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영주人터뷰 [85] 자랑스런 시민상 첫 수상자 이대성·황영숙 부부

“박스 줍는 재미가 기부하는 재미입니다”

2025-09-12     이영선 기자
'자랑스러운 시민상' 수상_(가운데)유정근 영주시장 권한대행(2025.09.03)
우영선 영주시새마을회장이 수상패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2025.09.08)
지난 8일 '2025년 새마을의식 함양교육' 행사에서 ‘59회 청룡봉사상’ 인(仁)상 축하를 받다

고난을 희망으로 바꾼 영주인, 이씨 부부의 기적 같은 삶

365시장 골목에서 피어난 기부의 철학…“할 일 했을 뿐”

“박스 줍는 재미가 곧 기부하는 재미입니다”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말이다. 영주 365시장에서 구르마(수레)를 끌며 하루 종일 폐지를 줍는 이대성(73)씨와 아내 황영숙(60)씨는 수년째 자신들이 모은 돈을 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힘겨운 삶을 살아왔지만, 남을 돕는 일에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폐지줍는 부부’, ‘날개 없는 천사’ 등의 별칭이 붙은 지 오래다.

이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릉에서 이주해온 뒤 정착하면서, 무려 65년간을 현 영주 365시장 인근에서 살아왔다. 그 긴 세월 동안 시장의 변화를 눈으로 지켜본 그는 “골목 하나하나에 추억이 있고, 변화 과정을 다 안다”고 말했다. 현재 영주1동 새마을지도자로 15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자랑스러운 영주 시민으로 꾸준히 장학금 기탁과 함께 지역을 위해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 장사로 억척스럽게 살아낸 세월

젊은 시절 이씨와 그의 아내는 고사리를 삶아 팔고, 배추·감자·고구마 같은 농산물을 시장에서 장사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야채 장사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힘겹게 모은 돈으로 집 두 채와 논·밭 3천500평을 마련했지만, 1980년대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서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순식간에 거지가 됐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빚에 시달렸지만, 지난해 마침내 모든 채무를 청산했다. 오랜 고생 끝에 “이제는 남을 도와야겠다”는 다짐은 더욱 굳건해졌다.

이씨 부부에게 기부의 시작은 아들을 통한 ‘은혜의 기억’이었다. 학원조차 보내지 못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 아들이 지역 내 장학재단인 항소(恒素)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그때 받은 도움은 부부의 삶을 바꿔놓았다. “우리 아들이 지원을 받았는데, 우리도 다른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 후 이들 부부는 박스를 주워 얻은 돈으로 조금씩 기부를 시작했다. 365시장, 골목시장, 중앙시장, 문화의 거리 등을 돌며 모은 폐지로 학교에도, 안동교도소에도 기부했다.

또한 추워지는 날씨가 되면 김장 김치를 장만해 영주1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후원하기도 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년에도 했고, 올해도 100박스 이상 할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는 부부는 기부를 ‘습관’처럼 이어가고 있다. 소액이지만 장학금으로 이어진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매번 선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황영숙 새마을지도자
이대성 새마을지도자

# 박스 줍는 하루, 기부하는 일상

박스를 줍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한다. 요즘은 한 달 평균 22일을 꼬박 나간다. 예전만큼은 작업을 못하지만 구르마 한가득 박스를 실으면 265kg, 많게는 300kg까지 채운 적도 있다. 오르막길에서는 아내가 뒤에서 밀고, 남편이 앞에서 끈다. “모르는 사람이 함께 끌어줄 때도 있다”며 부부는 고마움을 전했다.

박스 값은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변한다. 13년 전에는 1kg당 20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원이다. 많을 때는 80원, 심지어 120원까지 올랐던 적도 있었다. 이런 변동 속에서도 1년에 최대 1천800만 원씩을 모았던 시절이 있다. 3년 전에는 월세 보증금을 마련했고, 2년치 월세도 냈다. 연탄집에서 도시가스 집으로 옮기기까지 수년이 걸렸지만 남는 금액은 기부로 사용한다. “기적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라며 그는 웃었다.

지난해 이씨는 영주시인재육성장학회에 장학금 450만 원을 기부했다. 올해도 이미 300만 원을 기탁했다. 2018년부터 폐지 수거로 얻은 수익은 꾸준히 기탁해 지금까지 총 1천8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개인 기탁금으로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지난 15년간 악착같이 모아 여기저기 기부한 돈을 모두 합하면 5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두 부부의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생계급여로만 해결하고 있다. “국가에서 쌀도 지급해 주고, 120만 원으로 2식구 살기 충분하다”며 그 외 모든 수입은 지역사회에 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기부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는 이들 부부는 “올해 안에 또 100만 원을 낼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 3일에는 영주시가 올해 처음 제정한 ‘자랑스러운 시민상’을, 7월에는 경찰청과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59회 청룡봉사상’ 인(仁)상을 받았지만, 그는 “내 할 일 내가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축하를 받아서 미안하고, 큰일도 아닌데 나서는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여러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특히 특별한 날을 맞아 양복 한 벌 없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준 교회와 아내를 위해 화장과 머리 손질해준 동네 미용실, 공병을 갖다주면 소금과 간장으로 바꿔준 슈퍼 주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훈훈한 마음이 시장 안에서도 넘쳐 나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지만, 우리는 계속해야 합니다. 수상보다는 기부가 더 큰 보람이죠. 기부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이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인재육성장학금 전달(2025.07.25)

#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행복

부부에게는 1남 1녀가 있다. 아들은 서울로 떠나간 지 20년이 됐지만 명절이면 여전히 부모를 찾는다. 조만간 5년 만에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그들은 장성한 두 자녀 모두 부모의 어려운 삶을 지켜보며 자랐지만, 부모의 기부 철학을 존경하며 응원해 주고 있다.

“우리 둘 다 장애인인데 나중에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된다”면서도, “지금은 이렇게 서로 힘을 보태며 사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씨의 삶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세 번 넘기고 살아가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8년 전에는 뇌경색으로 영안실에 들어갈 뻔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할 뻔했지만, 팔꿈치에만 상처가 남았다. 병원에서는 “이런 사람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그는 이를 두고 “하느님과 예수님의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125세까지 살 것 같다”는 얘기에 껄껄 웃으며 답하는 그는, 고난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을 보였다.

앞으로 이씨 부부는 올해 2천만 원을 모아 기부하고, 2년 안에 총 3천만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간에 힘이 빠질 수도 있지만, 아내가 늘 옆에서 ‘무슨 힘이 빠질라꼬’라며 격려해 준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 부부는 38년 전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만났다. 부창부수다.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그 뜻을 존중하고 있다.

그의 삶은 단순히 박스를 줍는 노동이 아니다. 이는 한 사람의 삶을 넘어, 지역사회에 따뜻한 희망을 불어넣는 행위다. “집 두 채와 논밭을 잃었던 삶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돈은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마지막까지 겸손과 감사로 메시지를 남겼다.

“내 할 일 내가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기부하는 재미로 살아가겠습니다”

겸손한 태도로 대화를 마친 이씨 부부의 얼굴에는 감사와 행복이 가득했다. 그의 삶은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낸 한 인간의 이야기이자, 영주 지역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귀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