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집’에 구산(龜山, 구성산)이 고향임을 밝혀
정도전 학술포럼서 출생과 학문적 연원 연구 발표

▲ 삼각산(북한산)의 모습. 정도전의 호 ‘삼봉(三峯)’은 단양의 도담삼봉이 아니라 화산(華山)으로도 불렸던 삼각산으로 그의 지인들이 불러준 것이다. 삼각산의 사진을 보면 왜 삼봉이라 칭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삼봉 정도전은 영주 구성 삼판서고택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호 삼봉(三峯)은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삼각산의 세 봉우리 아래 집을 짓고 살았던 정도전을 그의 동료들이 삼봉이라 칭한 데에서 비롯됐다”

지난 3일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찬 영주시민회관의 ‘삼봉 정도전 학술포럼’에서 정광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정도전은 영주에서 태어난 영주의 선비”라고 단언했다. 봉화정씨로 정도전의 직계 후손이기도 한 정광순 위원은 정도전의 출생에 관한 논란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도전 학술포럼은 특히 삼봉의 출생과 학문적 연원, 한국사상사에 있어 그의 위상, 정도전의 경학사상과 경세론의 상관관계 등을 심도 있게 다뤘으며, 참석자들도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등 높은 관심과 호응을 보였다.

▲ 동시대 정치사상의 세계 최고봉, 정도전
학술포럼의 주관자로 기조강연을 한 정범진 동양대 한국선비연구원장(전 성균관대 총장)은 “그동안 우리고장에 선비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없어 항상 외부에 의뢰해 실정에 맞지 않았다”며 “학술포럼을 기점으로 정도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벗겨지고 그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한 기록들이 모두 바로 잡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을 맡은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삼봉기념사업회’ 전 회장은 “정도전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 동서양을 통틀어 삼봉에 견줄 정치사상가는 어디에도 없다”며 “이제 삼봉을 영주에만 가둬두지 말고 세계적인 정치사상가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 사람의 업적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
이날 포럼의 핵심 주제인 ‘삼봉 정도전의 출생과 학문적 연원에 대한 고찰’을 발표한 정광순 국사편찬위 사료조사위원은 머리말에서 “삼봉은 4대 혁명 즉 전제(田制), 왕조(王朝), 국시(國是), 천도(遷都)를 완성한 인물”이라며 “이 모든 일들을 단 한 사람이 해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이며 세계사 속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어 “태종 이방원이 왕권 야욕으로 난(일명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제거하고도 '태조실록'에는 도리어 정도전이 왕자들을 죽이려했다는 누명을 씌워 ‘정도전의 난’으로 왜곡시켰다”며 “심지어 태종이 직접 실록의 기록을 감찰한 사실까지 익히 잘 알려졌음에도 삼봉 연구에 가장 많이 인용된 것이 또한 태조실록”이란 사실도 상기시켰다.

▲ 단양 출생은 속설일 뿐, 고향 영주 스스로 밝혀
정 위원은 특히 삼봉의 단양 출생설 등에 대해 “한 마디로 속설일 뿐 근거 없는 얘기로 거론할 가치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위해 직접 27차례나 단양을 방문해 조사했다는 그는 “도전리의 전은 밭전(田)이고 삼봉은 한양 삼각산(북한산)으로 동료인 이숭인이 처음 불러줬으며, 어머니 우씨는 ‘단양 우씨’가 아니라 영주의 옛지명 영천(榮川)을 근원으로 한 토착성씨인 ‘영천(또는 강주) 우씨’로 우연(禹淵)의 따님이였다”고 밝혔다. 영주 우씨의 시조인 ‘우부(禹傅)’는 문성공 안향 선생의 어머니 강주 우씨의 증조부가 되니 한 혈족이기도 하다.

특히 부친 정운경이 37세의 늦은 나이에 귀하게 얻은 첫 아들 이름을 ‘길에서 만난 여자(밭)에게서 자식을 얻었다’ 해서 ‘도전’이라 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며, 정도전의 동생들도 모두 ‘道’자를 써 도존(道存)과 도복(道復)으로 누가 봐도 이는 항렬이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당시 절륜한 유학자였던 삼봉의 부친 정운경이 ‘도를 밝히고 전한다’라는 뜻에서 도(道)자와 전(傳)자를 취해 ‘도전(道傳)’ 이라 작명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또한 정도전 스스로 영주가 고향임을 밝힌 사실을 ‘삼봉집’ 권2에 들어 있는 오언율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찾아냈다.

다음 시는 자신이 태어난 삼판서 고택이 있는 고향 영주 구산(구성산)에 들러 유민들을 찾아봐 주길 당부하는 시다.


경상도안렴사로 나가는 정부령 홍을 전송하다(送鄭副令洪出按慶尙)

만년을 푸르러라 저 계림이여 萬古鷄林碧
풍류를 대대로 잇는 사람이 있네 風流代有人
성초(星軺)로 백일에 하직 올리니 星軺 辭白日
옥절은 푸른 봄에 비추이누나 玉節映靑春
교분은 예부터 집안이 통하는 벗이었지만 交契通家舊
이곳에선 이별의 시름 새롭네 離愁此地新
구산(龜山)은 내 고향(桑梓) 고을이거니 龜山桑梓邑
나를 위해 유민들을 찾아봐 주게 爲我訪遺民

한편, ‘세종실록지리지’ 영천군(현 영주) 토성 조에 “민(閔)·우(禹)·예(乂)·팽(彭)·동(董)씨가 있다”고 기록돼 있고 ‘여지도서’ 영천군 토성 조에도 영주 우씨가 2대 토성의 하나라고 전하고 있다.

▲ 삼봉은 삼각산(북한산)을 지칭하는 호
정 위원은 ‘삼봉(三峯)’이란 정도전의 호를 ‘도담삼봉’에서 따왔다는 속설을 부정했다. 그 호의 연원은 정도전 본인과 지인이 남긴 시에 삼봉이 삼각산임이 뚜렷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정 위원에 따르면 정도전이 부모상을 같은 해에 당해 고향 영주에서 4년여 동안 시묘살이를 한 후 1369년 삼각산 옛집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다. 그 소식에 지인들이 찾아왔고 그중 이숭인이 처음 삼봉이라 호칭했다. 이후 수많은 동료들이 이를 따라 칭했으며 그 자신도 삼봉이 마음에 들었던지 강학을 위해 지은 작은 누옥을 ‘삼봉재(三峰齋)’로 했다고 한다.

▲ 정도전 학술포럼 기점으로 선비 체계적 연구
정광순 국사편찬위원에 이어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의 ‘한국사상사에서 정도전의 위상’이란 주제발표가 있었다. 최 교수는 서두에서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서술되기 마련으로 정도전은 ‘간신(奸臣)’이란 누명을 썼고 그가 죽음을 당한 사건은 반란으로 기록했다”며 “삼봉은 조선 도학의 선구자로 그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주리론을 그 기본으로 확립해 후일 조선 성리학의 정맥을 이루게 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론했다.

또 다른 발표자인 엄연석 한림대 교수는 ‘정도전의 경학사상 체계와 경세론의 상관성 문제’란 주제를 통해 “정도전의 경학사상과 경세론은 여러 경전의 구체적인 전거를 중심으로 매우 긴밀하게 일관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학술포럼을 주관한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정도전의 학술포럼 관련 연구성과는 올해 말 ‘한국선비연구논총’ 창간호에 게재해 학계의 공인을 받고 국내외에 널리 알릴 계획”이라며 “앞으로 한국선비연구원이 주도적으로 선비연구의 중심을 잡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