러워 명당이 많다”며 “부용당성안의의 묘가 사시골에 있고 호매 마을 뒤에도 명당자리가 여러 군데 있다”고 말했다.

돌고개 마을 안쪽에 육계양계장이 있다. 대형 양계사 4개동에는 6만 5천수의 병아리들이 “삐약”거리고 있다. 성호영 사장은 “모든 시설이 자동화 되어 있기 때문에 집사람하고 둘이서 운영하고 있다”며 “부화 직후 들어온 병아리는 30일 후면 육계가 되어 출하 한다. 1년에 6-7회 출하 한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신축 중인 대형 우사도 보인다. 마을 곳곳에 선진 농촌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보인다. 이번 마을 취재에 문중(전의이씨) 입향 자료를 제공해 주신 이 마을 출신 이상욱(전 영주동부초 교장)님께 감사드린다.

이원식 시민기자

<이산면 두월2리 해맬마을 사람들>

▲ 이기종 노인회장
▲ 우은하 이장

 

 

 

 

 

 

▲ 임복남 부녀회장
▲ 권영희 할머니

 

 

 

 

 

 

▲ 이월향 씨
▲ 이태숙 씨

 

 

 

 

 

 

▲ 임춘식 씨
▲ 권오현 씨

 

 

 

 

 

 

▲ 강현구 씨
▲ 임분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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