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칼럼] 음식물 쓰레기를 보다 어머니를 그리고 역사와 미래로 생각이 미치다.
황재천 (금계종손)
음식물 쓰레기가 넘치고 있다. 음식점에서는 먹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가 대량으로 나온다. 먹을 수 있는 양을 넘어선 음식량이 차려진다. 국물은 버려질 걸 예상하고 음식이 만들어진다. 가정에서도 음식물 찌꺼기가 많이 나온다. 음식물 찌꺼기가 나오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음식물 찌꺼기를 처리하는 용기를 갖춘 집들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불가피할까? 음식물 쓰레기를 볼 때 가끔 옛 추억이 떠오른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던 시절이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대인지라 늘 음식량이 배를 채우기에 부족했다. 형제자매들이 음식에 있어서는 경쟁의 관계이기도 했다.
가난으로 음식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여러 형제자매로 음식을 둘러싼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음식을 흘리면 싫어하셨다. ‘낙식(落食)은 불식(不食)’이라면서 흘린 음식은 먹지 말라 하셨다. 흘리면 어머니의 매서운 꾸중이 뒤따랐다. 음식을 두고 형제간 경쟁을 하면서도 흘릴 수가 없었다. 음식 부스러기가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주 가끔,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신 게 먹거리가 없어 식사를 걸러야 했던 일과 먹거리에는 많은 고생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해도 요리 시의 부산물은 나올 수밖에 없다.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나온다. 예전엔 쌀이 나오기까지의 나락 도정이 지금처럼 섬세하지 않았던지라 먼지 등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쌀뜨물이었다. 이 쌀뜨물은 별도의 통에 모아졌다. 식사 후 설거지는 짚으로 하고 거기서 나온 설거지물도 그 통에 부어졌다. 그렇게 모인 물은 매일 끓이는 쇠죽물이 되었다.
당시 집집 마다 소를 키웠다.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었다. 이들 가축 먹이도 끓인 먹이일 때가 많았다. 추운 시기가 오면 가축에게도 끓여서 먹이로 주었다. 도대체 음식 준비와 음식 후에 나오는 부산물이 쓰레기로 버려질 만한 틈이 없었다. 가축을 키우지 않는 집도 그 ‘별도의 통’이 있었다. 당시 ‘구정물 통’이라 불렀다. 가축을 키우지 않는 집의 구정물 통 속의 음식 부산물은 가축을 키우는 집의 사람이 가져갔다.
밥을 할 땐 쌀 위에 가지, 감자, 옥수수 등을 얹어 끓였다. 연료를 절감하는 생활의 지혜였다. 필자는 아직도 가지로 만드는 요리는 물컹한 식감이어야 젓가락이 간다. 쌀 위에 얹어 함께 익히는 방식은 요리 연료 절감을 넘어 요리 시간과 요리 노력도 대폭 줄여주었다.
별도의 조리 기구로 별도의 시간을 들여 요리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 많은 식구가 먹을 요리를 어머니가 뚝딱 해치우는 ‘일의 지혜’였다. 한때 기업에서 경영 혁신 방법으로 열풍이 불던 ‘리엔지지어링(reengineering)’을 접했을 때 맥락이 통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버리는 것이 없고,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를 해치워야 하는 생활이 우리 부모 세대의 삶이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세상의 주인이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 부모 세대의 삶 방식이 지금 시대에 맞지는 않지만, 그 삶의 방식에서 우리가 취할 가치가 있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버려지는 게 당연한 쓰레기가 아닐 수 있다.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도록 양을 조절할 수 있다. 버려지지 않도록 양을 조절하면 절약으로 만드는 가치가 쌓인다. 쓰레기가 아니라 재활용 용도를 찾는다면 재활용이 만드는 가치가 쌓인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다면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쌓인다.
이전 세대의 삶은 단순 역사 기록을 넘고 그리움을 넘어 거기서 우리가 현재 또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를 찾고 활용해야 한다. 선비의 삶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