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계유정란(1453) 때 판관 허윤공이 은둔한 마을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64]안정면 동촌2리 조개섬

계유정란(1453) 때 판관 허윤공이 은둔한 마을

2015. 06. 18 by 이원식 기자

▲ 마을 전경
금성대군의 귀양지 패도(貝島, 조개섬)의 전설
수리시설이 좋아 벼농사가 발달한 마을

안정면 동촌2리 조개섬 가는 길

▲ 마을표석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 방향으로 향한다. 서천과 죽계천과 홍교천이 합류하는 서늘기 마을을 건너 죽계를 따라 올라가면 장수고개(고현동)을 만나게 되고 장수교를 건너면 아지동 마을 앞을 지나게 된다. 동촌1리(피끝)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는 옛 순흥도호부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고 하니 문루와 관군이 있고 많은 군마가 오가는 모습이 상상된다.

동촌고개를 넘으면 동촌1리(피끝마을)이고, 500m 가량 올라가면 동촌2리 조개섬이다. 피끝에서 조개섬, 순흥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단종애사와 관련된 전설이 많이 남아 있어 ‘충절의 길’이라고도 한다.

마을 둘러보기
동촌2리는 본 마을인 조개섬과 마을 뒤쪽 깊숙한 골짜기 옷나무골과 질골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조개섬마을을 죽계천에서 바라보면 층층 계단식으로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옛집 초가삼간에 슬레트를 얹은 집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고 흙벽돌집도 그대로다. 대부분 현대식 양옥집이나 슬라브집으로 개량되었고 옛집은 하나 둘씩 철거되고 있었다.

지난 7일 유서 깊은 조개섬마을에 갔다. 1970년대 지었다는 경로당은 마을 중턱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경로당 마당에 서니 조개섬과 순흥·단산까지 훤히 내려다보인다. 박성국 이장의 주선으로 박병훈(78)노인회장, 김숙자(56)부녀회장, 박오훈(80)원로장로, 박봉훈(60)안정면발전협의회장, 김동익(50)새마을지도자, 그리고 박차순(87)·장순희(80)·윤영숙(77)·손정희(82)할머니를 만나 마을 역사와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조개섬과 소나무
역사 속의 조개섬
풍기군지에 의하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때 풍기군 동촌면에 속했다. 당시(1849년 이후 발간)기록에 의하면 「동촌면은 (풍기) 관문에서 동쪽 20리까지이다. 안심산리(安心山里), 일원리(逸園里), 고암리(高巖里), 입암리(立巖里)는 영천[지금 영주]과 접경을 이루고 있고, 배치동리(杯致洞里), 우방동리(友訪洞里), 오산리(梧山里)[지금의 오계리], 단촌리(丹村里), 우음리(雨陰里)[지금의 피끝], 합도리(蛤島里)[조개섬]는 순흥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송지향의 영주·영풍향토지(1987)에는 「조개섬은 부(順興府)의 남쪽에 있다. 판관(判官) 허윤공(許允恭, 1391-1459)이 벼슬을 버리고 여기에 숨어 살았다.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水利)가 좋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재향지(순흥지)에는 「내동촌(內東村)이라 했다. 고노(古老)의 구전에 옛날에는 순흥 소속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상에서 볼 때 동촌은 본래 순흥부 내동촌에 속했으나 정축지변(1457년, 세조3년)으로 순흥부가 폐부되면서 풍기군으로 이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83년 순흥부가 복설되었으나 풍기군 동촌면으로 남게 됐다.

그 후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합도리, 우음리, 아지동 일부를 병합하여 ‘동촌리’라 칭하고 안정면에 편입시켰다. ‘동촌리’라고 한 것은 옛 동촌면소재가 우음동(동촌1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 조개섬 들
조개섬의 유래
조개섬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세조는 자기 아우 금성대군이 사육신에 연루되었다 하여 순흥으로 귀양 보냈다. 귀양지가 바로 순흥 패도(貝島. 조개섬)이다」라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즉 금성대군이 육지속의 섬 패도(조개섬)로 귀양을 왔다는 설이다.

두 번째 유래는 동네 앞에 논가운데 섬이 있고 섬 가운데 큰 소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이 섬을 ‘조개섬’이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섬 주변에 민물조개가 많이 서식했다는 구전도 있다.

세 번째는 멀리서 보면 동네 형국이 조개와 같다하여 조개섬(蛤島)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네 번째로 사람들이 논 가운데에 있는 섬을 보고 “조개섬이야!”라고 비웃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논 가운데 있는 섬을 오랜 옛날부터 ‘조개섬’이라고 불러왔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 골목길
마을 표지석에 박수항 선생이 쓴 ‘마을의 유래’에 의하면 ‘이조 중렵 김해김씨가 마을을 개척하여 살았다’고 하였으나 그 근거는 찾을 길이 없다. 밀양박씨의 동촌 입향은 박수항 선생의 12대조인 박지(朴지) 선조가 1650년경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확인했다.

박지는 충순위선략장군을 거쳐 경상병마사를 지냈으며 가선대부병조참판에 증직됐다. 그 후 순흥안씨와 경주김씨가 입촌하여 큰 동네를 이루었다. 이상의 기록에서 볼 때 판관 허윤공이 1450년경 숨어살았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됐다. 이로써 조개섬은 600년 역사를 가진 마을이라 할 수 있다.

▲ 벽돌집
조개섬에 대한 추억
이 마을 출신 김석제 교장은 조개섬의 추억을 다음과 같이 들려줬다. 지금 조개섬은 마을 앞 논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조개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그 자리에 수령 수백년 되는 느티나무가 있었고 당집도 있었다고 한다.

병자년(1876년) 수해로 재방이 터져 나무와 당집이 쓸려나간 뒤 마을 사람들이 새로 섬을 만들었으나 그 뒤 여러 번 수해로 섬이 점점 작아졌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섬 주변 논에는 우렁이, 민물고기, 민물조개가 서식하고 있었고, 하천보다 논이 깊어 물이 향상 고여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얼음지치기와 연날리기, 팽이치기, 깡통에 구멍을 뚫어 망월놀이(쥐불놀이)를 하던 곳이다.

▲ 고향집
마을의 옛 모습
박성국 이장은 “1960~70년대에는 60여호에 500여명이 살았으나 지금은 30여호에 1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라고 하면서 “이 마을은 물이 풍부하고 논농사가 발달하여 비교적 부유한 마을로 소문이 나 있다”고 했다.

박차순 할머니는 “옛날 모두가 보릿고개를 넘을 때 우리 마을은 쌀밥 먹고 살았다”며 부자마을이었음을 자랑했다.

장순희 할머니는 “가마 타고 시집 올 때 가마에서 내리니 돌담과 초가삼간 집이 보였다”면서 “마을은 모두 초가집 뿐이었다”고 했다. 손정희 할머니는 “마을에는 큰샘과 중간샘 윗샘 등 샘이 세 곳에 있었으며, 빨래는 마을 앞 개울가(죽계천)에 가서 했다”고 추억했다. 박봉훈 발전협회장은 “동촌은 옛날부터 물이 풍부하여 벼 농사가 발달해 왔다”며 “이 마을 이강식(50대)씨는 기계화한 과학영농으로 300여마지기 벼농사를 지어 부농의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김동익 지도자는 “어릴 적 마을에 학생수가 56~60명이나 됐고, 오계초에는 학년마다 1,2반이 있어 전교생이 600명 넘었다“고 했다.

▲ 마을회관
조개섬 사람들
작은 마을이지만 윗마을은 순흥안씨, 옆 마을은 밀양박씨, 아랫마을은 경주김씨가 화합하고 협동하면서 살고 있다. 마을 뒷동산 한가운데 작은 동산을 꽃반등이라 했다. 이 곳에서 보면 멀리 순흥과 단산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동산에는 여러 가지 야생화와 소나무, 잡목 등이 있었는데 새마을사업으로 동산이 축소되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 홍수 구경을 하던 곳이고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대화 장소였다.

지금은 이 자리에 마을회관이 들어서는 바람에 꽃반등은 없어지고 동네 사잇길도 폐쇠되었다. 박병훈 노인회장과 박오훈 어르신은 “해방과 6.25 후 모두 가난하고 보릿고개를 넘으며 살았지만 자녀 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았었다”면서 “그래서 의사, 목사, 박사, 교사, 교장, 사무관 등을 많이 배출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마을 빛낸 인물들을 하나 둘씩 거명할 때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봤다. 아동문학가 이동식 교장(‘개나리 노란배’란 동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림), 박수진, 김백제, 김석제, 김동태, 안명숙 등 교육자, 조금익 영주군청근무, 박춘배 시청국장, 김창기 동산교회 목사, 박중훈 국무조정실 근무, 박혜선 외과전문의사, 박원훈 쌍룡증권이사, 박현훈 (주)한림대표, 박선희 목사 등을 꼽았다.

▲ 박성국 이장
▲ 박병훈 노인회장

 

 

 

 

 

 

▲ 김숙자 부녀회장
▲ 박봉훈 안정면 발전협의회장

 

 

 

 

 

 

▲ 김동익 새마을지도자
▲ 박수항 어르신

 

 

 

 

 

 

▲ 박오훈 원로장로
▲ 박차순 할머니

 

 

 

 

 

 

▲ 손정희 할머니
▲ 장순희 할머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