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애향인 인터뷰-[128] 동양철학에 몰입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김중구 교수의 나의 살던 고향은
“학문은 끊임없는 개척의 길”…그가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은 까닭은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무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편집자 주>
초등교사에서 정부 연구기관과 국회 보좌관 거쳐 에너지 정책 권위자로 성장
퇴직 후 한문과 고전학 몰입… 한비자·주역·맹자 등 고전 통해 행정학 재해석
동양과 서양 시문학의 공통점 발견… 번역 통해 언어와 문화의 가교 시도
“판검사보다 공학자가 필요한 시대… 고향 위한 실질적 역할이 절실”
지난해 말이었나, 올해 초였나 애향인 인터뷰를 요청했었습니다. 응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랬었나요?(함께 웃음) 그때 아마도 좀 부담스러웠었나... 제가 잘 난 것도 아니고.
애향인 인터뷰에 잘나고 못나고가 없습니다. 잘나고 못난 건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고요. 저는 성별 구분 없이 그리고 나이 구분 없이 인터뷰를 했으면 합니다만 젊은 애향인 특히 젊은 여성이 애향인 인터뷰에 손사래를 쳐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시군요.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나요?
영주 하망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하망4리.
그렇다면 영주중앙초등학교 출신이시겠군요?
당시는 영주중부국민학교였습니다. 지금의 중앙초등학교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고향에서 하셨구요?
그럼요. 영주중학교를 나오고 영주농업고등학교(교명 변경으로 지금의 영주제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농업고라면... 지금은 억대 수익의 농업인도 있고... 그런데 농사를 하지 않으셨고요?
지금이야 농업기술도 발달하고 농기계도 지원되는 시대이지만 당시엔 농사로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부모님은 소작농이셨습니다. 식구들 먹고 살기도 힘들었으니 월급받는 직장인이 훨씬 더 좋았지요. 특히 공무원과 교사직이 인기가 높았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중 졸업 후 농업 관련 공직을 비롯 공무원으로 여럿이 진출했지요.
교수로 퇴직하셨는지라 가정형편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함께 웃음)
제가 맏이인데 형제자매는 모두 7남매였거든요.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맏이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안동교대에 입학했습니다. 장래 직업으로서도 좋고 우선 학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당시엔 다들 생활이 어렵던 시절이라 대학을 갈 형편이 안 되었지요.
그렇군요. 당시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킬 경제력을 가진 집들이 별로 없었고 학비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교대 들어가는 게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이군요.
네... 교대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났습니다. 고향인 영주의 초등학교(현 영주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교사로 발령받으니 동생들 학비도 대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 미국 유학도 하셨는데 초등학교 교사로 계실 때 어떤 계기가 있었나 보군요?
안동교대 동기생으로 김광림과 친했습니다. 안동 국회의원을 한 그 김광림입니다. 그 친구는 외가가 영주입니다. 자주 만났는데 대학에 편입해서 공부한다고 하더라고요. 대구에서 직장 생활하며 야간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그래서 저도 대구로 교편 자리를 옮기고 편입 시험을 보고 영남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편입시험은 영어와 세계사 두 과목이었는데 교대 출신은 3학년 편입이 안 되고 2학년 편입만 가능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업을 바꾸셨겠습니다?
당시 70년대 중후반 경제가 발전하며 좋은 취직자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좋은 취업 기회가 있었지만,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했습니다.
좋은 직장 마다하고 대학원도 주경야독으로 하셨군요?
결혼했고 아이도 있었는지라 교편을 계속하며 대학원을 마쳤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서울로 옮겨 모 연구기관의 연구원을 하다 친구의 천거로 3급갑으로 국회의원 비서관도 했습니다. 정치의 기회가 있었고 정치의 욕망도 있었지만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동력자원부 산하 동력자원연구소로 옮겼습니다. 나중에 에너지경제연구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에너지 자원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유학 시절에도 에너지 정책 분야가 주전공이었는가요?
그럼요. 역시 공공정책학으로 에너지 분야 공부였지요. 연구원에 있을 때 연구를 잘한다고 유학을 보내주었습니다. 미국 Delaware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한국 석사를 인정하지 않아 석사부터 공부해야 했습니다. 정말 많이 공부했습니다. 공부 환경이 너무 좋았습니다. 국비 유학이었는지라 학비 부담이 없었기도 합니다. 아들과 딸도 거기서 학교 다녔고요. IMF 직전에 유학을 끝낼 수 있었지요 행운이었습니다.
경제학을 바탕으로 공공정책학으로 에너지 분야 연구를 하셨으니, 제대로 연구하신 거군요?
그렇지요. Delaware 대학 유학 시 지도 교수도 학부를 경제학으로 해서 공부하기가 좋았습니다. 신나게 공부했지요. 그러면서 6~7년이 휙 지나가더군요(함께 웃음).
유학 후 귀국해서 바로 대학 교수로 나가셨는지요?
귀국 후 에너지경제연구원으로 복귀해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세명대로 옮겼습니다. 정년이 되어 퇴직하려니 학교에서 5년만 더 해달라 해서 70세에 퇴직했습니다.
요즘 직접 지은 한시를 게재하시던데 한문 공부는 언제하셨나요?
세명대 퇴직 후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였습니다. 그때까지 서양 학문 중심으로 공부했던지라 한문으로 된 글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사서삼경부터 공부를 시작했지요. 조선왕조실록, 맹자, 순자, 주자, 주역, 자치통감 등 여러 책을 읽으면서 공부했습니다.
행정학과 교수였는지라 옛 동양학 서적과 현대의 정치행정과 연결되는 점도 많이 알 수 있었고요. 한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영시와 한시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바로 운률이었어요. 요즘 계속 영시와 한시를 짓고 있습니다. 한시는 2017년부터 시작했으니 10년 가까이 되는군요. 영시는 2년 정도 되었고요.
한시만 공부하신 게 아니었네요. 현대 학문과 옛 학문이 연결되는 맥락과 영시와 한시의 운률을 기준으로 같이 보시니 전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시는 건데요?
그런가요? 출판은 안 했지만, ‘한비자’를 한글로 완역하며 현대의 정치행정문화를 어떻게 연결할까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한국행정학회에서 관련 논문을 발표도 했습니다. 영시와 한시도 운율을 기준으로 쓴 게 많긴 한데 미출판 상태입니다.
고향 영주는 지방 소멸 논란을 피하기 힘듭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요?
아무래도 경제 분야에 역량이 있는 분들이 방책을 만들고 현실화하는 게 좋지요. 예전에 영주 출신의 역량 있는 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안타깝게도 고향을 위한 역량 발휘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제 친구 김광림처럼 안동을 위해 큰일을 한 사람도 있는데...
귀향을 생각하진 않으시는지요?
저는 지금도 귀향을 생각한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아내 설득이 쉽지 않고...
아하... 부인과의 로맨스 스토리를 소개하시지요(함께 웃음)
저희는 부부교사 출신입니다. 아내와는 영주국민학교에서 만났지요. 제가 대구에서 교편을 잡으며 같이 대구에서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낮에는 초등교사 밤에는 대학생 생활을 할 때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엔 힘이 많이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크는 어린 학생들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고향도 공부 여건이 옛날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젊은이들은 판검사나 의사와 같은 분야 보다 공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면 그들이 활동하는 시대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김중구 교수 프로필>
영주중앙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제일고등학교
안동교대 졸업, 영남대 경제학 학사, 석사
미국 The University of Delaware 석사, 박사(공공정책학-에너지·환경정책)
- (역임)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비서관(3급 갑)
동력자원연구소(연구원, 선임연구원, 실장)
국무총리실/에너지경제연구원(연구위원)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전문위원)
세명대학교 교수
The University of Delaware 대학원 겸임교수(Adjunct Faculty)
한국정책개발연구원 원장
21세기정책연구회 회장
미국 FREE재단 A Member of Specialists (2012년~현재)
여러 학회 활동
- (봉사) 김중구박사 장학금 건립(2009년 영주제일고등학교)
- (저서) Policy Evaluation 등 국문 및 영문 저서 여러 권
‘향후 4반세기 세계 에너지 소비의 모습’ 외 국문 및 영문 논문 다수
중국 고전 학습 및 논문 발표 다수
- (수상) 교육부장관 표창/ 우수연구원상 수상(동력자원연구소)/ 베스트 티쳐상 수상(세명대),
교원업적평가 우수교원(세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