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통합 논의, 아직은 이르다”… 영주·봉화 주민이 말하는 진짜 걱정과 바람

영주-봉화, 하나의 미래를 꿈꾸다 - 지방소멸 위기 속 행정통합 해법을 찾아서

2025-11-14     영주시민신문

영주와 봉화는 더 이상 따로 설 수 없는 공동운명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청년 유출은 두 지역 모두를 흔드는 현실이 됐다. 생활은 이미 하나지만 행정은 둘로 나뉘어 중복과 비효율을 낳고 있다. 본지는 7부작 기획보도를 통해 ▲국내외 통합사례 ▲주민 목소리 ▲정체성 과제 ▲정책적 제언을 종합해 영주·봉화 통합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싣는 순서>

[1] 영주와 봉화, 생활은 하나인데 왜 행정은 둘인가

[2] 마창진 통합 15년, 남긴 성과와 남은 과제

[3] 핀란드의 선택, 주민이 만든 통합 도시

[4] 덴마크, 국가가 만든 지방행정의 미래

[5] 주민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우려하는가

[6] 정체성을 지키는 통합, 가능할까

[7] 영주·봉화 통합, 실행을 위한 제언

영주시-봉화군 행정경계(삽재)

“인구 줄고 예산 줄면 누가 책임지나” — 현실을 체감하는 주민들의 우려

생활은 이미 하나지만 행정은 둘, 엇갈린 시선 속의 공존

 

“봉화 이름 지워질까 두렵다” — 정체성과 균형발전에 대한 불안

통합보다 먼저 필요한 것, 주민이 참여하는 조건과 신뢰의 합의

“통합해도 인구가 줄어드는 건 못 막아요. 현재 봉화군 2만 8천명, 영주시 9만 7천명으로 당장 통합하면 12만 명을 넘어서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구 10만 명 유지도 힘들 겁니다”

봉화에서 태어나 봉화에서 자라고, 지금까지 한평생을 봉화에서 살아왔다는 한 주민(60대 중반)은 ‘영주·봉화 행정통합’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렇게 잘라 말했다.

“지금 영주시 예산이 1조가 넘고, 봉화가 7천억이라 합치면 1조7천억이 될 것처럼 말하잖아요. 그게 그대로 보장됩니까? 통합되면 공무원 줄고, 교육청·경찰서·소방서도 통합되면서 인력 줄어들고, 새마을회·바르게살기 같은 단체도 통합되면 활동이 축소될 수밖에 없어요. 그게 결국 지역경제 죽이는 일입니다”

그는 특히 봉화와 영주가 이미 촘촘히 얽혀 있는 ‘생활경제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봉화 군청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는 영주에 집이 있는 사람이 많아요. 이들이 봉화에서 벌어서 영주에서 쓰는 돈이 40~50%는 넘을 겁니다. 통합이 되면 이 소비 패턴이 더 줄어들지, 늘어나진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영주경제에도 좋을 게 없어요”

말끝에서 그는 한숨을 섞어 이렇게 덧붙였다.

“인구가 더 크게 줄어 정말 위기 상황이 되면 그때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덜컥 통합하는 것보다 현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살길을 찾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찬성·반대’ 중 한쪽 입장을 밝히는 선언이라기보다, 지금 이 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질문을 그대로 드러낸 고백에 가깝다.

▲ “생활은 이미 하나인데… 통합하면 더 나아질까”

봉화에서 영주까지는 차로 20여 분. 학생들은 영주로 학원을 다니고, 주민들은 병원·장보기·문화생활을 위해 자연스럽게 영주로 향한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갈 때도 영주역과 영주터미널이 출발점이다.

봉화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50대 남성은 “실제 생활은 이미 영주·봉화가 한몸”이라고 했다.

“저도 영주에서 출퇴근합니다. 평일에는 점심만 봉화에서 먹고, 장보기·저녁·문화생활은 거의 다 영주에서 합니다. 주말에 봉화 읍내에 나가보면 사람이 정말 없어요. 밥 한 끼 먹으려고 해도 서너 군데 돌아다녀야 겨우 문 연 식당 하나 찾을 정도죠”

대도시로 이동할 때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이나 부산 갈 일이 있으면 다 영주에서 차를 타요. 저녁에 영주로 돌아오면, 대부분 봉화까지 올라가서 밥 먹는 게 아니라 영주에서 밥 먹고 집에 갑니다. 그만큼 영주 의존도가 높아요”

그는 그러면서도 “그래도 지금은 통합을 서둘러 논의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미 생활은 묶여 있는데, 행정까지 성급하게 합치면 시·군 예산도 줄고 소비력도 줄어들까 걱정입니다. 인구가 크게 줄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모를까, 지금은 충분히 논의하고 대비책을 먼저 만들 때지, 속도 낼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주민들은 이처럼 생활권의 일체감과 행정통합의 필요성 사이에서, 기대와 우려라는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다.

▲ “통합하면 봉화가 지워질까 두렵다”… 정체성과 균형발전에 대한 본능적 불안

봉화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주라는 이름 아래 봉화가 묻히는 것”이다. 봉화는 오랫동안 산림·생태·힐링의 도시로 자기 색깔을 키워왔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춘양목 생태관광지, 분천산타마을 봉화은어·송이축제는 이 지역을 전국에 알린 상징들이다. 그래서 행정통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민들 입에서는 이런 말이 먼저 나온다.

“행정 효율 좋다는 말은 이해하지만, 결국 ‘영주 중심’으로 다 빨려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겁니다. 통합이라기보다 흡수처럼 느껴져요”

봉화 읍내 상인들도 같은 걱정을 토로한다.

“지금도 이미 주말에는 읍내에 사람이 없어요. 통합되면 공무원 줄고, 기관 줄고, 사람이 더 빠져나갈 거예요. 그러면 백두대간수목원이나 각종 축제, 농특산물 브랜드를 버텨낼 힘이 더 약해질 겁니다”

행정구역 통합은 단순히 지도에서 선 하나를 지우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 이름과 자존심을 건 문제이기도 하다. 봉화 쪽의 불안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 “꼭 한 시청 아래 들어가야만 협력인가”… 도시 연합·광역협력이라는 다른 길

전문가들은 “행정통합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영국 런던광역청(GLA)은 한때 광역자치를 폐지했다가 주민투표를 통해 부활했다. 지금은 교통·도시계획·소방 등 큰 틀의 기능은 광역에서 조정하고, 기초자치단체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맡는 구조다.

일본 ‘남신슈 광역연합’도 여러 지자체가 합쳐 하나의 도시가 된 것은 아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그대로 유지하되, 복지·의료·교통 등 일부 기능을 광역 단위로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영주·봉화에도 이런 모델을 참고할 여지는 충분하다. 꼭 ‘하나의 시청’ 아래 들어가야만 협력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행정통합에 앞서 광역 교통망 공동 구축, 의료·복지 인프라 공동 이용, 관광·산림 정책 공동 추진 등 연합형 광역협력을 먼저 시도해보고, 그 성과와 한계를 점검한 뒤에 통합 여부를 천천히 논의하는 단계적 접근도 가능하다.

최근 영주시와 봉화군이 2027년 제65회 경북도민체육대회 공동개최를 위한 유치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공동유치 활동에 들어간 것 또한 연합형 광역 협력의 좋은 사례다.

▲ 지금은 ‘찬반’보다 “어떤 조건에서 할 것인가”를 말할 때

현재 영주·봉화에서 “통합하자!”는 목소리가 거세게 올라오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그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는 분위기가 더 짙다. 그러나 인구감소와 고령화, 재정악화와 청년 유출이라는 현실 앞에서 “지금의 구조로 버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 더 중요한 것은, 통합의 찬반을 서둘러 가르는 일이 아니라 어떤 조건과 원칙, 어떤 절차 아래에서만 통합 논의가 가능할지를 먼저 정리하는 일이다.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최소한의 전제는 대략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정체성과 이름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합의다. 봉화라는 이름과 상징, 축제, 브랜드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구체적인 문서로 남아야 한다는 요구다.

둘째, 기관·예산 배분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다. 통합 이후 봉화권에 제2청사나 핵심 공공기관, 필수 인프라를 배치하는 내용을 법과 조례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주민투표와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다. 통합 여부는 지방의회 합의만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주민투표와 숙의 과정을 통해 주민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핀란드와 덴마크의 사례처럼, “행정은 효율을 얻었지만 주민은 냉소만 남았다”는 결과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 영주시민신문이 던지는 질문… “이 지역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영주와 봉화의 통합은 지금 당장 결론을 내야 하는 현안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입을 다물고 외면해도 되는 의제도 아니다.

지방소멸이 현실이 된 시대, 행정통합은 언젠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둘러 통합을 추진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그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이번 기획 ⑤편은 통합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위해 쓰인 기사가 아니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무조건 합쳐야 한다”는 단순 논리도, “봉화 이름 사라지니 절대 안 된다”는 감정적 거부도 넘어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주민주권’이라는 지방자치의 원칙 위에서 영주·봉화의 미래를 다시 묻기 위한 시도다.

행정지도 위의 선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그려야 할 것은 사람들의 ‘마음지도’인지도 모른다. 영주와 봉화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출발점은 이 질문이어야 한다.

“이 지역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통합이든, 도시연합이든, 지방소멸을 넘어설 우리만의 길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서현제 발행인/ 오공환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