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91] 휴일의 평화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휴일의 평화
- 심보선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전에는 평화로웠습니다
조카들은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늙으셨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후 또한 평화롭습니다
둘째 조카가 큰 아빠는 언제 결혼할 거야
묻는 걸 보니 이제 이혼을 아나봅니다
첫째 조카가 아버지 영정 앞에
말없이 서 있는 걸 보니 이제 죽음을 아나봅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허공이라면 뛰어내리고 싶고
구름이라면 뛰어오르고 싶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일상이 주는 평화라는 특허
뭔가 이벤트가 없으면 심심하기만 했던, 특별한 순간들이 쉴 새 없이 이어져야 사는 것 같고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 확 끄는 일들을 좇아 가속페달만 밟던 시간이 어느새 아련해져 버린 걸 보면 행복의 기준도, 성장의 결도 차츰 변해가는 걸까요.
이 시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화자인 큰 아빠를 비롯해 어머니 여동생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 동생 집에 모였습니다. 조카들은 TV를 보다가 화자에게 말을 걸거나 할아버지 영정 앞에 서 있기도 합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고,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십니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늙”는 동안 화자는 더없는 평화를 얻습니다. 이혼을 경험했고 아버지를 보낸(화자에게도 컴컴했던 시간이 남들만큼은 있었겠지요.) 뒤, 이제는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화자의 저녁은 또 다른 색깔로 평온합니다.
특별한 일 하나 일어나지 않았지만,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행복이고 참 평화인 것을 느낍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인데도요. 이처럼 평범한 일상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니, 날마다 평화로운 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