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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75]봉현면 한천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과나무길 봉현면 ‘한천리’

2015. 09. 11 by 이원식 기자

 

▲ 마을전경

샘이 많아 샘골, 찬물이 흘러 무랭이골
봉정지의 전설, 조선 때 군수 선정비 남겨

봉현면 한천리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죽령 방향으로 향한다. 풍기 교차로에서 내려 풍기 IC방향으로 우회전한다. 봉현초 앞을 지나 히티재(힛틋재) 방향으로 올라가면 ‘사과 주산지’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산천이 모두 사과나무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한천리 ‘사과나무길’을 따라 600m 쯤 오르면 범천골 승강장이 나타나고, 다시 600m 가량 더 올라가면 천부산 자락에 자리 잡은 아담한 마을이 보이는데 이 마을이 샘골이다.

마을 초입에는 ‘한천리 내고향 샘골’이라고 새긴 큼직한 표석이 손님을 맞이한다. 표석에서 마을 방향으로 200m 쯤 내려가면 개울이 있고, 30여 채 집들은 산자락 경사면에 남동향하여 옹기종기 자리 잡았다.

지난달 28일 오전 한천리에 갔다. 범천골에서 김금석 이장을 만나고, 샘골경로당으로 가서 유도석 어르신, 황영순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한천리의 유래와 마을 이야기를 듣고 왔다.

 

▲ 마을 표석

한천리의 역사
이 지역은 조선 때 풍기군 와룡동면에 속했다. 풍기지에 보면 「와룡동면(臥龍洞面)은 풍기 관문에서 서남쪽으로 10리까지이다. 대촌리, 홍인동리, 신기리, 두치동리, 전구리가 있다」라고 적고 있다. 당시 이 지역은 대촌리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지(2010) 기록에 의하면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와룡동면의 수한동(水寒洞)과 천동(泉洞) 그리고 대촌동(大村洞) 일부를 병합하여 ‘한천리(寒泉里)가 이뤄졌다」라고 기록했다.

이 때 ‘한천동’이라는 지명이 처음 생겼다. ‘한천’이란 수한(水寒)의 한(寒)자와 천동(泉洞)의 천(泉)자를 따 한천동(寒泉洞)이라 칭했다. 여기서 수한동은 무랭이골이고 천동은 샘골이다.

 

▲ 샘골 선정비

마을의 지명유래
한천리에는 범천골, 샘골, 무랭이골이 있으며 샘골이 중심 마을이다.

샘골은 집집마다 샘이 있어 샘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위쪽에 수령 300년 된 회화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큰 샘이 있다. 물이 차고 맛이 좋아 마을사람들이 널리 이용했다고 한다. 샘골에 한자를 붙이니 ‘천동(泉洞)’이 됐다.

무랭이골은 히티재 서쪽 골짝에 있는 마을로 물이 매우 차다하여 수한(水寒)이라 하기도 하고 물한 또는 ‘무랭이’라고도 불러왔다. 즉 물이 냉하다는 뜻으로 물냉이가 무랭이로 또는 무래이로 변했을 것으로 보여 진다. 무랭이에 한자를 붙이니 ‘수한동(水寒洞)’이 됐다.

한천리 어귀에 있는 범천골은 골 안에 또 골이 있고 숲이 우거져 예전에는 범, 늑대 등 산짐승이 우글거렸다는 데 유래하여 ‘범천골’이라고 불렀다.

 

▲ 샘골승강장

봉정지와 영세불망비
범천골 승강장에서 히티재 방향으로 500m 쯤 오르다 보면 길 왼편에 수령 300년 넘는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이곳을 ‘봉정지’라 부른다.

옛날 용암산 봉암대에 살고 있던 봉황이 욕심 많은 부자가 바위를 깨트리는 바람에 순흥 비봉산으로 날아가다가 이곳에서 잠시 머물고 갔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써서 ‘봉정지(鳳停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봉정지

봉정지에는 집채만한 큰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풍기군수 이주필(李周弼)의 영세불망비로 군수가 떠난 뒤 이 지역 주민들이 세운비로 알려져 있다. 이 군수는 1891년(고종 28년) 부임했다가 1892년 전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이범선 군수의 선정비가 샘골에 있다고 하나 확인하지 못했다.

▲ 샘골 큰샘

히티재(礪峴)
샘골 입구에서 900m 쯤 오르면 해발 382m의 히티재 정상에 오르게 된다.

소백산 자구지맥이 몸을 낮춰 사람들이 넘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재가 ‘히티재’다. 왼쪽에는 용암산(해발 633m)이 오른쪽에는 천부산(652m)이 우뚝하고 그 가운데 재가 있다. 옛 문헌에는 여현(礪峴)이라고 나온다. 옛날 이 고개 주변에 칼을 벼루는 흰 빛깔의 숫돌이 많이 난다하여 숫돌 여(礪)자에 고개 현(峴)자를 써서 여현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이 고개를 중심으로 오르막길 4Km와 내리막길 4Km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과나무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 무랭이골 박연대·전순옥 부부

무랭이골에서 만난 사람
무랭이골은 히티재(힛틋재) 정상에서 우측 천부산 방향 계곡 2km에 걸쳐있다. 해발 400-800m 고랭지마을이다. 예전부터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으나 1961년 대수해 때 인명 피해가 많아 마을을 떠났고, 1970년대부터 화전(火田)이 금지되자 마을이 점차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귀농인과 단군신전, 귀향인 등 모두 합쳐 서너 집이 살고 있다. 해발 700여m에 이르렀을 때 호두나무 아래서 옥수수를 추수하던 박연대(70)·전순옥(67) 부부를 만났다. 길을 묻는 기자를 자기집으로 초대해 토마토 쥬스를 대접했다.

왕대폿잔에 쥬스를 한 잔 들이켰더니 더위도 갈증도 날아가 버렸다. 두 부부가 사는 외딴 황토집에는 목공예 조각 작품이 방과 마루에 가득하고 수월정(水月亭 010-8330-0164)이란 정자도 있어 신선이 사는 집 같았다.

박씨는 코레일에 근무하다 정년퇴직하고 4년 전부터 이곳에 와서 목공예 취미생활과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등 멋진 산꾼으로 변신했다.

 

▲ 범천골

범이 살았다는 범천골
“이 곳은 골이 깊고 숲이 우거진 무인지경으로 옛날에 범이 살았다 하여 ‘범천골’이라고 부른다” 이는 범천골 남영수(73) 어르신이 전하는 말이다. 범천골은 대촌리 삼거리에서 히티재 방향으로 600m 지점 좌측에 있는 마을이다. 김금석 이장이 이 마을에 살고 있다.

 

6년 전 귀촌한 김 이장은 “사과에 반해 이곳에 정착했다”며 “현재 2천 200평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이장 댁 주변에는 탐스러운 빨간 사과가 지천이고 밤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 샘골 회화나무

샘골에 살고 있는 이명식(52)씨가 김이장을 찾아왔다. 이씨는 샘골의 큰샘 이야기와 봉정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을 원로들에 의하면 범천골 안쪽에는 마을 앞들보다 더 넓은 골이 또 있는데 범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 곳에는 수십기의 고려장(고분)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5-6가구가 산다.

샘골마을 사람들
높은 옹벽 위에 지어진 한천리경로당에서 최일순(85), 이필순(83), 김정숙(87) 어르신을 만났다. 최일순 할머니는 안동 와룡에 살았는데 18살에 샘골 총각을 신랑으로 맞이해 혼례를 올리고 19살에 이곳 샘골로 시집 왔다고 한다.

최 할머니는 “가마타고 돌 층층 돌담길 따라 샘골로 시집왔다. 길은 가마길 뿐이고 집은 흙과 돌을 쌓아 지은 초가토담집뿐이었다”고 말했다.

이필순 할머니는 “샘골에는 샘도 많고 바위도 많은 동네였다”며 “지금은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구무바위, 마당바위, 대문바위, 맷돌바위, 행상바위 등 모두 12바위가 있다”고 말했다.

 

▲ 한천노인정

김정숙 할머니는 “한천경로당에는 매일 여섯 노인이 모여 점심도 해먹고 서로서로 돌보면서 사는데 오늘은 내일이 백중이라 마카(전부) 절에 가고 셋 밖에 없다”고 하면서 “밥도 많이 있으니 여기서 점심 같이 먹자”고 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유도석(82) 어르신과 김득복(58)씨가 경로당으로 왔다. 김득복씨는 오자마자 “산돼지, 고라니 등 산짐승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며 “들짐승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마을의 숙원사업”이라고 말했다.

유도석 어르신은 마을의 입향조에 대해 “먼 옛날 전주이씨가 다래덤불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어느 때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그 뒤로 진성이씨, 풍기진씨, 영양남씨 등이 차례로 들어와 살았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전주이씨 조상들의 묘소가 인근에 있고, 큰샘 회화나무의 수령 300년, 봉정지 느티나무의 수령 300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샘골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300년 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천정 옆 과수원에서 사과잎 따기를 하다 만난 황영순(67) 부녀회장과 김정숙(71)씨는 “이 예쁜 사과가 달리기까지 꽃 따고 약치고 적과하고 잎 따는 등 수많은 손길이 있었다”며 “이제 제값을 받고 파는 게 문제”라고 했다.

 

▲ 유도석 어르신
▲ 김금석 이장

 

 

 

 

 

 

 

 

▲ 김정숙 할머니
▲ 황영순 부녀회장

 

 

 

 

 

 

 

 

▲ 이필순 할머니
▲ 최일순 할머니

 

 

 

 

 

 

 

 

▲ 김정숙 씨
▲ 남영수 어르신

 

 

 

 

 

 

 

 

▲ 이명식 씨
▲ 김득복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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