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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24]단산면 옥대1리(안질)

태소백 맑은 물이 동서로 흐르는 청정 마을 ‘안질’

2016. 11. 11 by 영주시민신문

▲ 안질마을 전경
마을을 감싼 물길이 기러기가 헤엄치는 형국
문헌에 안지-아호, 사람들은 ‘안질’이라 불러

단산면 안질 가는 길
단산면 옥대1리 안질마을은 순흥면과 부석면 사이에 있다.
영주 서천교사거리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단산 방향으로 향한다. 동촌2리 조개섬 회전교차로에서 ‘달콤마을’ 표지판을 따라 사천·단산으로 우회전 한다. 사천-바우-병산-무궁화꽃길을 지나 회석교를 건너면 단산면소재지 ‘안질’이다.

지난달 30일 안질에 갔다. 아랫모티 윗모티를 오가며 김정수 이장, 조명환·김성배 어르신, 신동숙·박두균씨를 만나 단산면의 역사와 안질의 유래를 듣고 왔다.

행정구역의 변천
옥대1리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 일부석면(一浮石面)에 속한 마을(坊)이었다.

1849년에 편집된 순흥지(順興誌)에 보면 당시 일부석면에는 서오현(西烏峴), 병산(甁山), 대지곡(大枝谷), 서창(西倉), 회석(檜石), 단곡(丹谷), 안남동(安南洞), 지곡(枝谷) 일명 아곡(鵝谷), 성곡(聲谷), 내성곡(內聲谷), 좌석(坐石), 원통(元通), 마락리(馬落里) 일명 자작(自作), 삼가리(三街里) 등이 있었는데 ‘지곡 일명 아곡’이 옥대1리 지역이다.

그 후 조선말 1896년(고종33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하게 된다. 이 때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 분리되고 순흥도호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면서 일부석면이 단산면으로 개칭된다.

▲ 정향단산
당시 단산면에는 남동, 병산리, 대지리(행갈), 회석리, 옥대리(玉帶里), 아호리(鵝湖里), 남목리(안남), 하단곡리, 상단곡리, 두례동(斗禮洞), 모산(帽山), 성곡리, 조작리(鳥作里), 삼거리, 좌석리, 마락리 등 여러 마을이 있었는데 아호리가 옥대1리 지역이다.

1910년 한일합방에 이어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통합하여 영주군이라 하고, 동원면을 단산면에 통폐합한다.

이 무렵 조선총독부는 단산면 행정구역을 동원리, 사천리, 구구리, 병산리, 옥대리(옥대, 지곡, 성곡), 단곡리, 좌석리, 마락리 등 8개리로 확정발표하면서 ‘면소재지는 구구리에 둔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면사무소는 병산리에 두었다가 1918년쯤 안질로 이전하게 된다. 그 후 1980년 영풍군 단산면 옥대리, 1995년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단산 경찰관주재소(1930년대)
지명 유래
현재 70-80대 어르신들은 옥대1리를 ‘안질’이라고 부른다. 병산 사는 사람이 단산장 갈 때 “안질장 간다”고 말했다. 그럼 ‘안질’이란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옛 사람들은 산수(山水)에 따라 마을 이름을 지었다. 풍수에는 ‘산과 물’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옛 단산 사람들은 물을 중시하여 물길을 보고 마을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여 진다.
마을 서쪽에는 고치령에서 발원한 아계(鵝溪)가 흐르고, 동쪽에는 자개봉에서 발원한 봉계(鳳溪)가 마을을 감싸고 흐르다가 마을 남쪽에서 합류한다.

이와 같은 지세가 ‘기러기가 앉아 있는 형국’ 또는 ‘거위가 헤엄치는 모습’과 같다 하여 기러기 안(雁)자에 못 지(池)자를 써 안지(雁池)라 하다가 거위 아(鵝)자에 호수 호(湖)자를 써 아호(鵝湖)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 원로 김성배(85) 어르신은 “조선 때부터 1970대까지 아호를 ‘안질’이라 하고 금대를 ‘안안질’이라 불렀다”며 “아곡, 아계, 아호, 안지는 거위 아(鵝)자와 기러기 안(雁)자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말했다.

윗모티에 살고 있는 조명환(88) 어르신은 “구전에 의하면 ‘안질’을 한자로 쓰면 안지(雁池)가 된다. 처음에는 ‘안지’라고 부르다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안질’로 변했다”고 말했다.

▲ 단산농악대(1938년)
단산면의 성립과 발전
순흥도호부 때 옥대·병산 지역은 일부석면, 감곡·용암 지역은 이부석면, 소천·부석사 지역은 삼부석면이었다.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부석면은 단산면, 이부석면은 용암면(龍岩), 삼부석면은 봉양면(鳳陽)으로 개칭됐다.

이 때 ‘단산면’ 이라 칭한 것은 ‘소수서원장을 지낸 질막 사람 단곡(丹谷) 곽진(郭瑨,1568-1633) 선생과 대구부사를 역임한 병산(바우) 사람 서현(西峴) 김구정(金九鼎,1559~1638) 선생의 마을 이름을 따 단곡의 단(丹)자와 병산의 산(山)자를 조합하여 단산(丹山)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옥대리 지역을 지곡·아곡 또는 안질이라 불렀는데 집도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마을 이었다고 한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단산면소재지를 구구리에 두기로 하였으나 실제 병산리에 청사를 두었다고 한다. 이 무렵 신작로가 생기고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1918년경 교통의 중심지이자 면의 중심부인 ‘안질’로 면 청사를 이전하게 된다.

황충식(76) 단산면노인회장은 “병산1리 황화식 전 이장집 뒤에 단산면사무소 청사가 있다가 안질로 옮겨 갔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 선친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단산면 연혁지에 보면 초대면장에 ‘박정래’라고 나온다. 박 면장은 1921년부터 1934년(13년)까지 단산면장을 역임한 인물로 당시 지역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박 면장은 “안질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무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호소하여 인근주민들의 이전정착을 돕는 한편, 함석지붕 청사를 짓고 조선호적령(1922년)에 의한 호적부를 만드는 등 행정기반 구축에 힘썼다. 이 무렵 면소 옆에 경찰관주재소가 설립(1919년)되고, 한의원과 상점, 음식점이 생기면서 면소재지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후 1946년 옥대초등학교가 개교되고, 1962년 단산우체국이 설립됐다.

▲ 상황당과 동수목
이 마을 박두균(68, 전 새마을금고이사장)씨는 “6·25 후 시거리, 좌석 등지에서 벌채사업이 활성화되어 면소재지는 목상, 트럭, 상인, 인부들로 붐볐다”며 “이 무렵부터 5일장도 열리고 버스정류소, 양조장, 상점, 음식점, 숙박업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청정마을 달콤마을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신동숙(72)씨는 “낙동강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고치령 계곡은 절(寺)도 없고 광산도 없고 축사도 없어 가장 깨끗한 계곡”이라며 “이와 같은 청정지역은 양백지간에서 오직 이곳(단산) 밖에 없다”고 자랑했다. 단산면은 포도농사를 시작하면서 ‘달콤마을’이란 별명이 붙었다.

“언제부터 포도농사를 시작했냐?”는 질문에 김정수 이장은 “1993년 질막 정태선씨가 포도 이식에 성공하면서 포도농사가 시작되었으니 어언 23년전의 일”이라며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단산포도는 특유의 맛과 향을 자랑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 포도보다 2-3배 더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지금 옥대1리는 200여호에 450명이 산다”고 말했다. (단산포도 010-6554-5545)

▲ 옥대권개발사업
안질마을 사람들
안질마을은 기자의 고향이다. 어릴 적 뛰놀던 앞동산 뒤 냇가의 추억들이 스치고 간다.
구전에 의하면 ‘안질은 거위가 헤엄치는 형국이라서 거위가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구에 수구막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 숲이 성황당이 있는 미류나무숲이었다. 마을을 상징하는 이 숲은 사라호 태풍 때 사라지고 지금 성황당만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60년대 초 단산농악은 경북에서 명성이 대단했다. 임순모(林順模, 당시 50대)어르신이 꽹과리를 치고, 전부경(全富慶, 당시 50대)어르신이 12발상모를 돌릴 때 동네가 떠들썩했다.
옛 장터 앞 2층 건물이 경로당이다. 어릴 적 어머니 친구분들을 뵐 수 있어 행운이다.

국민학교 1학년 담임이셨던 이효식 선생님의 사모님 김시옥(88) 어르신, 탤런트 최명길씨의 큰어머니 되시는 이일순(83) 어르신, 해방 후 장터에 한의원을 열었던 연수당(권중팔) 한의원 부인 김신호(85) 어르신, 1970년대 단산면장을 역임한 서석구 면장의 제수 되시는 박임석(83) 어르신 등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큰절로 인사를 드렸다.

▲ 은행나무길
현 보건지소 자리에 양조장이 있었다. 해방 후 문을 열어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을 닫았다. 양조장이 없어진 아쉬움을 ‘쥬네뜨 JUNETE’가 채워주고 있다. 이 마을 부녀회장이기도 한 김향순(61) 대표는 “쥬네뜨는 단산포도로 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라며 “州(고을)+에네뜨(정직, 프랑스어)의 합성어로서 ‘단산고을에서 생산되는 정직한 와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연 5천병 정도 판매한다”고 말했다. (쥬네뜨 010-3816-5316)

지금 단산은 옥대권농촌개발사업(추진위원장 이방춘)이 한창이다.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오가는 길목에 숙박시설, 포도공원, 한식당, 아취교, 오토캠핑장, 체험시설, 공연무대 등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다.

이원식 시민기자

 <단산면 옥대1리 안질마을 사람들>

▲ 김정수 이장
▲ 김시옥 전 노인회장

▲ 조명환 어르신
▲ 김성배 어르신

▲ 이일순 할머니
▲ 김신호 할머니

▲ 박임석 할머니
▲ 신동숙 씨

▲ 박두균 씨
▲ 김향순 부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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