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의 정도전 이야기 [188] 삼봉집 속으로 고전 여행(36)
경렴정명후설(景濂亭銘後說)
겸부(謙夫) 탁광무(卓光茂, 1330∼1410) 선생이 광주 별장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못 가운데 흙을 쌓아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정자를 짓고는 날마다 오르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익재(益齋) 이문충(이제현) 공이 그 정자를 경렴(景濂)이라고 이름하였다. 북송 때 학자 염계(濂溪) 주돈이(周敦)가 연꽃을 사랑했던 뜻을 취하여 그를 높이 우러르고 사모하고자 한 것이다.
무릇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 반드시 그 물건에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은 깊이 감동하여 아주 도타와 지기 때문이다.
일찍이 “옛사람은 화초에 대해 각자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하고 생각하였다. 굴원의 난초와 도연명의 국화와 주돈이의 연꽃이 그것이다. 각각 마음에 둔 것을 사물에 붙였으니 그 뜻이 은미하다. 그런데 난초에는 향기로운 덕이 있고 국화에는 은일의 고상함이 있으므로, 두 사람의 뜻을 알 수가 있다. 주돈이는 “연은 꽃중의 군자이다”하였고, 또 “연꽃을 나처럼 사랑한 사람이 누구인가?”하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함께하는 것이 성현의 마음씀씀이이다. 그런데 주돈이는 당시 사람들 가운데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탄식하여 미래의 무궁한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기를 기다렸다. 진실로 연꽃의 군자됨을 알면 주돈이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물로 인하여 성현이 무엇을 실제로 즐겼는지 아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송나라 황정견은 “주돈이의 흉중은 맑은 바람과 갠 달처럼 상쾌하고 맑다”하였다. 정이는 “주돈이를 본 뒤로는 공자와 안연이 즐겁게 여기던 곳과 즐거워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후 바람을 노래하고 달을 읊으며 돌아오면서 공자가 ‘나는 증점을 허여한다‘고 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주돈이를 높이 받들어 사모하는 데에는 방법이 있다. 곧 주돈이의 상쾌하고 맑은 기상에 증점을 허여한 뜻이 들어 있음을 터득한 뒤에야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충공의 명(銘) 가운데 “발 걷고 꿇어앉으니 풍월이 가없네(鉤簾危坐 風月無邊)”라고 한 구절은 옛 사람의 공안(公案, 화두)을 끊어 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정자에 한 번 올라가 탁광무 선생과 뜻을 같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설] 정도전은 황정견이 주돈이의 상쾌하고 맑은 흉중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했던 고사를 인용하고, 주돈이가 정이로 하여금 매번 공자와 안연의 즐거움을 찾도록 한 사실, 정이가 음풍영월(吟風詠月) 자체에 증점을 허여한 공자의 뜻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한 사실을 말하였다.
선승들은 공안을 붙들고 정진해 끝내 견성자각(見性自覺)하고자 한다. 정도전은 유학자도 이제현의 명을 화두로 삼아 정진한다면 참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여겼다.
1376년(우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