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선비의 학문적 전통과 고향의 정취를 간직한 ‘무섬마을’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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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탐방 [45]문수면 무섬마을

선비의 학문적 전통과 고향의 정취를 간직한 ‘무섬마을’

2015. 01. 28 by 영주시민신문

▲ 무섬마을 전경
입신양명 보다 ‘학문을 중시’한 선비의 마을
민족혼 일깨운 ‘아도서숙의 정신’ 이어가다

무섬마을 가는 길
시내에서 농협퍼머스마켓 방향으로 향한다. 농협주유소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300m 쯤 가면 탑거리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좌측으로 향하면 장바우마을, 문수면소재지를 통과하게 된다. 문수역 앞을 지나면 적동삼거리가 나오는데 무섬마을은 좌측방향이다. 서천강변을 따라 직진하다보면 노트리 버스승강장이 나온다. 우회전하여 난간 없는 다리 승평교를 건너서 낮은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가면 다시 강변도로가 나타난다.

이 곳은 서천과 내성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강변도로를 따라 500m 쯤 내려가서 무섬으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면 바로 무섬마을이다.

지난 17일 오전 무섬마을에 갔다.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무섬마을 돌담길에서 김한건 이장, 김선광 무섬마을보존회장, 박덕우 지역주민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골목길을 걸어 전통가옥을 둘러보면서 김광호(68)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 무섬마을 옛모습
마을의 역사
옛 문헌에는 ‘무섬마을은 영천군 진혈리(辰穴里) 지역으로 진혈리에는 금광, 놋점, 검암, 묵암, 송평(소드리), 섬계(무섬), 탄산(머럼), 조제, 청령, 멱곡 등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 후기 기록에는 ‘섬계(무섬), 금광, 용혈 등은 진혈면에 속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무섬마을 설경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천군, 순흥부, 풍기군이 통합되면서 영주군 평은면 수도리(水島里)가 되었다. 당시 일제가 지역민들과 합의하여 ‘수도리’라고 정했다고 전해진다.

1980년 영주시 승격으로 영주시 평은면 수도리로 되었다가 1983년 영풍군 문수면 수도리로,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될 때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만죽재 고택
무섬마을 유래
무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66년(헌종7년)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수(朴수, 1641-1709) 선비가 강 건너 머럼에서 이곳으로 건너와 마을을 개척하고 만죽재를 건립했다. 그 후 박수의 증손서(曾孫壻)인 김대(金臺, 1732-1809)가 1757년(영조33)에 처가 마을인 이곳으로 들어오면서는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두 집안이 집성촌을 형성했다.

▲ 섬계초당
입향조는 마을이름을 ‘섬계’라 칭하고 당호를 섬계당이라 하였다. 당시 ‘섬계’라는 명칭과 ‘무섬’이라는 마을이름을 함께 사용해 오다가 100여 년 전부터 ‘섬계’는 차츰 사라지고 ‘무섬’으로만 부르게 되었다.

민족혼이 담긴 ‘아도서숙’
무섬마을 아도서숙(亞島書塾)이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민족 독립을 위하여 주민을 계몽하고 일제에 항거하며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던 장소가 아도서숙이다.

▲ 아도서숙
‘아도서숙’이란 무슨 뜻일까? 아도(亞島)는 ‘아세아 조선반도의 수도리(亞細亞 朝鮮半島의 水島里)’라는 뜻이고 서숙(書塾)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서당보다 큰 의미이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10월 무섬마을 해우당(海愚堂) 후손 김화진(金華鎭) 선생의 주도로 마을 청년들이 세운 공회당이자 주민교육기관이다. 1933년 7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될 때까지 글 모르는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농업기술을 가르쳤으며 우리말로 민족교육을 실시하면서 민족의 얼을 드높이던 곳이다. 김화진 선생을 비롯해 당시 아도서숙 운영을 주도하고 신간회 영주지회, 영주청년동맹 등을 이끌었던 이들 중 5명은 사후에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다.

무섬 후손들은 “선조들의 선비정신이 ‘아도서숙’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 외나무다리
전국 7대 민속마을 중의 하나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무섬은 우리말 원래 이름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360도 휘감아 흐르고, 내 안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래톱 위에 자리 잡은 무섬은 환경운동가들이 뽑은 세계 제1의 아름다운 모래마을이기도 하다.

▲ 까치구멍집
마을은 38동이 전통가옥이고 그중 16동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이다. 그래서 2013년 중요민속문화재(제278호)로 지정됐으며 2005년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재도 많아 만죽재, 해우당고택, 김덕진, 김뢰진, 김위진, 김규진, 김정규, 박덕우, 박천립 가옥 등 9점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또는 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마을
무섬마을에 있는 김성규 가옥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의 처갓집이다.

김성규는 항일독립운동가였고 조지훈은 김성규의 장녀 김위남과 결혼하여 신혼 초 자주 이 집에 머물렀으며 그 무렵 이 마을을 배경으로 남긴 시가 별리(別離)이다.

푸른기와 이끼 낀 지붕너머로/나즉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당홍치마 자락에 말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 [생략]

▲ 한옥체험관
무섬마을 보존회
무섬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1999년 보존회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무섬마을 보존과 관계되는 일체의 행위는 무섬마을보존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했고, 전통적 유교 윤리를 해(害)하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보존회 허가 없이 무단으로 주류는 물론 식당, 매점 등 상행위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역대 보존회장은 다음과 같다. 초대 박윤우(89, 1999-2003), 2대 김민석(75, 2003-2004), 3대 박종우(74, 2004-2005). 4대 김한세(77, 2005-2009), 5대 박종우(74, 2010), 6대 김한직(75, 2011-2012), 7대 김선광(76, 2013-2014)  

▲ 내성천이 마을을 휘돌아 육지 속의 섬이 된 무섬마을
무섬마을 사람들
김한건 이장은 “무섬마을은 구한말까지 120여 가구에 주민 500명이 살았을 만큼 번성했다”며 “현재는 40가구에 60여 명이 살고 있으며, 선비체험 민박운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 박승(72)씨는 “무섬마을에는 농토가 없는게 특이하다. 그러나 실제 소유 농지는 안동 옹천, 예천 감천에 이르기까지 많은 토지를 가진 부자마을이었다”면서 “그래서 가을이면 볏섬을 실은 소와 쌀가마를 진 지게꾼들이 외나무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왔다”고 했다.

이 마을 출신들은 정년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을 원형 그대로 보전하고 선비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각별한 노력들을 펼치고 있다.

김한세(77) 전 보존회장은 “무섬사람들은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먼 유교적 삶을 살았지만 벼슬길로 나간 선조도 있었다”며 “조선 때 병조참판을 지낸 박제연과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락풍, 승문원 정자를 지낸 김휘병 선조가 대표적이다. 무섬마을 후손들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대학교수만 19명으로 선비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가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외나무다리 복원(2005)과 축제를 구상하고, 정월대보름 행사를 추진하는 등 오늘의 무섬마을이 있기까지 선구자적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김 전 보존회장은 전통마을을 만들기 위해 우리 꽃을 심고 호박넝쿨을 올리는 등 고향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가을이면 국화전시회를 열어 무한한 감탄을 주고 있다.

김선광 보존회장은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지만 주차공간이 없고, 볼거리도 부족하다”며 “산책길 조성과 전망대 설치 등 기본시설과 볼거리를 확충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 이복순(73) 할머니는 전통메주, 된장, 청국장을 만들어 어머니 손맛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무섬마을 안쪽에는 한옥체험관(관장 김준년)이 있다. 여기는 무섬마을사료전시관도 있고 80여명이 단체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섬계고택 김동근(62)씨는 “무섬이 배출한 선비 중에는 문행이 뛰어난 섬계 박제익, 만죽 박승훈, 동계 김휘택, 수촌 김승학 등은 후진 양성에 힘쓰면서 문집을 발간했다”고 했다. 

▲ 김선광 보존회장
▲ 김한건 이장

 

 

 

 

 

 

▲ 김한세 4대 보존회장
▲ 박윤우 초대 보존회장

 

 

 

 

 

 

▲ 이복순 할머니
▲ 김한직 6대 보존회장

 

 

 

 

 

 

▲ 김광호 문화관광해설사
▲ 박승 씨

 

 

 

 

 

 

▲ 김준년 한옥체험관장
▲ 김동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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