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연구원, 2025 정도전 선생 유적탐방 ‘제1길 영주’
영호루서 정도전의 시 ‘제 영호루’·‘안동향교’·‘피구(避寇)’ 낭송 송곡산 모현사서 고유례 봉행 및 정운경 묘소·시조공제단 참배 삼판서고택서 정도전의 시 ‘구산은 내고향’, ‘한그루 배꽃’ 낭송
사단법인 삼봉연구원(원장 김장환)의 「2025 삼봉 정도전선생 유적탐방」 「제1길 영주」 행사가 지난 15일 영주시민 4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
탐방단은 오전 8시 영주시민회관 앞을 출발 안동 영호루로 향했다. 차 중에서 장기진 사무국장 사회로 상견례, 일정 안내, 정태주 부원장 인사, 박창규 학술이사 유적지 해설 등을 진행했다.
정 부원장은 “오늘 제1길 영주길 탐방은 영호루시판, 모현사 고유, 염의공묘소 참배, 판윤공유허비, 삼판서고택, 봉서루탐방 순으로 답사한다”며 “모두 삼봉 선생의 시가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영호루 시판 해설
오전 9시경 안동시 정하동 소재 영호루에 도착했다. 모두 루에 올라 정도전 시판 앞에 섰다. 강구율(삼봉연구원 이사) 교수는 “‘題映湖樓(영호루에 쓰다)’ 시는 경신년(1380) 나주 유배에서 풀려 영주 본가에 머물 때 영주-제천을 왕래하면서 지은 시”라며 해설하고 창했다.
“飛龍在天/弄明珠(비룡재천/농명주) ‘임금의 힘찬 필체’ 하늘에서 나는 용이 밝은 구슬 희롱하다가, 遙落/永嘉湖上樓(요락/영가호상루) ‘영호루 편액’ 멀리 안동의 호수 위에 떨어뜨렸네. ~이하 생략~이어 최옥녀(영주2동) 회원이 정도전의 시 「安東鄕校閱金堂後詩卷書其末(안동향교에서 김당후의 시권을 열람하고 그 끝에 쓰다(1379년, 39세)」를 낭송하고, 이점호(영주2동) 회원이 정도전의 시 「避寇(피구), 도적을 피하다(1380년, 38세)」를 낭송했다.
모현사 고유례 봉행
탐방단은 안동에서 영주로 이동하여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소재 정도전 선생 시묘지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시조공 제단, 선생의 아버지(정운경) 묘소, 모현사(慕賢祠), 문천서당이 있다.
모현사 고유례 헌·집사에는 분향관 이희석(휴천2동) 회원, 집례 정인순, 알자 박찬조, 봉향 정호영, 봉로 정인걸 회원이 천망됐다. 고유례는 집례의 창홀에 따라 참제자 취위-분향관 관수세수-신위전-삼상향-(고유:탐방단 40명 참배를 고함)-인강복위-재배-예필 순으로 봉행됐다.
이어 정운경 선생 묘소 참배, 길재남 회원이 정도전의 시 「村居卽事(촌거즉사·1366년·24세·시묘살이 때 지은 시)」 낭송, 시조공제단과 문천서당 둘러보면서 추모의 예를 다했다.
정인순 총무이사는 “모현사는 정운경(정도전의 아버지)을 주향으로 정도전(문헌공), 정도복(정도전의 동생), 정진(정도전의 아들), 정문형(정도전의 증손)을 배향한 사당”이라고 설명했다.
삼판서고택은 삼봉의 본가
시묘지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이산면 한성로 소재 판윤공유허비 해설, 동구대와 서구대, 구산아래 정도전 생가터를 둘러본 후 삼판서고택으로 이동했다. 삼판서고택 대청에는 정도전의 시 「山居春日卽事(산거춘일즉사)」 시판이 걸려 있다.
김금순 해설사는 “현재 이름은 삼판서고택이지만 삼봉선생께서 ‘산거춘일즉사’ 시를 지을 당시는 선생의 본가였다”며 “임신년(1392) 봄, 공이 양이(量移)되어 나주에서 영주 본가로 돌아왔을 때 지은 시”라고 해설한 후 “~한 그루 배꽃은 눈부시게 밝고...~”를 낭송했다.
이어 이병장(휴천3동) 회원이 정도전의 시 ‘구산(龜山)은 내고향’ 시를 낭송했다. 박창규 학술이사는 “이 시는 1385년 삼봉선생이 개경에 서 벼슬살이 할 때 정부령 정홍이 경상도안렴사로 떠난다고 하자 그를 전송하면서 ‘나를 위해 고향의 유민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며 노자 대신 지어준 시”라고 설명했다.
하륜과 작별한 남정(봉서루)
봉서루는 옛 순흥의 남정(南亭)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였다고 한다. 탐방단이 봉서루에 도착할 무렵은 해가 서산으로 향할 때다. 정도전은 지영주사(영주군수)로 있던 하륜(당시 33세)이 전교령 성균관대사성으로 승진하여 떠나자 아쉬움을 담은 시 2수를 지어주며 송별했다.
이날 정호영(상줄동) 회원이 「順興南亭(鳳書樓)送河大司成 崙 還京(순흥의 남정에서 서울로 가는 하 대사성 윤을 보내다. 1378년 38세)」를 낭송하고, 박명철(휴천2동) 회원이 「順興南亭別河大司成還京 순흥 남정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하 대사성을 송별하다」를 낭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