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목,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박동수 작가, 철암탄광역사촌서 제5회 개인전 ‘세월의 동행’ 지점토와 도자기 가루로 생명 순환을 그리다 태백과 영주, 산업과 교통 넘은 예술의 동맹

2025-11-24     안경애 기자

“폐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썩어가는 나무토막에서 경건한 순환의 질서를 느꼈습니다”

우리고장 영주 출신 박동수 작가가 ‘소멸’의 흔적에서 ‘생성’의 의지를 건져 올린 회화작품을 들고 관객 앞에 섰다. 제5회 박동수 개인전 ‘세월의 동행’이 지난 21일부터 30일까지 강원도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갤러리 ‘한양다방’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엔 ‘세월의 동행’과 ‘세월의 흐름’ 시리즈 25점이 걸렸다. 20호부터 50호 크기의 작품은 지점토, 도자기 가루, 아교, 안료 등 흙과 불의 재료를 활용해 제작됐다. 단단한 소재가 아닌 무너지는 재료로 ‘지속 가능한 생명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다.

# 폐목이 말하는 것, 여백이 품는 것

작품 속 폐목은 다 닳은 표면과 갈라진 틈을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는 이 소멸의 형상을 새로운 시작으로 읽는다.

“분절된 나무의 날카로운 촉수들을 따라가면, 그 끝에 도달한 느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걸 그리고 싶었습니다”

재료에 대한 고뇌도 덧붙였다. “점토만 사용하면 크랙이 생기고 떨어졌습니다. 도자기 가루를 아교에 섞자 캔버스를 감아도 갈라지지 않을 정도의 내구성이 생겼고, 안료도 흙색과 조화를 이루며 더 깊은 색감을 냈습니다”

관람객 중 한 명이 “작품의 30% 이상이 비어 보인다”고 말하자 박 작가는 “폐목을 다룬 작품은 여백이 50%에 이른다”며 “그 공간은 절제가 아니라 상상의 자리다. 단순하고 정적인 침묵 속에 무한성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윤명희 영주미협 지부장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깊이와 무게가 각별했다”고 평했고, 갤러리 즈음 송재진 관장은 “30년 전 함께 기차를 타고 공모전에 출품하던 박 작가의 예술 여정이 그 여백 속에 오롯이 담겼다”고 말했다.

# 산업의 기억, 예술로 이어지다

박 작가는 영주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하며 강원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태백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한때 광산 도시였던 그곳에서, 도시가 품었던 생채기와 사람들의 시간들을 예술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예총 태백지회장을 맡고 있으며, 태백미협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와 갤러리 모나리자, 태백문화예술회관, 하이원 리조트 등에서 개인전 8회를 열었고, 국내외 단체전 170여 회에 참여했다. 필리핀 바기오시 국제교류전, 평창비엔날레, 한국-조지아 국제미술교류전 등 해외 활동도 활발하다.

송재진 관장은 “태백은 산업의 거점, 영주는 교통의 보급 기지였다. 한 도시는 노동으로, 다른 도시는 연결로 성장했는데, 박동수 작가는 예술로 두 도시를 다시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동수라는 존재는 이제 태백과 영주를 하나의 예술권으로 묶는 연결선이다. 그가 만들어가는 그림은 도시 간 예술동맹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죽은 나무는 나무가 아닙니다. 다시 살아가려는 형상입니다. 그걸 그릴 수 있는 화가라면, 생명을 버리는 일이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