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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읍 전구1리(앞두들)

우리마을탐방[105] 거친 돌산을 개척하여 부(富)를 일군 마을 ‘앞두들’

2016. 05. 09 by 이원식 기자

▲ 마을전경
적전들, 고려와 후백제 군사의 격전지
등항성, 왕건이 견훤의 항복문서 받은 곳

풍기읍 전구1리 가는 길

▲ 두들연가
풍기읍 전구1리는 풍기온천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도솔봉 방향 산 중턱에 있는 마을이다.
영주시내에서 죽령방향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가다가 백리교차로를 통과하면 자동차전용도로 종점이다. 여기서 200여m 쯤 올라가다가 좌회전하여 백2리 마을로 들어간다.

골목 안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마을을 벗어나면 넓은 들이 나오고 멀리 도솔봉이 보인다. 왼쪽으로 보이는 마산(馬山)에서부터 넓은 들이 전부 전구1리에 속한다. 마을 초입에 느티나무 숲거리가 있고, 마을의 상징인 거북돌도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지하차도를 통과하면 전구1리 앞두들마을이다.

지난 16일 오전 전구1리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안병선 이장, 박미정 부녀회장, 정영길 새마을지도자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앞두들의 유래를 듣고 왔다.

마을의 역사
영주삼읍지(榮州三邑誌)에 보면 전구1리 지역은 옛 풍기군 와룡동면(臥龍洞面) 전구리(前邱里)에 속했고, 전구2리는 순흥부 창락면 전고동(前皐洞)에 속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순흥부, 풍기군, 영천군을 영주군으로 통폐합하고, 창락면의 전고동과 와룡면의 전구동을 ‘전구리’로 병합하여 영주군 풍기면에 편입시켰다.

 

▲ 마을의 상징 두들
지명 유래
이 지역은 도솔봉(1,314m) 산줄기가 동으로 뻗어내려 넓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마을 앞에 큰 언덕이 있어서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앞두들’이라 불렀다. 조선 후기 무렵 선비들이 앞 전(前)자에 언덕 구(邱)자를 써 전구동(前邱洞)이라 했다.

전구1, 2리는 실제 한마을이지만 조선시대 때 전구1리 전구동(前邱洞)은 풍기군 와룡면에 속했고, 전구2리 전고동(前皐洞)은 순흥부 창락면에 속했다. 옛 순흥부 창락면은 죽령과 더불어 교통·군사요충지였고, 영남에서 가장 큰 창락역이 있었기 때문에 순흥부에서 관할하게 됐다고 한다.

▲ 적전들
고려와 후백제의 접전장
이 마을 송현선(78) 어르신은 “마을 앞 느티나무 숲거리에서 두산리 마산에 이르는 넓은 들을 ‘적전들’이라 한다”며 “옛날 군사들이 접전을 벌였다하여 ‘접전들’이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적전들이 됐다”고 말했다. 영주시사에 보면 ‘옛날 이곳에서 고려 왕건의 군사와 후백제 견훤의 군사가 큰 접전(接戰)이 벌어진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

영주영풍 향토지를 편찬한 송지향 선생은 “죽령은 삼국시대 때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치고 쫓기고 업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었다”고 했다.

929년 견훤이 죽령을 봉쇄하자 왕건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죽령에 왔다. 당시 죽령을 지키고 있던 견훤의 군사와 왕건의 군사가 접전을 벌리던 곳이 이곳 ‘적전들’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실제 고려군은 936년 일리천(一利川, 현재 선산군) 전투에서 후백제를 멸하고 견훤의 항복을 받아냈다.

▲ 등항성(登降城)
견훤의 항복문서 받은 등항성
송지향 선생의 등항성(登降城) 기록은 다음과 같다. 「등항성은 풍기고을 서쪽 5리에 있다.
여지승람·풍기군지 등 옛 문헌에 고려 태조가 남정(南征, 후백제 정벌)할 때 풍기에 들러 여기서 지체한지 7일만에 견훤(甄萱)의 항서(降書, 항복문서)가 이르렀다 하여 등항성(登降城)이라 했다 한다.

풍기군지 등 옛 문헌에 ‘등항성은 고을 서쪽 5리에 있다’ 했고, 주세붕의 풍기고적지에는 ‘등항성은 도솔봉서 한 산발이 동으로 뻗어 내리다가 고을 서쪽 5리 상거에서 풀쑥 일으켜 관로(管路, 서울로 통하는 큰길)에 임해 있다’고 했으니 지금 봉현면 두산동과 풍기읍 전구동과의 지경이 되는 속칭 마산(馬山)이 확실하다」고 기록했다.

1930년대초까지 죽령으로 통하는 큰길이 바로 두산 지경터를 거쳐 마산 동쪽과 숲거리를 지나갔다고 한다.

▲ 돌담길
두들연가와 오선교
마을 노인회관 앞에 두들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한 ‘두들연가’가 있다. 이 마을 출신 조동걸씨가 지은 두들연가는 출향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두들연가! 도솔봉 두들 한 자락/머루 다래 덤불 걷고/웃음 모아 자리 잡고//오순도순 인정모아/이 들에 인삼 심고/저 들에 사과 심고//햇살을 향기 삼아/고목 푸른 숨결로/거듭나는 거북돌」
회관 앞에서 앞두들로 건너는 콘크리트 다리가 오선교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옛날 이곳에 다섯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곳이다. 기암괴석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가운데 오선녀탕이 있었으나 개발 사업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이곳이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이야기다.

▲ 숲거리 주막터
돌산을 개척하여 옥토로
지금은 포장도로가 되어 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담도 길도 모두 돌이다. 전영웅(77) 어르신은 “우리마을은 제주도보다 돌이 많은 마을”이라며 “새마을운동으로 길을 닦을 때 돌이 너무 많이 나와 차로 실어냈다”고 했다.

김월희(78) 할머니는 “40년 전 마을의 모습은 초가집과 돌담이 많은 마을이었다”며 “남편이 수십년동안 돌산에 돌을 캐내고 사과나무를 심어 과수원을 만들었다. 고생만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안병선 이장은 “앞두들은 수만평 과수원이 됐다.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돌산을 개척하여 옥토로 만들어 지금은 풍요의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 마을보물 거북돌
숲거리 주막과 워냉기 약수
마을 앞에 숲거리 주막터가 있다. 숲거리는 옛날 죽령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주막을 비롯해서 민가 몇 채가 있었다고 한다. 이 주막에는 한양으로 가는 길손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앞두들숲거리주막’이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전구동 언덕 밑에 ‘워냉기약수탕’이 있다. 피부병에 좋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나 지금은 조용한 편이다. 황성칠(80) 어르신은 “옛날 이 마을에 창락역에 근무하는 역졸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근무를 마친 관원이 근무를 맡을 관원에게 인수인계 즉 교대식을 하던 곳이라 하여 ‘원넘기’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워냉기’가 됐다”고 했다.

▲ 마을노인회관
앞두들 사람들
예전에 경주석씨가 다래덤불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안병선 이장은 “우리마을은 별로 자랑거리가 없다”면서 “현재 80호에 150여명이 살고 있으며, 100%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사과마을”이라고 했다.

정영길(65) 새마을 지도자는 “귀농 5년차로 고향에 온 듯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3천여 평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면서 “돌산에서 생산되는 도솔봉표 사과는 당도 높고 야무진 사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만여 평 사과농사를 짓는 농가도 여럿 있다”고 했다.

박미정 부녀회장은 “앞두들은 산좋고 물맑은 청정마을”이라며 “원주민과 귀농인들이 사과농사에 주력하여 1등급 사과를 대량생산하는 사과 주산지가 됐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마을, 안에 들어와 보면 속이 꽉 찬 마을”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연세가 제일 높으신 남차녀(93) 할머니는 “5년 전 이 마을에 와서 이장님과 부녀회장님 그리고 이웃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며 “참 인심 좋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을”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박병인(81) 할머니는 “마을에 오신 손님(기자)을 빈 입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감자전을 붙인다. 할머니들과 감자전을 먹으면서 어렵게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들은 “예전에는 보릿고개를 넘으며 어렵게 살았지만, 지금은 사과와 인삼농사로 억대 수익을 올리는 농가가 많아 부자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여기가 안태고향인 이영호(76)씨는 “마을의 보물은 숲거리에 있는 거북돌이다. 입은 동구 밖을 향하고 엉덩이는 마을을 향한다. 거북이가 똥을 누면 마을에 풍년이 든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을연락처 010-8883-4172 안병선 이장] 

▲ 박미정 부녀회장
▲ 안병선 이장

 

 

 

 

 

 

▲ 남차녀 할머니
▲ 정영길 새마을지도자

 

 

 

 

 

 

▲ 황성칠 어르신
▲ 박병인 할머니

 

 

 

 

 

 

▲ 김월희 할머니
▲ 송현선 어르신

 

 

 

 

 

 

▲ 이영호 어르신
▲ 전영웅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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