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고비마다 결정적 역할, 어려운 동료 가족생계 돌봐
순흥면 선산 下 아버지 어머니 묘소 아래 영원히 잠들다

고 홍사덕 성도(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홍사덕 성도(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유족과 지인들에 의해 하관되고 있다
유족과 지인들에 의해 하관되고 있다
국회부의장 남양홍공 휘 사덕 지묘
국회부의장 남양홍공 휘 사덕 지묘

홍사덕 전 국회의원이 지난 617일 별세했다.

운구행렬이 지난 20일 오전 10시경 순흥면 내죽1리 속수마을 앞에 도착했다. 속수마을은 고인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마을 앞에는 고인의 할아버지가 심은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어 마을쉼터가 됐다. 장지(葬地)는 속수마을과 순흥지(한스빌) 사이 골짝으로 500m 들어간 비봉산 북편자락 속칭 버름골이다.

영구차에서 내린 관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죽마고우들,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지인들에 의해 묘지까지 운구됐다.

장지에 마련된 빈소에는 장윤석 전 국회의원, 이한성 전 국회의원, 황기주 시노인회장, 박찬극 영주향교 전교, 최영섭 전 정책연구비서, 이규덕 시의원, 황윤점 전 시의원, 신수인 전 시의원, 고인의 초중학교 동창, 남양홍씨 종중 등 지역 지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남양홍씨 종중 홍사헌(한솥밥종친)씨는 홍의원님은 남양홍씨 참의공파하 두곡(杜谷) 할아버지의 11세손으로 우리 문중을 빛낸 큰 인물이라며 문중의 대들보를 잃어 슬픔에 잠겼다고 말했다. 발인에서 장지까지 동행한 전홍구 건국대 교수는 서울 빈소에는 박병석 국회의장, 정세균 국무총리, 김종인 미통당비대위장, 황교안 전 총리를 비롯한 정재계 많은 인사들이 빈소를 다녀가셨으며, 장욱현 영주시장을 비롯한 재경영주향우회원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고 말했다.

고인과 죽마고우인 김영갑(J기업 대표)씨는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알려지진 않았지만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홍의원이었다또 동료 정치인이나 후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가족의 생계를 보살핀 게 고인이었다고 말했다.

류동희(전 비서관)씨는 서울 빈소에서 여기 장지까지 이건희 삼성회장이 보내온 조화가 화제에 올랐다면서 이 회장과 고인(홍의원)은 서울대사대부고 동창으로 절친이었다. 오늘 장지에서의 점심도시락도 이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께서 마음을 담아 보내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과 초중동기동창인 장건진(전 교육장)씨는 홍의원은 순흥국교에 3학년까지 다니다가 영주국교로 전학했었다. 영주중을 졸업하고 서울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로 직행한 영재였다면서 가끔 고향(속수)마을에 왔을 때 마을 앞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느티나무는 우리 할아버지께서 심으셨는데 마을의 상징이 됐다고 할아버지를 엄청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친구가 보낸 추모의 글에 보면 먼 길 떠나는 친구야, 이제 모든 것 내리고 영생(永生)의 꽃가마타고 고이고이 잘 가시게나. 친구 홍사덕은 소백산 정기 받고 태어난 수재였다. 소년시절 영주의 세탁소집 아들로 초중을 고향에서, 서울 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중략- 홍사덕은 해병대 출신이다. 권좌에 있을 때도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았다. 선후배 모두에게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써가며, 고향 친구들을 즐겁게 만나 주던 홍사덕의 너그럽고 넉넉한 도량을, 이제는 대할 길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고향땅 순흥면 비봉산 자락 선산(先山)하 아버지 어머니 묘소 아래 영원히 잠들다라고 썼다.

이날 오전 11시 하관예배, 오후 2시 봉분(封墳)완성 및 상석설치 예배를 끝으로 반혼(返魂)했다. 그의 묘 앞 상석에 국회부의장 남양홍공 휘 사덕 지묘라고 새겼다.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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