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우리고장 최대 사과 생산지 임곡1리 ‘숲실’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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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 탐방[59] 부석면 임곡1리(숲실)

우리고장 최대 사과 생산지 임곡1리 ‘숲실’

2015. 05. 17 by 이원식 기자

▲ 숲실마을전경
공민왕의 피난처 성문안 왕비골 전설
당도 높고, 신맛 강한 명품 사과 생산

부석면 임곡1리(숲실) 가는길
임곡1리 숲실로 가는 길은 부석네거리 회전교차로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향한다. 부석사로 가는 길에는 초록 새순이 눈부시게 빛나고, 멀리 태·소백 능선의 푸르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길을 300m 쯤 오르면 좌측에 500년 수령의 동수나무가 있고, 그 옆에 임곡1리 표지판이 나타난다. 표지판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높은 산을 쳐다보면서 가면 숲실로 가는 길이다.

▲ 숲실 경로회관
옛적에는 숲이 우거진 숲길이었으나 지금은 끝없이 이어진 과수원길이다. 하얀 사과꽃이 만발한 과수원길을 따라 1.2Km 쯤 오르면 소백산을 등진 숲실마을이 나타난다.

저 멀리 왕비골에서 발원한 임곡천이 마을 가운데를 흐르고,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계곡 우측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난 3일 오전 마을경로회관에서 김원상 이장, 김여수 노인회장, 이분년 부녀회장과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사과 이야기를 듣고 왔다.

▲ 임곡1리 표지판
마을의 구성과 유래
임곡1리는 본 마을인 ‘숲실’과 동쪽으로 3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곰마(고촌)’로 이루어져 있다. 숲실 경로회관에서 사그랭이로 넘어가는 고개에 당재(堂峴)가 있다. 이곳에는 부석사신을 모신 서낭당이 있었으나 새마을시대 때(1970년대 중반) 없어졌다고 한다.

당재 너머에는 ‘당남지(堂南池)’가 있고 숲실 뒤 언덕빼기에는 ‘당(堂)두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당집을 중심으로 당(堂) 남쪽에 있다고 ‘당남지’, 당 언덕위에 있다고 ‘당두들’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마을 원로들에 의하면 500여년 전 당남지에 처음 마을이 열렸고, 그 이후 당두들에 사람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숲실은 6·25를 전후하여 산촌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이면서 큰 마을이 됐다고 한다.

▲ 임곡1리 전경
역사의 기록으로 본 임곡1리
1849년에 발간된 재향지(梓鄕誌, 순흥읍지)에 의하면 임곡리 지역은 순흥도호부 삼부석면(三浮石面)에 속했다. 「삼부석면은 동은 수식면, 남은 도강면, 서는 영춘, 북은 영월 경계에 접한다. 마을 이름은 임곡(林谷)[숲실]·대율곡(大栗谷)[한밤실]·방동(方洞)[방골, 부석사 인근]·독유동(獨遊洞)·사문단(沙文丹)[사그랭이]·호문단(好文丹)·마흘천(馬屹川)[남대리]·의풍(義豊)」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주시 연혁을 보면 1413년(태종13) 지방행정구역이 8도로 개편되면서 경상도 순흥도호부 삼부석면으로 불러오다가 1896년(고종33) 13도제로 개편될 때 경상북도 순흥군 봉양면으로 개칭됐다. 당시 임곡리가 봉양면의 중심지였으며 면사무소가 이곳에 있었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주군 부석면 임곡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곰마(고촌)
공민왕의 피난처 왕비골의 전설
소백산 마구령 주변에는 어래산, 행재소(行在所), 행궁터 등 공민왕의 몽진 어가행렬이 지나간 자취마다 지명을 남겼다. 임곡1리 왕비골(王妃谷)도 공민왕의 피난처라고 전해지고 있다.

영주 향토사학자 송지향(宋志香, 1918-2004) 선생이 1978년 발행한 영주·영풍향토지에는 왕비골 전설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당시 이 마을 김준상(金俊相)씨의 안내로 현지를 답사하고 기록했다)

「숲실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3㎞쯤 올라가면, 깎아지는 듯한 암벽이 동·서로 마주보고 솟아있는 천연의 성문이 있다. 동남향으로 열린 이 골짜기는 험준한 산줄기가 성을 이루고 있으며, 골짜기 안은 상당한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주변은 잡초와 관목이 우거져 있으며, 무너진 축대와 기왓장들이 보인다. 숲실 사람들은 ‘공민왕의 피난처’였다고 전해진다.

▲ 왕비골 원경
사면을 에워싼 산줄기는 가파르고 험하다. 자연적인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축조된 성벽이 지금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서북쪽 정상 능선을 넘어서면 수십길이나 되는 절벽 위에 “망군(望軍)바위”가 있다. 공민왕이 피난 와 있을 때 군사들이 이 바위에 올라 망을 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망군바위에서 북쪽으로 비탈을 돌아가면 “왕비골(王妃谷)”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이 골짜기에는 노국공주가 피난했다고 전해진다.

김여수(77) 노인회장은 “수년전에 왕비골에 가봤는데 산이 험준하고 산돼지가 출현하는 곳이라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면서 “성문안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피난처로 전해지고 있으며, 암벽 자연성문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고 말했다.

▲ 당남지와 사과원
영주사과 최대 주산지
임곡1리는 해발 400m 이상 넓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어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사과 특유의 신맛이 강해 고품질 사과로 평가받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숲실마을은 광활한 사과숲 지대를 이루고 있다. 총면적 95ha(28만 8천평)에서 연 1천500톤을 생산하여 약 35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나 단위마을 생산량으로 전국 최대 사과생산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상익(70) 사과연구회장은 “우리마을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영주사과의 명예를 걸고 수도권지역 유명백화점 등으로 출하하고 있다”며 “해마다 수요가 늘어나 생산면적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마을입구 동수나무
숲실마을 경로회관
기자가 숲실에 갔던 날 성균대 한문교육학과 학생 17명이 농촌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와서 사과꽃따기와 수로설치 작업 등을 도왔다.

이분년 부녀회장과 부녀회원들은 학생들 점심을 챙겨주면서 “고맙고 감사하다”며 “가을에 사과 딸 때 또 오라”고 당부했다. 학생대표 이로빈(2학년)은 “연휴기간 3일동안 농촌일손 돕기를 했다”며 “농활을 통해 땀을 체험했고, 사과꽃을 따면서 자연의 오묘한 진리를 배우고 느끼고 간다”고 말했다.

1995년에 지어진 경로당은 어르신 20-30명이 모여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생활하는 곳이다. 젊은 어르신(70대)이 나이 많으신 어르신(80대)을 돌보는 노노케어(老老 care)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김원상 이장은 “노인회관은 아직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어 농활 온 학생이 전화기를 빠트리는 등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며 “농활대와 어르신들을 위해 수세식화장실 설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 옛 서낭당터
숲실마을 사람들
숲실은 사과농사에 주력하면서 봄에는 산나물, 가을에는 송이를 많이 생산하는 산마을이다. 경로당 안방에서 만난 김선옥(77)·이경선(71)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어른을 공경하고 화합이 잘 되는 마을”이라면서 “오늘도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점심을 같이 먹었다. 부녀회장과 회원들의 수고가 많다”며 부녀회원들을 칭찬했다.

경로당 좌장이신 김두영(85) 어르신은 “옛적에는 성문안(왕비골)에도 사람이 살았다. 6·25 전에는 빨갱이들의 은거지이기도 했고, 그후 독한 소주를 고아내는 소주양조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진영(83) 어르신은 “이 지역은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던 곳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았다. 박정희 대통령때 통일벼가 나오면서 쌀밥 먹고 살게 됐고, 지금은 사과 농업이 발달하여 잘 사는 마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김원상 이장은 “우리마을은 최근 귀농·귀촌이 많아 100가구에 230명이 사는 큰 마을이 됐다”고 했다.
이 마을에는 2만평 이상 대농원을 경영하는 집이 5집 정도 되며, 100가구 중 90가구 이상이 사과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김 이장은 마을의 자랑으로 “우리마을 이상호(60)씨는 반장 경력 40년으로 어르신들의 손발이 되어 크고 작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 또 6년 전 귀농한 김용채(43)씨는 부녀회 총무를 맞아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칭찬했다.

숲실에는 4대가 한집에 사는 집이 한집 있고, 3대가 사는 집은 여럿집이 있다. 귀촌이 늘어나면서 초중고 학생도 10여명으로 늘어 마을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 김원상 이장
▲ 김여수 노인회장

 

 

 

 

 

 

▲ 이분연 부녀회장
▲ 김두영 어르신

 

 

 

 

 

 

 

▲ 김진영 어르신
▲ 김선옥 할머니

 

 

 

 

 

 

▲ 이경선 할머니
▲ 이상익 사과연구회장

 

 

 

 

 

 

▲ 이상호 반장
▲ 김용채 부녀회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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