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문무덕(文武德)의 고을 호문1리 웅곡동 ‘곰실마을’ < 우리마을 탐방 < 영주 톺아보기 < 큐레이션기사 - 영주시민신문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본문영역

우리마을 탐방

우리마을탐방[44] 장수면 호문1리 곰실

문무덕(文武德)의 고을 호문1리 웅곡동 ‘곰실마을’

2015. 01. 22 by 이원식 기자

▲ 곰실마을 전경
산세가 마치 곰과 같이 생겼다고 웅곡(熊谷)
웅곡서당, 덕천정 등 선비숨결 서린 마을

장수면 호문1리(곰실) 가는 길
영주시내에서 가흥교를 건너 예천방향으로 가다가 장수면 두전교차로에서 내려 장수면 소재지 방향으로 간다. 면소재지에서 반구교를 건너 옥계천변 도로를 따라 1.2km 쯤 내려가서 호문1리 버스승강장 쪽으로 좌회전한다. 200m 쯤 가면 철도건널목이 나오고 또 200m 더 가면 곰실마을 표석이 나타난다.

마을표석에는 ‘문무덕의 고을, 호문1리 웅곡동 곰실마을’이라고 새겨져 있다. 마을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군데군데 자리 잡은 노거수와 바위들은 오랜 역사와 덕을 담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의 집들은 실개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산자락에 자리 잡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계단식 농토가 있고 산은 온통 참나무로 울창하다.

싸락눈이 살며시 내린 지난 11일 곰실마을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손관호 이장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유래와 문무덕을 담은 옛 이야기를 들었다. 손 이장은 서울 대웅회 등 출향인들과의 연락을 통해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찾는데 적극 협력했다.

마을의 유래
1625년에 이여빈이 쓴 최초의 영주지에 의하면 ‘이 지역은 영천군 서부지역 호문송리로 서면에 속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괴헌고택본 영주지에는 ‘호문송리(好文松里)는 군의 남쪽에 있다. 호문송리에 속한 마을은 웅곡(熊谷), 배탄(盃呑)과 소룡과 토계와 화기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와 같이 웅곡은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고을임을 알 수 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호문면과 두전면을 합병하여 영주군 장수면 호문리가 되었다가 1980년 영주시 승격으로 영풍군 장수면 호문리로, 1995년 영풍군, 영주시 통합으로 영주시 장수면 호문1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곰실경로당
곰실마을의 내력
곰실마을 원로들에 의하면 “약 400년 전 조선 선조 때 경주손씨(석당공파) 5세손 손시황(孫是愰, 1674-1751)이 1723년 감천대산(甘泉大山, 예천군 감천면 대맥동)에서 이 마을로 이주하여 입향조가 됐으며, 산을 살펴보니 둘레의 산세가 마치 곰 모양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곰 웅(熊)자를 써서 ‘웅곡(熊谷)’ 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 장세인(95) 원로는 “경주손씨가 입향하기 전 추계추씨[제주추씨라고 전하기도 함]와 안동권씨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그 후 경주손씨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경주손씨의 집성촌
경주손씨의 세계(世系)에 의하면 신라 진한육부촌장 중의 한분인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 선조를 시조(始祖)로, 신라 흥덕왕 때 나라의 효자 순(順)을 중조(中祖)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간의 기록을 찾을 길이 없어 고려 때 밀직공 휘 경원(密直公 諱 敬源)을 일세(一世)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조선명현(朝鮮名賢)의 한 사람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 경주양동마을)의 12세손인 손종책(孫鍾策, 1794-1869)은 곰실 출신으로 마을에서는 부령부사(富寧府使)댁으로 통한다. 1848년(조선 헌종14) 무과(武科)에 급제한 손종책은 당시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人士)였으며, 문무를 겸비한 선비로 75세까지 관직에 있었다. 손종책의 자(字)는 원방(元方), 호(號)는 예헌(藝軒)이다. 통정도총부도사, 부령부사, 홍주영장 겸 토포사를 지냈으며 가는 곳마다 선정비가 세워졌다.[이상 자료제공 손명익] 현재 곰실에는 23세손 기락(基洛) 주손(胄孫)이 석당공파(石堂公派)의 세계(世系)를 이어가고 있다.

▲ 할배성황당
할배성황당과 할매성황목
곰실마을 성황신은 부부성황신으로 할배신과 할매신 두 신을 모시는 게 특이하다. 마을 안쪽 쥐곡금 뒷산 중턱에 있는 할배성황당은 400년 수령의 소나무 숲속에 있다. 또한 할매성황목은 마을 앞 들 가운데 있다. 원래 할매성황목은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였으나 20여 년 전 고사하여 새로 심은 나무라고 한다.

▲ 할매성황목
곰실마을 성황제는 정월 초 마을회의에서 흠이 없고 복이 많은 사람으로 제관과 축관(2명)을 선출하고 도가를 정한다. 제관의 집과 도가에는 금줄을 치고 금기하여야 한다. 마을사람들은 정월 14일이 되면 붉은 진흙을 골목에 뿌리고 잡신을 물리치는 풍습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이날 밤 제관들은 부뭇골 계곡 소(沼)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자시(子時)가 되면 할배성황당에 먼저 제를 올리고 다시 할매성황목으로 가서 잔을 드리고 소지를 올린다. 마을 사람들은 할배, 할매성황신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다.

▲ 덕천정
옛 선비들이 남긴 흔적
▲덕천정(德泉亭)은 손응조(孫應祚 1819-1892)선생이 1862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선생은 무과에 급제한 후 30년이 지난 칠십 세가 넘어서야 용양위부사과(龍양衛副司果)에 임명됐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많은 후진을 양성하면서 원근의 선비들과 교류하던 곳이다.

덕천정은 웅곡마을 안쪽의 작은 개울가 옆 기암괴석을 초석으로 삼아 남서향하고 있다. 바위 위에 걸터앉은 정자인 만큼 기품이 대단해 보인다.

▲ 웅곡서당
▲웅곡서당(熊谷書堂)은 경주손씨 문중 정자로서 1872년(고종9년) 웅곡정사로 건립되었다. 2000년 기와공사 및 서까래교체, 기단보수 등 대규모 중수와 함께 당호를 웅곡서당으로 개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곰실 경로당
호문리 경로당은 2002년 12월 17일 준공됐다. 대지(190평)는 경주손씨 손기락 주손이 희사하고 5천 500만원의 예산으로 25평형 현대식 건물을 지었다. 30여명의 노인회원들은 노인회관에서 상호 돌봄 활동, 점심 함께 나누기, 여가 선용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손춘호 노인회장은 “선조들이 남겨주신 서당정신이란, 족친 간에 우애하고, 출세하여 조상의 이름을 나타내는 효”라고 하면서 “지금도 곰실 후손들은 박사, 기업인, 교수 등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서당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김우연 부녀회장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부녀회원”이라며 “출향인들이 고향에 오면 경로당을 먼저 찾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수시로 어르신들을 돌보고 음식을 대접한다”고 말했다.

곰실마을 사람들
손관호 이장은 “호문1리는 곰실 단독마을이며 36가구에 62명이 산다. 70년대까지 경주손씨가 100명 이상 살았으나 지금은 20여명 살고 있다”고 했다.

장범진(61)씨는 “우리마을은 벼농사 중심 농업이 활발하다”며 “550여마지기의 호문평야에서 70마지기(약 2만평) 이상 대농을 하는 농가도 있다”고도 했다.

손응호(75) 어르신은 웅곡서당, 덕천정, 할배할매성황당을 안내하면서 “곰실은 시황 선조께서 입향하신 후 문무를 겸비한 많은 선비들이 배출됐다”며 “그 증표가 웅곡서당과 덕천정”이라고 했다. 손 어르신은 또 “선조들의 묘소가 있는 감천대산에 가면 도장 바위가 있다. 10월 묘사 때 경주손씨들이 도장[도장모양의 돌]을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며칠 뒤 마을 사람들이 내려놓는다. 이와 같은 도장 찍는 풍습은 수백 년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금실좋은 두꺼비 부부
김영자(66)씨는 “곰실에는 등 굽은 버드나무의 전설, 복이 새나가지 않도록 꼭꼭 닫고 있다는 닫힌바위, 마을을 지켜준다는 부부두꺼비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장영도(70) 바르게살기운동 장수면위원장은 육노암의 내력을, 장익진(70)씨는 탕건바위의 형상과 내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곰실경로당에는 장남순(83), 윤홍연(81), 권옥녀(71) 할머니 등 여러 어르신들이 모여 점심도 같이 먹고 서로서로 건강도 챙겨주면서 정답게 살고 있다. 옛날 물두멍 이야기에서부터 가마타고 시집가던 일,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던 일, 초가집만 오복소복하던 마을 풍경 등을 돌아보면서 “지금은 천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 손춘호 노인회장
▲ 손관호 이장

 

 

 

 

 

 

▲ 장남순 할머니
▲ 김우연 부녀회장

 

 

 

 

 

 

▲ 손응호 선생
▲ 윤홍연 할머니

 

 

 

 

 

 

▲ 장익진 씨
▲ 장영도 바르게살기위원장

 

 

 

 

 

 

 

▲ 장범진 씨
▲ 김영자 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