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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74]풍기읍 성내1리

옛 풍기군 관아가 있던 마을 성내1리

2015. 09. 03 by 이원식 기자

▲ 성내1리 전경
풍기 관아(현감, 군수, 읍장) 600년 역사
100년 역사 풍기초 등 주요 시설 이곳에

풍기읍 성내1리 입지
풍기 십자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풍기우체국, 구 풍기읍사무소, 풍기초등학교, 풍기파출소, 삼일아파트에서 돌아 역전통으로 올라가다가 풍기초등학교 후문을 지나 순흥통로 오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풍기농협 앞을 지나 십자거리로 오면 성내1리를 한 바퀴 돈 것이다.

성내1리는 오랜 세월동안 풍기의 교육, 행정, 상업, 교통의 중심지이며, 역대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아가 있던 곳으로 풍기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지난 21일 풍기읍 성내1리를 찾아갔다. 삼일경로당에서 한명순 이장, 이정숙 노인회장 등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풍기의 역사와 마을 이야기를 듣고 왔다.

▲ 해동지도(풍기)
풍기(豊基)의 지명유래
신라 때는 기목진(基木鎭)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기주(基州)라고 했다. 현종 9년(1018)에 길주(지금의 안동)에 예속되었다가 명종 2년(1172)에 감무(監務)를 두어 안동부에 소속된 현(縣)이 되었고 공양왕 때(1390) 은풍(殷豊)이 합쳐졌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는 기천현(基川縣)으로 개칭했고, 1414년 문종의 태(胎)를 은풍(殷豊) 명봉산에 묻으면서 은풍의 풍(豊)자와 기천(基川)의 기(基)자를 따서 풍기라고 하고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풍기라는 이름은 이때 처음 생긴 것이다. 고종32년(1895) 8도를 23관찰부로 개편함에 따라 풍기군은 안동관찰부에 예속됐고, 이듬해(1896년) 13도로 개편될 때 경상북도 풍기군이 되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주군 풍기면이 되었다. 1973년 읍으로 승격하였고, 1980년 영풍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하면서 영주시 풍기읍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파출소와 역전통로
성내리의 내력
성내리 지역은 옛 풍기읍성(豊基邑城) 안에 있다고 하여 성내리(城內里) 또는 ‘성안’이라 하였다. 이 지역은 옛 풍기군 동부면 지역이었다. 풍기읍지에 보면 「동부면은 관문에서 동쪽으로 10리까지이다. 성내리, 남문리, 동문리, 산법리, 미곡리가 있으며 순흥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지명으로 볼 때 옛날 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기읍성의 내력
풍기읍지에 나타난 옛 성의 내력을 살펴보면 「풍기읍은 본래 신라의 기목진(基木鎭)으로 흙으로 쌓은 성이 있었는데 그 둘레가 매우 크다. 성의 서쪽은 작은 하천에 다락이 있어 ‘누다리’라 하였다고 전해 온다. 성의 북쪽은 저잣거리로 욱금동을 횡단하여 점방산(店方山, 잠뱅이재)으로 가로 걸쳐 있으며 그 산위에 활터가 있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75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동지도에는 성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지명으로만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 주세붕 선정비
주세붕 선정비(周世鵬善政碑)
구 읍사무소 마당에는 주세붕 선정비 외에도 많은 비가 있다.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7개, 선정비(善政碑) 3개, 청덕비(淸德碑) 1개, 청렴의 상징 백비(白碑) 1개, 거사비(去思碑) 1개, 풍기읍 승격 기념비 1개 등이 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주세붕이라고 하면 소수서원을 세운 사람으로 또 풍기인삼을 처음 재배한 사람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이름이다.

군수주공선정비(郡守周公善政碑)는 「公諱, 世鵬, 字 景遊, 辛丑出守......」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풍기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은 천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학행이 순수하였다. 노인을 공경하고 착한 일을 존대하며 가르침을 앞세우고 형벌을 뒤로하고 용서를 미루어 은혜를 베풀었다. 부로(父老)들이 모두 말하기를 우리나라 개국 이래로 군수로 온 사람이 이런 이가 없었다. 그이는 지금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가 되어 있다”라고 칭송했다.

▲ 풍기읍사무소 옛터
옛 관아의 모습
구 읍사무소 자리에 옛 풍기군 관아가 있었다. 1750년경에 제작된 해동지도를 보고 옛 관아의 모습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풍기초 운동장 서편에 객사(客舍)가 있고 객사 옆에 제운루(齊雲樓)가 있었다. 객사는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로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이며, 제운루는 관아로 들어가는 문루였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읍사무소 자리에 아사(衙舍)가 있었고 그 뒤로 서헌(西軒)이 있었다. 아사는 동헌(東軒)이라고도 하며 지방 관리가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다. 서헌은 지방 관리의 생활처소로 요즘으로 치면 시장이나 군수의 관사와 같은 곳이다.

옛 성내1리 지역은 관아와 객사, 문루, 정자 등이 즐비하여 선비촌 같은 모습이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풍기읍사무소
구 풍기읍사무소가 있던 자리는 ‘성내리녹색나눔숲’이라는 공원으로 변했고, 옛 건물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앙상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앞 표석에는 「이 곳은 1962년 세워져 2012년 9월 24일 이전하기까지 반세기의 세월을 풍기읍민들과 애환을 함께 했던 읍사무소가 있던 자리입니다」라고 적었다.

이 자리는 조선 태종 7년(1407) 이진(李진)이라는 감무가 부임하여 정무를 보던 곳이고, 1412년 홍은(洪誾) 기주(基州) 현감, 1446년 김승로(金崇老) 풍기군수 등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곳으로 600년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 풍기초등학교
풍기초 개교 100주년
성내1리 지역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풍기초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이다.

구 한말 서양 문물이 들어오자 이 지방 유생들이 뜻을 모아 1908년 5월 25일 안정사립보통학교를 개교했다. 이 때 ‘안정’이란 교명을 사용한 것은 본래 풍기가 안정현(安定縣)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진다.[조선 때 풍기군수 정언충(鄭彦忠)이 1761년에 쓴 동헌 이건기에 보면 「본군은 본래 안정현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912년 풍기공립보통학교가 되고, 1938년 풍기공립심상소학교로, 1941년 풍기국민학교로, 1996년 풍기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2008년 5월 25일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황리에 치뤘다.

▲ 삼일경로당
성내1리 사람들
성내1리 학교주변은 대부분 상가이고 삼일아파트 지역엔 주택이 많다.

기자가 이장을 찾아 간 곳은 삼일아파트 앞에 있는 삼일경로당이다. 10여평 남짓한 콘크리트 슬라브 단독주택에는 열서너 분이 모여 점심을 같이 먹고 세 팀으로 갈라 10원짜리 놀이를 하신다. 한명순(여, 61) 이장은 “성내1리는 207가구에 442명이 살고 있으며, 상업이 많은 편이고, 농업은 20%미만”이라고 했다.

이정숙(77) 노인회장은 “삼일경로당은 작지만 강한 경로당”이라며 “25명이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형제처럼 지내고, 서로서로 돌보고 챙기는 화기애애한 경로당”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제일 큰 언니인 심경순(88) 할머니는 초등 신랑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심 할머니는 “백신에 살았는데 내 나이 18살 때 이웃에 사는 14살 초등 4학년 신랑(최형섭)과 혼인했다”고 하면서 “시조모와 조모가 합작하여 혼인을 성사시켰는데 이유인즉 처녀가 그냥 있으면 정신대 끌려간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 만수노인정
심 할머니는 “신랑 아침밥 먹여 학교 보내고 집안일 했으며, 22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자 방 안에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성락(85) 할머니는 “14살 때 북한 평안남도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15살(1946)에 아버지 손에 끌려 38선 넘어 서울로 왔다”면서 “1.4후퇴 때 정감록 십승지의 땅 풍기로 왔다”고 말했다.

우영숙(81)할머니는 “성내리 골목안은 예나 지금이나 돌담과 옛집의 흔적이 그대로 있으며, 직조공장도 그대로다”고 말했다. 손삼순(82)·이순례(81) 할머니는 “삼일경로당엔 독거노인이 많다. 어디가나 경로당은 할머니 천국이지”라고 했다.

엄풍자(75)·성금자(78) 할머니는 “풍기는 인삼이 자랑이고 바람세고 돌 많은 고을”이라고 했다.

경로당의 막내인 황숙희(70)할머니는 “성내1리의 자랑은 삼일경로당”이라며 “모두 건강하고 서로 도우며 솔선수범하는 경로당”이라고 말했다. 만수노인정에서 풍기읍성의 내력을 들려주신 최우열(81)회장님과 이도엽(83)어르신께 감사드린다.

▲ 한명순 이장
▲ 이정숙 노인회장

 

 

 

 

 

 

▲ 김성락 할머니
▲ 심경순 할머니

 

 

 

 

 

 

▲ 우영숙 할머니
▲ 손삼순 할머니

 

 

 

 

 

 

▲ 성금자 할머니
▲ 이순례 할머니

 

 

 

 

 

 

▲ 황숙희 할머니
▲ 엄풍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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