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청심예양(淸心禮讓)의 선비마을 용상2리 어실(御室)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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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69]이산면 용상2리

청심예양(淸心禮讓)의 선비마을 용상2리 어실(御室)

2015. 07. 23 by 이원식 기자

▲ 마을전경
400년전 안동권씨·강릉유씨 입향조가 사돈을 맺다
학문과 예법을 중히 여긴 마을로 우수한 인재 배출

이산면 용상2리(어실) 가는 길
시내 원당로에서 남간재를 넘어 영봉로로 향한다. 술바우사거리에서 직진하면 동산고, 충혼탑, 충무정 앞을 지나게 된다. 어실로 가는 길에는 둘구비, 윗전단 표석도 만나고 금봉사 앞을 지나기도 한다.

야트막한 고갯마루에 오르면 새배뫼(새배미, 新舟山)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은 명승지가 많아서인지 이정표도 여러 개 있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700여m 쯤 가다가 선계고개를 넘으면 바로 어실이다. 왼쪽으로 옛 백룡초등학교가 보이고 마을은 오른쪽 산 속에 숨어 있다.

▲ 마을표석(淸心禮讓)
마을 입구에는 승용차 크기만한 마을표석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어 이 마을이 예사롭지 않은 마을임을 짐작케 한다.
표석에는 청심예양(淸心禮讓)이라고 새겨져 있고 아래쪽에 ‘영원한 둥지 어실’이라는 시가 한 수 있다. [청심예양:스스로를 낮추어 예를 다함]

용상의 산천
용상의 진산(鎭山)인 박봉산(璞峰山, 389m)은 올몽졸몽한 작은 산봉우리 위로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의 지맥은 박봉, 돌봉, 진혈봉(辰穴峰), 동창재(東倉嶺)와 검습봉(劍習峰)으로 연이어져 마을 동녘을 감싸고 있어 동천이 넘쳐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박봉에서 서남쪽으로 휘어 돌아 온 나지막한 산줄기는 성(城)을 이루어 어실을 포옹(抱擁)하고 있어 외풍이 거의 없다. 이곳의 개울은 박봉산에서 흘러온 물과 새배뫼와 덕골을 지나 선계동을 흐르는 물이 배바위에서 만난다. 이 물은 어실에서 흐르는 우계(愚溪)와 다시 만나 엄바위를 지나 석교천을 이루며 달래(達川)골에서 흘러 온 물과 합류하여 내성천으로 흘러든다.

▲ 칠자정
용상(어실)의 역사
용상은 1634년 영천군(옛 영주) 어화면(於火面) 상소동(上所洞)으로 칭해 오다가 1914년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소동과 하소동을 통합하여 용상리(龍上里)라 하고 영주군 이산면 용상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이름은 어와실(御臥室), 어위실(御位室) 또는 어우실 이라 하였고 별호로 우곡(愚谷), 우계(愚溪)라 하였는데 이는 청심예양(淸心禮讓)의 선비정신(자신을 낮춤)의 발로이기도 하고, 마을을 감싼 산이 우(愚)자 형으로 생겨서 이름한 것이라고도 한다. 어실은 어와실, 어위실의 준말이며, 어와(御臥)는 임금님이 머물렀다는 뜻인데 그 기록은 찾을 수 없다.

▲ 고택
어실의 형성
유갑식 이장은 “안동권씨가 마을 개척하고 곧 이어 강릉유씨가 정착했다”고 했다.

안동권씨 세보에 의하면 「안동권씨 봉사공파(奉事公派) 21세손 인종(仁鍾)이 안동시 서후면 소밤(松波)에 살다가 임진왜란(1592) 때 이곳으로 숨어들어 어실 입향조가 됐다」고 기록했다. 그 후 인종의 딸이 강릉유씨 인걸(仁傑)과 혼인함으로써 강릉유씨는 안동권씨의 외손으로 두 성씨가 함께 살게 됐다. 또한 강릉유씨 세보에 따르면 「강릉유씨 시조 유전(劉전)의 19세손인 억용(億龍)은 경남 함창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학문에 정진하며 살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 장군과 의병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정유재란(1597)이 일어나자 난세를 피해 소백산으로 왔는데 이곳 절경에 취해 영천군 어실에 짐을 푸니 이 때가 선조34년(1601)년이다」고 기록했다. 두 문중의 세보를 맞춰보면 안동권씨 입향조 인종의 딸과 강릉유씨 입향조 억용의 아들(인걸)이 혼인하여 두 성씨가 사돈관계를 맺게 됐다.

▲ 용상교회
어실의 두 가지 보물
어실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유재수(87) 어르신이 소장하고 있는 ‘강릉유씨 역사괘도’이다. 켄트지 30여장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강릉유씨 천 년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용상교회 80년사’다. 2002년 유영인(1937-2009) 시무장로가 편집인으로 되어 있는 이 역사서에는 용상교회 80년사뿐만 아니라 영주의 역사, 문화, 교육, 산천 등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송지향 선생이 집필(1987)한 영주영풍향토사 이래 ‘가장 귀중한 역사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신교육의 시작과 백룡초등학교
어실은 원래 학문의 뿌리가 깊다. 1920년부터 1940년까지 용상교회가 서숙(書塾, 글방)을 설립하고 근대교육을 시작하여 항일 운동의 기반을 다졌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후 마을 사람들의 모금운동으로 1948년 용상고등공민학교를 세워 1955년까지 운영했다.

▲ 옛 백룡초
백룡초등학교는 1958.4.1 운문국민학교 ‘용상분교장’으로 인가받아 용상고등공민학교 교사(校舍)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나 교육 환경이 맞지 않아 2개 교실을 신축했다. 당시 국가 재정이 열악하여 지역주민들이 건축비의 50%를 부담했다. 그 후 1965.6.30 백룡국민학교로 승격되었으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촌인구 감소로 1999.9.1 졸업생 970명을 배출하고 이산초등학교로 폐합됐다.

옛 백룡초는 한 때 영어체험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천년염색전문기관(자닮)으로 남아 있다.

▲ 노인회관
어실이 배출한 인물
요즘 유승민 의원이 방송에 지주 나온다. 유 의원은 원내 대표에서 물러나고 대선주자 지지도가 9.0%로 상승하여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 의원은 어실 출신의 유수호(판사출신) 전 국회의원의 둘째 아들이다. 유승민 의원의 형(유승정) 또한 판사 출신으로 어실을 빛낸 인물들이다. 유승민 의원은 어실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어실이 아버지의 고향이고 어실 강릉유씨 후손이다. 그래서 묘제나 문중행사가 있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어실에 왔었다고 한다.

유수호 판사와 또래인 유재수(87) 어르신은 “어릴 적 이곳에는 학교가 없어 유수호는 멀리 평은소학교에 다녔다“고 하면서 ”유 판사댁은 당시 천석꾼은 아니어도 부잣집이었다. 그 후 대구로 가서 공부를 했고, 고대법대를 나와 판사가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권영창 전 영주시장, 권영순 영주새마을회 회장도 이 마을 출신이다.

▲ 효열각
어실마을 사람들
12일 오후 2시경 어실에 갔다. 유갑식(53) 이장은 “현재 어실에는 75호에 170명이 산다”고 했다. 전화번호부를 살펴보니 절반 이상이 강릉유씨이고 안동권씨는 안 보인다.

제일 연세가 높으신 유의종(92) 어르신은 “마을의 역사는 유재수 전 종친회장이 잘 알고 있다”며 유 전 회장을 소개 했다. 유재수(87) 어르신은 강릉유씨 족보와 역사를 기록한 괘도와 낡은 공책들을 한아름 안고 오셔서 자세한 내력을 설명을 해주셨다.

유두호(78) 노인회장은 “마을에 노인회원이 50여명 되는데 대부분 할머니들이고 남자는 20명 정도 된다”면서 “1950-60년대에는 이 마을에 150호가 넘게 살았고 3대가 같이 살았으니 1천명 넘게 살았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강성호(56) 새마을지도자와 손명희(48) 부녀회장은 현 용상교회 장로와 권사로 시무하고 있다. 마을의 역사가 담겨 있는 ‘용상교회 80년사’ 책을 보여주면서 용상의 유래와 산천과 역사를 설명해 주셔서 감사했다. 노인정 안방에는 이은정(74) 노인회 총무, 박연자(80)·이옥희(74)·채점순(81) 할머니들이 모여 ‘10원짜리놀이’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박연자 할머니는 “50년전 마을은 모두 초가집이었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다 먹었으며 호롱불 밝히고 살았다”고 했다.

이옥희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벼농사가 제일 많은 편이고, 수박, 고추, 생강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효열비와 칠자정을 안내해 주신 유 이장님, 안동권씨 내력을 찾아주신 권영순(어실출신) 새마을회장님, 강릉유씨 입향조를 찾아 주신 유재수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 유두호 노인회장
▲ 유갑식 이장

 

 

 

 

 

 

▲ 강성호 새마을 지도자
▲ 손명희 부녀회장

 

 

 

 

 

 

▲ 유재수 어르신
▲ 유의종 어르신

 

 

 

 

 

 

▲ 박연자 할머니
▲ 채점순 할머니

 

 

 

 

 

 

▲ 이옥희 할머니
▲ 이은정 노인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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