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80] 가을은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2025-08-29     영주시민신문

가을은

             - 김민부

 

가을은

들메뚜기의 翡翠빛 눈망울 속에서

燈불을 켠다.

가을은

죽은 가랑잎을 갉는

들쥐의 어금니에 번쩍거린다.

가을은

墓碑를 적시는

몇 줄기 비로 내려서……

 

이 하룻밤

내 슬픈 外道에

욱신거리는

痛症으로

온다.

 

- 미리 앓는 가을

여름을 벗으려고 애를 써도 꼬리가 집요합니다. 늦여름을 물고 있는 나무와 풀들조차 올 듯 오지 않을 듯한 가을 쪽으로 목을 뺍니다. 어쩔 수 없이 한 편의 시로 미리 불러들인 가을. 그 가을이 또 이토록 아려서 허기졌던 땀이 휘어집니다.

그것참 말문이 막힙니다. 한여름을 서둘러 지우면서 꺼낸 가을인데, 그 가을 잘 들어오도록 길 하나 툭 터놓았는데, 내 안에 가을은 없고 “욱신거리는/ 痛症”만 까슬합니다. 외면해 등을 돌린 “墓碑를 적시는/ 몇 줄기 비로” 퍼질러 앉습니다. 지치도록 붉으면서요.

요절일수록 가슴은 더 미어지는 법. 해마다 점점 더 짧아지는 가을을 애원해도 보낼 것을 미리 걱정합니다. “들메뚜기의 翡翠빛 눈망울”처럼 섬세한 가을을 베고 누워도, 간절히 써 내려진 시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다 읽어내지도 못하면서, 막바지 여름부터 벗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