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500년 선비의 자취 간직한 단산면 ‘파회(바우)마을’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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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탐방[48] 단산면 사천2리

500년 선비의 자취 간직한 단산면 ‘파회(바우)마을’

2015. 02. 27 by 이원식 기자

▲ 마을 풍경
500여년 전 입향한 함창김씨 집성촌
파회가 배출한 대표적 인물 김구정(金九鼎)

단산면 사천2리(바우) 가는 길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 방향으로 향한다. 귀내-장수고개-피끝을 지나 조개섬 앞 회전교차로에서 단산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사천교를 건너면 좌우로 수백 마지기가 넘는 새내들이 펼쳐진다.

들판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1km 쯤 가면 낮은 언덕길 우측에 단산면 표지판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단산면 사천리이다. 사천1리(새내) 마을 앞을 지나 500여m 쯤 올라가면 좌측에는 효자각이 있고 우측은 구구교(다리)가 나타난다. 도로 좌측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이 500년 선비의 자취를 간직한 파회마을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입암대(立巖臺)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고, 마을의 모습은 고택과 정자로 어우러진 아담한 옛 마을이다.

지난 9일 파회마을에 가서 김운호(52) 이장과 김낙봉(78) 노인회장, 홍차희(87) 노인회 부회장 등 마을어르신들로부터 마을의 옛 이야기와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 500년 수령 느티나무
마을의 역사
이 지역은 조선시대 때 영천군 동원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단산면에 편입됐다.

단산면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현(梧峴, 오티), 구고(九皐, 구두들), 이목곡(梨木谷, 배남실), 사천(沙川), 등영(登瀛), 구미(龜尾), 자분리(自分里), 오상(五相) 등은 영천군 동원면에 속했고, 병산(甁山), 서창(西倉), 회석(檜石), 단곡(丹谷) 안남동(安南洞), 성곡(聲谷, 소리실), 좌석(座石), 삼가리(三街里), 마락리(馬落里) 등은 영천군 일부석면(一浮石面)에 속해 있었다. 한일합방 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이 지역이 낳은 선비 중 질막의 단곡(丹谷) 곽진(郭瑨) 선생과 병산(甁山, 바우)의 서현(西峴) 김구정(金九鼎) 선생의 동네이름을 따 단곡의 단(丹) 자와 병산의 산(山) 자를 합하여 단산(丹山)이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파회(波回)는 ‘바우’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통용되고 있다.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산 끝에 돌출하여 ‘바우’라 불렀으며, 윗마을 띠기[茅溪, 모계]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 바위에 부딪혀 물굽이 치며 돌아 흐른다고 하여 ‘파회(波回)’라는 지명이 생겼다.

안동의 하회마을은 강물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간다고 해서 물 하(河)자를 써서 하회(河回)라 하였고, 파회(波回)는 구계수(龜溪水, 사천의 옛 이름)가 바위에 부딪혀 물결치며 돌아 흐른다고 해서 물결 파(波)자에 돌 회(回) 자를 써서 ‘파회’라 하였다고 한다.

▲ 바우고택
마을의 형성
파회마을은 소백산에서 이어진 한 갈래 산줄기가 삼십리를 달리다가 남쪽의 학가산(鶴駕山)과 들판 건너 무학봉(舞鶴峰)을 안산(案山)으로 한 완월봉(玩月峰) 아래 동향으로 자리 잡았다.

함창김씨가 이곳에 입향한 것은 500여 년 전 장사랑(將仕朗) 김사종(金嗣宗) 선생에 의해서다. 김사종은 영천(영주 옛아름)에 입향한 김중보(金重寶) 선생의 현손이다. 함창김씨가 단산 파회를 개척한 후 많은 문행이 이어졌다.

사종의 아들 희준(希俊)은 선원전참봉(璿源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또한 희준의 아들 서현(西峴) 김구정(金九鼎)은 단산 파회가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 서현선생 유허비
서현 김구정 선생
김구정은 선조 15년(1582)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 청주 훈도(訓導)를 거쳐 성균박사, 사헌부감찰, 형조좌랑, 호조정랑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평양까지 호종하였으며 그해 겨울 외직을 구하여 영해부사에 부임돼 백성들을 위로하여 안주시키고 굶주림을 구제함에 온갖 힘을 다하였다. 1596년 종묘서령, 경상도사를 거쳐 1603년 종부시정, 함안군수가 되었으며, 1604년 호성원종 1등 공신에 책록됐다.

1606년 청도군수, 1608년 의성현감, 1610년 정선군수, 1612년 대구부사를 지내다가 1613년 대북파의 농간으로 인목대비가 폐비되자 벼슬을 던지고 물러났다. 1624년(인조 7)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이듬해 가선대부(嘉善大夫) 요양위 부호군이 됐다.

▲ 반학당
파회마을은 임천(林泉)의 경관이 수려하고 서쪽에 한 고개가 있어 서현은 자신의 아호를 서현(西峴)이라 했다. 서현 선생은 마을 앞 냇가에 높은 바위절벽이 드리우고 있어 그 위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고 시원스러워 이곳에 정자를 세워 반학당(伴鶴堂)이라 하고 그곳에 거처하면서 유유자적하며 보냈다.

서현은 소수서원장으로 추대되어 오래 재임하면서 실천의 선비를 양성함에 심력을 바쳤으며 서원의 재정을 도와 장학에 이바지했다.

▲ 암호정
선비들이 남긴 흔적
파회마을은 암호(巖湖) 김정용(金正鏞), 소암(小巖) 김준용(金駿鏞), 청심(聽心) 김성락(金成洛) 등의 인물들이 배출되어 파회의 함창김문을 일구었다.

또한 파회에는 서현 선생의 유적인 반학당(伴鶴堂)과 선생의 정자가 있던 입암대(立巖臺), 즐겨 소요하던 반환암(盤桓岩), 사천(沙川)의 여울물을 바라보며 즐기던 반석인 관란대(觀瀾臺)가 있었으며, 김정용의 암호정, 김준용의 만성재, 김약해의 정려각과 순흥부사 조준구(趙駿九)의 선정비 등 유적들이 남아있다.

사천2리(바우) 경로당
마을 가운데 경로당이 있다. 2008년 신축한 이 경로당은 넓고 깨끗하다. 이날 오전 11시 경로당에는 이기출(88) 할머니를 비롯한 황순희(80), 권정희(80), 김상금(78), 허옥규(77) 할머니 등 여러분이 모여 있었다.
마을에서 좌장이신 이기출 할머니는 “75년 전 15살 신부가 20살 신랑을 만나 마당에서 혼례를 올리고 자분마을에서 가마 타고 바우로 시집왔다”고 하면서 “당시 처녀공출(정신대)에 안 잡혀 가는 길은 일찍 시집가는 게 최상책이었다”고 말했다.

권정희 할머니는 “우리는 매일 7-8명이 모여 점심을 같이 먹고 노래하고 화투치고 놀다가 4시 넘으면 집으로 간다”고 했다. 황순희 할머니는 “60년 전 농촌은 초가삼간 오두막집에서 살면서, 목화 심어 명 잣고 삼갈아 베짜 옷해 입고 살았다”며 “당시 모두가 못 살고 힘들었지만 서로 돕고 정 나누면서 살았다”고 말했다.

12시 40분 점심상이 차려졌다. 나이 제일 적은 박홍희(68) 할머니가 주방장이 되고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호박국과 묵껍데기, 계란찜, 깻잎짠지, 김치, 연근 등을 반찬으로 고향맛 듬뿍 담긴 점심을 같이 했다.

▲ 파회마을 전경
파회마을 사람들
파회에는 27가구에 50여명이 산다. 벼농사를 중심으로 포도, 딸기, 인삼, 약초 등을 재배하는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 김운호 이장은 과학영농인으로 비닐하우스에서 딸기재배를 한다. 김 이장은 “딸기는 수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며 “농업기술센터의 지도로 무게와 당도, 착색 등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으며, 친환경 재배로 농약잔류 걱정 없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성황단
이웃에 사는 서광석씨는 김 이장에 대해 “김 이장은 지난 6일 단산면농업경영인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이루어지던 3단 화환을 우리지역 농산물 쌀로 대신해 줄 것을 당부하여 취임 축하로 받은 10kg 쌀 50포대를 면사무소에 기탁하여 어려운 가정에 전달되도록 하여 관내 칭송이 자자하다”고 칭찬했다.

김낙봉 노인회장은 500년 수령 느티나무 설명도 해 주시고 마을 앞산에 있는 성황당 이야기도 하면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제관(헌관과 집사)들이 성황당에 가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성황제를 올리고, 이튿날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복을 하고 윷놀이를 한다”고 말했다.

소중한 문화유산과 유물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주민들이 뜻을 모아 2009년 민속박물관을 건립했다. 박물관에는 선조들이 보관해 오던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비롯하여 옛 레코드판(LP), 새끼꼬는 기계, 잡곡 정선기, 솜타는 기계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과거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 여물통, 50~60년대 전축, 오래된 밥상, 항아리, 문갑 등 지금은 경매장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각종 민속품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어 마을의 자랑이 됐다.

오랜 세월동안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김병수(68)씨는 경운기 시동을 걸면서 “이제 슬슬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기출 할머니
▲ 김운호 이장

 

 

 

 

 

 

▲ 홍차희 노인회부회장
▲ 김낙봉 노인회장

 

 

 

 

 

 

▲ 김상금 할머니
▲ 황순희 할머니

 

 

 

 

 

 

▲ 허옥규 할머니
▲ 권정희 할머니

 

 

 

 

 

 

▲ 박홍희 씨
▲ 김병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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