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90] 노을 벼랑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2025-11-14 영주시민신문
노을 벼랑
- 최양숙
숨차서 쉬는 사이 가을볕 훅, 지나간다
미열의 바람 불고 산빛이 떨어진다
언덕에 머물던 하늘
일몰을 물고 있다
하루가 저물어 가는 이유를 해석하다
문득, 너무 깊게 들이지 말자했던
벼랑을 다시 읽는다
찬바람이 도착한다
내 안에 금이 간 돌 아직 굴러다니고
기척 없는 그곳엔 아무도 닿지 못한다
모든 걸 되돌리기엔
저녁이 빨리 왔다
- 순응의 계절
잡아 둘 수 없는 시간을 눈에 담아 추억을 적시는 동안, 시간을 못 이긴 “가을볕 훅, 지나”갑니다. “숨차서 쉬는 사이” “일몰을” 문 “찬바람이 도착”합니다. 단풍도 가을도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때쯤 빨리 온 저녁을 수용합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는데 나조차 가득 채우지 못하여 자꾸만 바스라 집니다. 어느새 멀리 와 버린 계절에 서서 탈진하기보다 하루를 태운 노을을 믿으며, 가슴 철썩이는 “벼랑을 다시 읽”습니다. 꽤 길 것만 같았던 삶의 여정도 조목조목 시린 발목을 견딜 때가 되었으니까요.
노을은 꿈의 시작일까요? 끝일까요? 벼랑은 또 꿈의 정점일까요? 바닥일까요? 노을과 벼랑이 합쳐질 때 노을에 닿든 벼랑에 서든 다 끝난 것처럼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닦달하지 않고 몰아붙이지만 않는다면, 이 탈주는 아직 끝난 게 아닐 텐데요. 그렇게 안간힘으로 버티던 조바심을 내려놓고, 충만할 시간을 되살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