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봉의 교양어 사전[186] 뉴트로(New-tro)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
‘뉴트로’라는 말이 우리 대중문화의 한 경향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 뉴(new)라는 말은 새롭다는 뜻이고 레트로(retro)는 ‘뒤로, 다시’라는 말이니 이 두 개의 모순되는 말의 조합이 ‘옛것을 새롭게’라는 의미의 합성어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뉴트로’라는 말을 이 지면으로 끄집어낸 것은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한 젊은이가 한 질문 때문이다.
“선생님, 옛날에 버스 안내양이라는 게 정말 있었어요?” 버스 안내양은 일제 강점기 처음으로 경성 시내에 버스가 등장하던 때 생겨나 벌써 40여 년 전에 사라져버린 직업이라서 그 젊은이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는데 “<백번의 추억>이라는 드라마에 나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60년대의 산업화가 시작되던 시절, ‘무작정 상경(上京)’이라는 말은 아주 흔히 쓰이던 상투어였다. 농촌 처녀들이 초라한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올랐던 것이다. 그중에는 단순히 농촌 생활이 고단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쪼들리는 살림에 먹을 입도 덜고 줄줄이 딸린 동생들의 학비도 대야겠다는 가엾게도 일찍 철이 든 처녀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무작정’이라는 말은 무모함의 다른 이름이었고 희망이라는 것은 짙은 안갯속에서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 주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말이 좋아 가정부지 고단한 ‘식모살이’로 이 집 저 집을 떠돌아야 했고 공단에 들어가 미싱 바늘에 손을 찔려가며 여공(女工)으로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내야 했다. 우리의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이름도 없이 무거운 짐을 버텨내야 했던 그들을 우리는 ‘식순이’, ‘공순이’라는 무례한 이름으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들 중 그래도 조금 나은 일자리가 버스차장, 즉 안내양이었다.
이미 종영한 그 드라마 <백번의 추억> 몇 편을 찾아보았다. 처음부터 내 오해가 드러났다. ‘백 번’, 즉 백 차례의 추억이 아니라 ‘백번(百番)’ 버스의 추억이었다. 지하철도 없던 시절, 통근길이나 통학길의 시내버스는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었다.
사람들을 버스 안으로 욱여넣을 대로 욱여넣어 차장은 버스 입구의 손잡이에 위태롭게 매달려 차체를 두드리며 “오라이!”라고 외치면 버스가 출발하는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보면 촌스럽다고 하겠지만 푸른 유니폼에 빨간 베레모를 쓴 그 처녀들의 모습에 가슴 설렌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드라마 후반부에서 두 여주인공이 미인대회에 참가한다는 설정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그 시대의 ‘미스코리아’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는 데서 뉴트로의 소임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사라졌지만, 미스코리아 대회가 있는 날이면 시내에 사람들의 종적이 끊어지고 너도나도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중계방송에 나오는 수영복을 입은 미인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성(女性性)의 상품화’라는 오명을 쓰고 텔레비전에 중계가 금지된 것이 불과 이십 년 전쯤의 일이다.
‘추억’이라는 감성적 언어를 사회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밀어 올리며 레트로 열풍을 불러온 드라마가 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였다. 그 시작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한 여학생과 그녀를 둘러싼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2012년에 방영된 <응답하라 1997>이었다. 이듬해 ‘응답하라’는 신촌의 하숙집으로 그 무대가 바뀐다. 새내기 여대생이 하숙집 딸로 등장하고 지방에서 유학온 촌놈들이 그녀의 주위에 포진한다.
감칠맛 나는 사투리들이 난무하며 <응답하라 1994>는 이른바 ‘촌놈들의 전성시대’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그 뒤를 이은 <응답하라 1988>은 쌍문동이라는 변두리 동네에서 가난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가족들과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에게 88올림픽의 기억을 소환해주었다.
가수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는 우리 대중가요의 서정성의 지평을 넓힌 이들이다. 박은옥의 노래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에 이런 탄식이 있다. ‘그래, 우리가 추억이라 말하는 그 날들은 갔네’ 그렇다. 추억의 날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시간 속으로 떠났다. 그러나 시간의 비밀은 이것이다. 우리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과 꽃과 노래와 사랑의 맹세와 탄식의 저녁들을 우리가 기억한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경험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