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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53] 봉현면 노좌3리(다래골)

다래숲 우거진 두메산골 노좌3리(다래골)

2015. 04. 02 by 이원식 기자

▲ 다래골 마을전경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청정지역
오감으로 느끼는 ‘다래골 꿀사과’ 으뜸

봉현면 노좌3리(다래골) 가는길

▲ 마을표석
풍기 남원사거리에서 풍기 IC방향으로 향한다. 봉현초등학교 앞을 지나 히티재를 오르노라면 사과 주산지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산천이 모두 사과원이다.

겨울잠을 깬 사과나무들이 양팔을 벌리고 힘껏 역기를 들어 올리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근육이 튼실한 사과나무를 보니 올해도 풍년농사가 기대된다.

히티재를 넘으면 내리막길이다. 유전리 ‘꽃피는 산골광장’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노좌1리이다. 노좌1리 초입에서 우회전하면 노좌2리 사리미 앞을 지나게 되고 산 속 깊숙이 더 올라가면 ‘노좌3리 다래골’ 표석을 만나게 된다.

마을 입구에 왔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고 높은 산과 V자형 계곡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사과나무만 보인다. 개울가에도 언덕배기에도 빈자리만 있으면 사과나무가 심겨져 있다. 사과는 자구산 6부 능선까지 공격하여 이제 산 정상 점령의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이 마을이 다래숲을 헤치고 삶의 터전을 개척한 다래골이다.

지난 20일 두메산골 다래골을 찾아가서 김용철 이장, 김용수 노인회장, 김용자 부녀회장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다래골의 옛 이야기와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 다리목말
마을의 역사
노좌리는 조선시대 때 풍기군 노좌리면이었다. 1849년경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풍기군지」에 따르면 「노좌리면(魯佐里面)은 관문에서 남쪽으로 30리까지이다. 유음리(柳陰里), 이전리(泥田里), 대촌리(大村里), 하촌리(下村里)가 있으며 안동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유음리와 이전리를 통합하여 유전리라 하고 노좌리면(노좌리, 유전리, 대촌리, 하촌리)과 와룡동면(臥龍洞面, 대촌리, 홍인동리, 신기리, 두치동리)을 봉현면에 편입시켰다. 이때 봉현면이 탄생했고, ‘봉현’이란 명칭은 유전동에 있는 봉(鳳)고개의 이름을 따 봉현면(鳳峴面)이라 했다.

▲ 중말
노좌의 유래
노좌리는 노쟁이, 노자(奴者), 노좌(魯佐) 등으로 불러왔다. 전설에 의하면 노좌마을 앞산이 ‘주마산(走馬山)’이고 산 밑에 마부(馬夫)가 살았다고 하여 종 노(奴)자를 써서 노자(奴者)라 불러 오다가 약 250년 전 진성이씨 경활이라는 선비가 마을 이름이 상스럽다 하여 노자(奴者)를 노좌(魯佐)로 바꾸었다고 한다. 노좌를 노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노좌가 세월 따라 흐르다 보니 노쟁이로 변했다는 설과 일제가 이 지역 사람들을 비하(卑下)하기 위해 노쟁이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노좌3리 진필하(71)씨는 “주마산(走馬山)은 말(馬)을 상징하기 때문에 마부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노자(奴者)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말했다.

▲ 상말
다래골의 내력
옛날 이곳은 자구산과 천부산이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고 한다. 깊은 산중으로 약초를 캐러 온 사람들이 이곳 산세를 살펴보니 다래끼(아가리가 좁고 바닥이 넓은 작은 바구니) 같이 생겼다 하여 ‘다래골’이라 했다고 영주시사에 전한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옛날에 사람들이 산전(山田)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이 곳에 왔을 때 이곳은 산 전체가 다래 숲으로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래 숲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했다 하여 ‘다래골’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이 마을 김용수(78) 노인회장은 “다래숲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했다는 말이 맞다”며 “지금도 7부 능선 위로 올라가면 다래덤불이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 추월당말
마을의 형성
다래골에는 다리목, 추월당, 중말과 상말이 있다.[마을을 말이라고 함]
마을 초입에 ‘다래골’이라는 표석이 있고 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가 있다. 이곳을 다리목이라고 한다. 옛날 이곳에 돌로 놓은 징검다리가 있었다 하여 마을이름을 ‘다리목’이라 했다. 지금은 띄엄띄엄 일곱 집이 살고 있다. 다리목과 중말 사이 골짝에 추월당이란 마을이 있다.

조선 중엽 추월당(秋月堂) 한산두(韓山斗) 선생이 자구산 중턱에 서당을 짓고 추월당이란 현판을 걸고 인재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호를 따 마을이름을 추월당이라 했다. 추월당 마을에는 현재 넷 집이 살고 있다.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이 중말이다. 다래골의 중심마을이며 일곱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상말은 중말에서 500m 쯤 더 위쪽에 있는 마을로 해발 500m에 위치한 고지(高地)마을이다. 현재 다섯 집이 살고 있다.

▲ 토담집
추월당 한산두 선생
한산두(韓山斗, 1556-1627년)는 조선 중기 유학자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출신지는 영주(榮州)이다. 어려서부터 기개가 강직했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임금과 관료들이 도성을 버리고 파천(播遷)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자 군주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해서는 안 된다는 상소를 올리고 직접 진두지휘할 것을 청원했다. 이후 홍의장군 곽재우와 함께 궐기하여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화왕산성 전투에 참전하여 공적을 세웠다. 그 후 벼슬에 대한 뜻을 끊고 노좌(추월당)에서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그는 사후 노계서원(魯溪書院, 노좌2리)에 배향됐다.

아삭! 달콤! ‘다래골 꿀사과’
다래골은 더 이상 길도 없고, 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청정 두메산골이다. 오직 하늘과 땅 그리고 자연만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는 사과를 아이러브 영주사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고 있다.

김용철 이장은 “우리 다래골은 경북 최북단 해발 500m 6부 능선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높은 일교차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아삭하고 달콤한 꿀사과를 생산하고 있다”고 하면서 “저장고에서 바로 나온 사과를 한 입 깨물면 아삭하고 달콤한 다래골 꿀사과의 맛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래골 대표전화 054-637-6557, 011-515-6557]

▲ 살개바위
다래골 사람들
다래골에는 23가구가 살고 있으며 사람 수는 30명 조금 넘는다. 집이 띄엄띄엄 흩어져 살지만 마을회관에 모여 밥도 같이 먹고 서로 돕고 나누는 등 두레적 삶의 지혜를 창조해 나가는 마을이다. 추월당에 사는 황동수(81) 어르신은 “예전에는 산전(山田)에서 담배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서 “당시는 쌀이 최고라 계단식 다락논을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과원으로 변했다”고 했다.

김화자(77) 할머니는 “40여 년 전 마을에 전기가 들어 왔을 때 가장 좋았다”고 했고 심상석(80) 할머니는 “새마을 운동 때 초가집을 스레트 지붕으로 바꿨을 때 큰 발전이고 변화였다”고 말했다. 김규옥 할머니는 “우리마을에 보물이 하나 있다”고 하면서 살개바위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용수 이장과 살개바위 현장에 가 보았더니 디딜방아를 걸쳐놓는 살개모양의 자연석이 있어 신기했다. 송원숙(77) 할머니는 소복재(소목재라고도 함)의 전설을 들려줬다. 옛날 한 여성이 소복을 입고 고개를 넘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귀농 5년차인 김용자(64) 부녀회장은 “뒷산 과수원에 가서 냉이를 캐왔다”고 하면서 “다래골은 축사도 없고 관광지도 없는 등 오염원이 전혀 없는 마을로 소백산 아래 제1의 청정지역”이라고 말했다. 경로당에서 제일 젊은 새댁인 정순남(65)씨는 “예전에 모두 어렵게 살면서도 교육열이 높아 자녀들을 훌륭히 교육시켜 모두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자랑했다.

어려서부터 추월당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는 진필하(71)씨는 “추월당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수 백년동안 서당이 유지되어 왔다”면서 “신교육이 시작된 후에도 서당은 계속됐고 1970년대 말까지 박재경(당시 60세) 이란 선비가 서당을 운영했었다”고 말했다.

다래골은 때 묻지 않은 마을, 순박한 마을, 선비가 살던 마을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래골에서 내려왔다. 

▲ 김용수 노인회장
▲ 김용철 이장

 

 

 

 

 

 

▲ 황동수 어르신
▲ 김용자 부녀회장

 

 

 

 

 

 

▲ 송원숙 할머니
▲ 심상석 할머니

 

 

 

 

 

 

▲ 김규옥 할머니
▲ 김화자 할머니

 

 

 

 

 

 

▲ 정순남 씨
▲ 진필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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