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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 탐방[70]단산면 옥대4리

자개지맥의 첫 동네 단산면 모산(帽山)마을

2015. 08. 07 by 이원식 기자

▲ 마을 전경
마을 뒷산이 모자 모양을 닮아 모산(帽山)
‘영생불로(永生不老)’의 산 자개봉의 전설

▲ 마을표석
단산면 옥대4리(모산) 가는 길
단산면사무소에서 고치령 방향으로 향하면 단산교회 앞에서 삼거리를 만난다. 우측으로 가면 부석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길(영단로)이 모산으로 가는 길이다.

저 멀리 소백산을 쳐다보면 12시 방향으로 자개봉이 보인다. 금대마을 앞에서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 앞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모산이다. 도로 좌측 큼직한 돌에 모산동(帽山洞) 마을표석이 있고, 마을은 도로 우측방향으로 비스듬한 경사지에 띄엄띄엄 보인다.

자개봉 아래 자리 잡은 옥대4리는 성곡(聲谷, 소리실), 원통(元通, 원티), 모산(帽山, 모실)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9일 모산에 갔다. 김명동 이장과 김대호 전 단산면장의 주선으로 회관 앞 정자에서 마을 어르신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3시간동안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들은 후 이재섭 마을총무의 안내로 모산-원통-성곡을 둘러봤다.

마을의 역사
이 지역은 조선시대 때 순흥부 일부석면(一浮石面)에 속했다. 순흥지(1849)에 보면 일부석면에는 병산(甁山), 서창(西倉), 단곡(丹谷), 회석(檜石), 안남동(安南洞), 성곡(聲谷, 소리실), 내성곡(內聲谷), 좌석(坐石), 원통(元通), 마락리(馬落里), 삼가리(三街里) 등이 속해 있었다. 위에서 보면 ‘성곡’과 ‘원통’이란 지명은 있으나 ‘모산’이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성곡이 모산이 아닐까 추정해 보기도 하였으나 확실치 않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통폐합하여 영주군이라 하고 순흥군 일부석면과 동원면을 통합하여 단산면이라 칭했다. 단산면 이라고 한 것은 ‘이 지역이 낳은 선비 중 질막의 단곡(丹谷) 곽진(郭瑨) 선생과 병산(甁山, 바우)의 서현(西峴) 김구정(金九鼎) 선생의 명망이 높아 두 마을 이름을 따 단곡의 단(丹)자와 병산의 산(山)자를 합하여 단산(丹山)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옥대리의 유래는 ‘왕산(성곡 맞은편 산)에서 뻗어 나온 능선이 옥띠와 같이 곧게 이어져 마을을 감싸고 있다하여 구슬 옥(玉)자에 띠 대(帶)자를 써서 옥대(玉帶)라 했다고 한다.

▲ 자개봉
자개봉의 전설
자개(紫蓋)는 바다의 조개껍질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개봉(紫蓋峰)은 불교에서 나온 산이름이다. “옛날 그곳 촌장들이 모여 밤늦도록 기도한 날이 있었다. 그때 백발노인이 나타나더니 ‘한밤중(子時)이 되면 그곳 산봉우리에 돌문이 열리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세계가 있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모인 촌장들이 한밤중에 그 봉우리로 올라가 돌문 안으로 들어가서 ‘영생불로’했다”고 전해온다. 이여송이 마을 뒷산줄기를 끊었다는 전설도 있다.

▲ 성곡(소리실)
마을의 지명유래
소백의 정기는 서천을 기준으로 서쪽은 자구지맥이 흐르고 동쪽은 자개지맥이 흐른다.

성곡은 자개지맥이 시작되는 자개봉 아래에 제일 먼저 자리 잡았다. 이곳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갈마음수(渴馬飮水)’형 명당 묘터가 있었다고 하며, ‘원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성곡(聲谷)’이라 했다한다. 성곡 마을 뒤에 생긴 단산저수지는 2000년에 완공됐다. 원통은 자개봉 아래 첫 동네다. 옛날에 이곳에 원통사(元通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 이름을 따서 원통이라 했으나 발음이 변하여 ‘원티’라고 불러지고 있다. 1980년대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사과 주산지가 되어 윈티골에 사과나무가 가득하다.
모산(帽山)은 ‘모실(帽室)’이라고도 한다. 마을 뒷산이 사모(紗帽)의 형상과 같다하여 모자 모(帽)자 ‘모산’이라 했다고 한다. 소백산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모산에는 현재 76호에 150여명이 살고 있다.

▲ 단산저수지
마을의 개척
이 마을 역시 역사를 기록한 문헌은 찾을 수 없고 문집이나 묘비 등도 없어 구전에 의해 마을의 형성과 내력을 적어본다. 이 지역에서 성곡에 사람이 제일 먼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 이재섭(56)씨는 “언젠가 마을 회관에 있는 책에서 봤다”고 하면서 “500년 전 전주이씨 3가구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했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500년 전 이라면 아마도 세조의 왕위 찬탈(계유정난, 1453년) 사건 때 벼슬을 버리고 산속으로 은둔한 선비이거나,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소백산 깊숙이 피난 온 선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옛 원통마을
모산에 정착한 성씨들
경주최씨 후손 최규정 노인회장은 “경주최씨 마을 입향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상들의 묘소가 인근에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후기 쯤 이곳에 정착한 것 같다”면서 “옛 종가집은 수십년 전에 없어졌고, 효자가 살던 집의 징표인 홍문(紅門, 경의를 표하는 문)집이 있었으나 사정상 순흥 사현정으로 옮겨 갔다”고 했다. 최 회장은 또 “일제 때(기미년) 저의 조부(최상빈)께서는 일제와 담판하여 산촌사람들이 산나물을 뜯어 먹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굶주린 지역민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등 선행을 베풀어 면민의 이름으로 산태봉에 목비를 세웠으나 해방 후 없어졌다”고 했다. 김대호 전 면장은 “양천허씨가 이 마을에 들어 온 것은 100여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풍산김씨는 6.25전쟁 후 이 마을로 왔다”고 했다.

김호년(82) 어르신은 “안동김씨나 인동장씨는 80-100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이정일(82) 어르신은 “500년 전 전주이씨 입향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우리 일가는 100여년 전에 이 곳으로 왔다”고 했다.

▲ 봉황소
봉래소와 성황당
마을 앞 표석이 있는 아래쪽에 ‘봉래소’라는 소(沼)가 있다. 주변은 기암으로 풍광이 아름답고 물이 깊다. 전설에 의하면 ‘부석사에는 물이 없어서 부석사 봉황이 물을 찾아 이 곳에 와서 목욕을 하고 갔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봉황소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봉래소가 됐다.

모산과 소리실 사이 도로변 숲속에 성황당이 있다. 옛날에는 느티나무 아래 바위가 있어 여기에 매년 정월 15일 자정에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 당집 안에는 한지와 실타래로 묶은 돌이 놓여있고, 양측에는 암수 한 쌍의 철제품 동물형상을 배치하였다. 이 철제품 동물상은 당집 건립 전에 바위 주변 땅속에 묻혀 있던 것으로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으로 믿고 있다.

▲ 서낭당
모산 마을 사람들
2002년 신축한 마을회관은 넓고 시원하다. 조정임 할머니회장은 “노인회관에는 매일 10-20여명이 모여 휴식과 친교를 하고 있다”며 “회관 뒤에 독거노인공동거주의 집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했다. 박노미(83) 할머니는 “6.25후 보릿고개 때 좌석과 장터와 모산을 전전하며 살았다”며 “시조부, 시부모, 시누, 시동생 등 대가족이 한집에 살았다”고 말했다.

김순임(84)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정말로 산좋고 물좋은 곳으로 모두가 장수하는 장수마을”이라고 했다. 회관 앞 ‘정향 모산’이란 표석 아래 ‘빛나는 흙의 문화 우리 손으로’라고 새겨져 있다. 아마도 여기서 태어나 흙에 살다가 어느덧 원로가 된 김정환(82)·손정익(73) 어르신들이 젊을 때 외쳤던 구호가 아닌가 상상해 보기도 했다.

▲ 마을회관
정윤화(54) 새마을지도자는 “경북 최북단 청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산사과는 영주사과 중 가장 품질이 우수하다”며 “과수, 인삼 재배를 통해 고소득 부자마을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 마을 이재섭(영천이씨)씨의 증조부 이기연(李起淵)은 의병으로 활약했다. 1907년 이강년, 김상태 의병진과 함께 죽령 전투에 참전했고, 신돌석 의병장과 연합하여 순흥을 공격하는 등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은둔의 마을로 근대에는 산간 오지마을로 살아오면서도 학문을 중시하고 교육열이 높은 마을이다.

현대에 와서 손상호 경상대 총장,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허정윤 박사, 최교창 청주대 교수(부부교수), 청소년 문제와 해결 방안을 연구한 김병화(여) 박사 등이 이 마을 출신으로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최규정 노인회장
▲ 김명동 이장

 

 

 

 

 

 

▲ 김대호 전 단산면장
▲ 조정임 할머니회장

 

 

 

 

 

 

▲ 김정환 어르신
▲ 김순임 할머니

 

 

 

 

 

 

▲ 손정익 어르신
▲ 박노미 할머니

 

 

 

 

 

 

▲ 정윤화 새마을지도자
▲ 이재섭 마을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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