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식 기자
- 승인 2015.05.23 17:28
- 호수 522
2015 영주 한국선비문화축제에서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재현한다. 영주 소남한시회(회장 황영수)는 선비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날로 쇠퇴(衰退)해가는 미풍양속과 도덕성 회복을 위해 전국 한시백일장을 개최한다.
10월 21일 오전 10시 선비촌 죽계루 앞뜰에서 열리는 한시백일장에는 지역유림은 물론, 전국 각지 동호인 300여명이 참석하여 평소 연마한 한시로 기량을 겨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한시백일장 시제는 삼판서고택 두 번째 주인인 ‘미균(米균) 황유정(黃有定)’으로 정해졌다.
한시백일장 참가자는 도포(道袍)에 유건(儒巾)을 필히 착용해야 한다. 이번 백일장의 압운(押韻)은 居, 餘, 書, 譽, ( ) 이며 결구(結句) 운자(韻字)는 당일 추첨으로 정한다.
작시(作詩) 마감은 12시 30분이며, 입상자 발표 및 시상은 당일 오후 4시경에 있을 예정이다.
시상 내역은 장원 1인 상장 및 부상 100만원, 차상 2인 상장 및 부상 각 70만원, 차하 3인 상장 및 부상 각 50만원, 참방 15인 상장 및 부상 각 20만원, 입선 30인 상장 및 부상 각 10만원이다. 수상자는 주민등록증 및 송금 계좌번호를 지참해야 한다.
기타 자세한 문의는 소남한시회 사무국장 김호철 전화 054) 632-5795, 또는 010-3532-5795로 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번 백일장을 준비를 하고 있는 황영수 회장은 “이번 백일장의 시제는 ‘추모, 미균 황유정 선생’이다. 선생의 본관은 평해이고, 호는 미균”이라면서 “미균 선생은 어려서부터 늙음에 이르기까지 논어를 애독하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여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치면서 항상 백성편에 서서 그들의 생업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았고, 백성들에게 ‘먹을 것이 하늘’이라는 말을 정책에 반영하고 실천한 목민관이었다. 미균(米균))이라는 선생의 호는 그런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또 “이번 백일장을 통해 미균 선생의 백성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그 정신을 많은 사람들이 본받아 나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균 황유정의 생애
미균(米균) 황유정(黃有定) 선생은 호가 미균(米균)이고, 본관은 평해이다. 선생의 부친인 황근(黃瑾)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 겸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을 지냈다.
선생은 1343년(충혜왕 복위 4년)에 직제학 황근과 봉화정씨 사이의 3남 1녀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문정공(文貞公) 근재(謹齋) 안축(安軸)의 따님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12세 되던 해인 1355년(공민왕4) 안동도회(安東都會)에 가서 시(詩)를 지었는데 시관이 그 시를 보고 과거에 응시하기를 권하였다.
선생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고 오직 글 읽기만을 좋아하여 잠들기 전에는 손에서 책을 놓아 본적이 없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논어(論語) 읽기를 즐겨하여 당시 세인들이 칭하기를 미균선생(米균先生)이라하였다.
이후 미균 선생은 한성판윤(漢城判尹)을 거쳐 예조전서(禮曹典書)와 공조전서(工曹典書), 형조전서(刑曹典書)를 지냈다. 그는 조선에 들어와서도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냈다. 그는 이후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친 후 낙향하여 영주 구성 아래 자택에서 소쇄헌(掃灑軒)이란 현판을 걸었는데 배위(配位)는 이곳이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다.
정부인(貞夫人)은 봉화정씨로 형부상서 정운경의 따님이다. 그의 아들은 지평(持平) 황전(黃銓)과 제주(祭酒) 황현(黃鉉), 훈도(訓導) 황연(黃연)이 있으며 현손(玄孫)에는 목사(牧使)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이 있다. 묘역은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을좌지원(乙坐之原)으로 황분토(黃墳土, 덕동)이다.
삼판서고택과 황유정
삼판서고택은 고려조에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봉화인 정운경(鄭云敬)이 관직을 버리고 내려와 청렴하게 살았던 집이다. 그의 장남은 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이다. 정운경은 이 집을 사위 황유정(黃有定)에게 물려주었는데, 황유정(黃有定)도 병을 이유로 낙향하여 말년을 이 고택에서 보냈다.
황유정은 사위 김소량(金小良)의 차남인 문절공(文節公) 담(淡)에게 이집을 물려줌으로써 형부상서 정공(刑部尙書 鄭公), 공조전서 황공(工曹典書 黃公), 이조판서 문절공(吏曹判書 文節公)등 세 분 판서가 살았다하여 세인(世人)들은 이 집을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주 소남한시회
영주 소남한시회는 지난해 전국 43곳에서 열린 한시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 20인, 차상 16인, 차하 23인, 방안 1인, 을과 1인, 병과 10인, 참방 56인, 가작 93인 등 총 220인이 입상해 받은 상금은 총 4천 987만원이나 된다. 이는 소남한시회 6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한편 2013년 선비문화축제 전국한시백일장에서 본회 김호철(52, 창진동, 현 사무국장)씨가 장원에 올랐고, 2014년에는 이창경(65, 가흥동)씨가 장원을 차지하여 영주가 선비의 고장이자 유학의 고장임을 전국에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