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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121]순흥면 배점1리

그림같이 아름다운 죽계호반 ‘평장마을’

2016. 10. 20 by 이원식 기자

▲ 평장마을 전경
고려 때 초암동, 조선 땐 평장동-배점리
봉황의 전설 간직한 죽계별곡·죽계구곡

평장마을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으로 간다. 순흥면사무소에서 소수서원 방향으로 200m 쯤 올라가면 죽계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초암사·국망봉 방향으로 직진한다.

비봉산자락을 몇 굽이 돌아 오르면 죽계(순흥)저수지에 이르게 되고, 호반에서 죽계별곡 시비도 만난다. 죽계호 주변에는 한스빌을 비롯하여 산장과 펜션, 황토민박, 전통찻집 등이 여럿 있다. 구비도라 주차장을 지나면 도로 좌측에 「배점1리 상평·하평」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300여m 올라가면 사과나무 숲 속에 ‘동화나라’를 보는듯한 집들이 보이는데 이 마을이 평장마을이다.

지난 9일 평장마을에 갔다. 노인회관에서 윤상석 이장, 권순표 전 이장, 권영만 노인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평장개의 유래와 죽계의 전설을 듣고 왔다.

▲ 뒤실마을
역사 속의 평장동
고려말 근재 안축이 쓴 ‘죽계별곡’에 ‘초암동 초암사’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 지역 이름이 ‘초암동’이었을 것으로 짐작됐다. 1413년(태종13년) 조선이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 내죽리(內竹里)에 속했다. 1458년(세조4) 순흥도호부가 폐부될 때 풍기군으로 이속됐다가 1683년(숙종10) 순흥부 복설로 환속됐다.

충신백성 배순(1548-1610)이 죽은 후 마을 사람들은 배순을 추모하기 위해 배순(裵純)의 배(裵)자와 점방(店房)이란 점(店)자를 따서 배점(裵店)이라고 불렀다.

1849년에 펴낸 순흥지에 보면 당시 「내죽면(죽계의 안쪽)에는 속수(涑水), 금성(金城), 송림동(松林洞), 배점리(裵店里), 덕현(德峴) 등 8개 마을이 있다」고 적었다. 1896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순흥군 내죽면 배점리가 되었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영주군 순흥면 배점리가 되었다.

윤상석(59) 이장은 “지금 배점1리는 하평과 상평 그리고 뒤실 등 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있으며, 60가구에 100여명이 산다”고 말했다.

▲ 삼덕평포
평장동의 유래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평장동’이란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순흥 관련 역사책에는 ‘평장동’이란 지명이 없다. 다만 단곡(丹谷) 곽진(郭震, 1568-1633)이 쓴 ‘단곡집’에 「배순은 죽계의 상류 평장동(平章洞) 어귀에 가게를 지어 놓고 풀무간 일로 업을 삼았다」라는 대목이 있어 당시 지명이 ‘평장동’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권영만(81) 노인회장은 “배점은 예로부터 ‘평장동’ 또는 ‘평장개’라고 불렀다”며 “고려말 평장사(平章事) 벼슬을 한 사람이 이 동네에 산데서 유래하여 ‘평장동’이라 했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전해지는 지명도 있다. 노인회관 앞에 삼덕평포(三德坪浦)란 표석이 그것이다. “‘삼덕평포’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이 마을 주역학자 김병우(75) 선생은 “삼덕은 ‘상평, 하평, 뒤실 3개 마을의 덕(德)’을 뜻하고 평포는 배점의 옛 이름 ‘평장포구(坪장浦口)’의 준말”이라고 했다.

▲ 죽계호반
“여기에 무슨 포구냐?”고 여쭈니, 선생은 “‘평장’이란 들 평(坪)자에 갯벌 장(장, 강이름 장)자를 쓴다. 즉 들(坪)과 강이 만나는 ‘포구의 어귀’라는 뜻”이라며 “마을을 ‘평장개’라고도 부르데 ‘개’란 포구 또는 개가(갯가)라는 뜻으로 쓰이는 순수한 우리말이기 때문에 ‘평장개’는 ‘평장포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생은 또 “예전에는 평장동에 배를 댈 포구가 없었지만 지금은 ‘죽계호’가 생겨 배를 댈 수 있게 됐다”며 “풍수지리에 밝았던 옛 순흥 사람들은 ‘평장포구’란 지명을 예언한 것 같다. 앞날을 훤히 내다본 선조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퇴계의 9세손 하계(霞溪) 이가순(李家淳, 1768-1844)은 죽계구곡의 제3곡인 송담(松潭, 죽계호에 있었음)의 아름다움을 보고 배(船)를 띄우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삼곡송담객문선(三曲松潭客問船)」 ‘셋째 굽이 송담에서 나그네가 배(船)를 묻는다’라는 구절이다. 하계는 ‘삼곡 송담 정도면 배를 띄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또한 ‘평장포구’의 유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배순의 정려비
주역(周易) 농군 김병우
이 마을에 일생동안 주역(周易) 공부만 한 김병우(75, 金柄寓)씨가 산다. 평장동 가운데 자리 잡은 그의 집 대문에는 연화만당(蓮花滿堂)이란 당호가 걸려 있고, 현대식 양옥 지붕에는 별과 달을 볼 수 있는 하늘창이 있다. 소년 김병우(당시 13세)는 소수중 1학년 때 뜻한바 있어 소백산 봉두암에 입산한다.

천자문 1권과 옥편 1권만으로 1년간 독학하여 한학의 기초를 닦았다. 이듬해 예천 은풍(부영봉)으로 소산 선생을 찾아가 3년간 주역과 수학을 공부했다. 17세가 되던 해 충남 부여로 가서 근대 주역의 대가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을 만나 3년동안 주역을 탐구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주역농군’이라 부른다. “아직도 더 공부할 게 있느냐?”는 질문에 “학문에는 끝이 없다”며 “이제 후학 양성에 진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14년 한글날 MBC TV에 출연하여 ‘훈민정음’을 성독(聲讀)하기도 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KBS가 2010년 방영한 ‘경상별곡’에서 「정감록에서 밝힌 한국의 십승지 가운데 제1승지는 풍기 금계가 아니라 지금 배점리 이자산(二子山) 아래 평장동(평장개)이다」라고 소개한 바 있다.

마을에서 죽계호반을 내려다보면 그림같이 아름답다. 이곳에 스위스 말로 ‘살기좋은 마을’이란 뜻을 가진 ‘샬레펜션’이 있다. 핀란드산 원목으로 지은 통나무집과 마당의 잔디가 눈길을 끈다.

펜션을 운영하는 김해년(59)씨는 “샬레펜션은 2016년 영주의 70개 민박시설 중 우수 업체로 선정됐다”며 “이곳은 아침에는 해돋이를 볼 수 있고 저녁에는 호수 위에 뜬 달을 볼 수 있어 좋다. 또 죽계구곡으로 발길을 돌리면 옛 선현들이 그곳에서 받은 감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주말마다 찾아오는 단골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샬레펜션 010-3662-5743]

▲ 죽계별곡 시비
죽계별곡과 죽계구곡
평장개에서 연세가 제일 높으신 김태현(87) 어르신은 “뭐니뭐니 해도 우리 마을의 자랑은 죽계별곡과 죽계구곡이 있는 마을”이라며 “소백산에서 가장 골이 깊고 경치가 좋은 곳이 죽계계곡”이라고 했다. 죽계호반에 죽계별곡 시비가 있다. 고려말 안축(安軸, 1287-1348)이 죽계의 아름다운 산수를 읊은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인 죽계(竹溪)는 소백산 국망봉 아래 석륜골에서 발원하여 초암사를 거쳐 평장동 앞을 흐른다. 그럼 죽계의 대나무 ‘죽(竹)’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지역 원로들께 여쭈니 “고전에 의하면 ‘봉황은 죽실(竹實)을 먹고 오동(梧桐)에 깃든다’고 했다”며 “봉(鳳)을 상징하는 비봉산(飛鳳山, 순흥의 진산) 주변에 대나무 죽(竹)자를 넣은 지명을 사용함으로써 봉황산에 봉황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여 진다”고 말했다. 순흥에는 내죽(內竹), 죽동(竹洞), 죽계(竹溪) 등 죽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죽계구곡은 옛날 퇴계 이황 선생, 신재 주세붕 선생이 즐겨 거닐던 계곡이다. 현재 바위에 새겨진 죽계구곡은 1728년(영조4) 순흥부사 신필하(申弼夏)가 1곡에서 9곡까지 이름을 새겨 놓았다. 최근 죽계구곡의 물을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테크로드가 생겨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 윤상석 이장
▲ 권영만 노인회장


평장동 사람들
노인회관 앞에 ‘삼덕평포’라고 새긴 표석이 있다. 2008년 마을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노인회관을 건립한 내력을 새겼다. 권순표 전 이장은 “‘삼덕평포’란 상평, 하평, 뒤실 등 세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마을(坪浦) 노인회관을 건립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노인회관에 김순희(75) 부회장, 권갑순(82) 할머니, 이정순(74)씨 등 여럿이서 모여 요즘 방송에 소개된 ‘덴동어미 화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정순씨는 “예전에 평장사람, 뒤실사람들이 비봉산에 올라 화전놀음을 했었다”면서 “화전놀이가 소풍으로 변하고 지금은 관광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덴동어미가 어느 마을에 살았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김순희 부회장은 “‘임이방의 딸’이라고 하는데 비봉산 주변에는 임씨가 없다”고 했다. 권갑순 할머니는 “예전에는 이고지고 화전 가야하기 때문에 속수나 뒤실 사람들이 비봉산에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회관 앞 느티나무 아래에는 송이장이 열리고 있다. 새벽에 송이 채취 간 사람들이 오후 3시면 집하장으로 모인다.

▲ 김순희 노인부회장
▲ 김태현 어르신
초암사 앞산에서 송이를 땄다는 황태웅(77)씨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송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3명씩 조를 짜서 10시간동안 송이를 딴다”며 “올해는 태풍·온도·습도 3합이 맞아 송이를 많이 땄다”고 했다.

삼괴정 가는 길에 만난 허용(84) 어르신은 “배점리 사람들은 배순을 동신(洞神)으로 모시고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자시에 배순의 정려각에서 서낭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요즘 마을에는 송이따기, 사과잎따기, 깻잎따기가 한창이다.  [연락처 010-6638-2417]

이원식 시민기자

▲ 권갑순 할머니
▲ 황태웅 씨

▲ 김병우 씨
▲ 이정순 씨

▲ 권순표 전 이장
▲ 김해년 새마을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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