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社說)] “납공장 불허”는 끝이 아니라 “시작”
영주시 적서동에 들어설 예정이던 납폐기물 제련공장이 마침내 ‘불허’ 결정을 받았다. 유정근 영주시장 권한대행이 지난 9일 직접 밝힌 이 입장문은 단순한 행정 판단을 넘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인정한 역사적 선언이라 할 만하다.
이번 사태는 ‘공장 하나 설립 반대’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흐름을 만든 주체가 ‘시민’이었다는 점이다.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서명운동에 나섰고, 아침이면 시청 앞에 피켓을 들었으며, 밤이면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나눴다. 일부는 생업을 멈추고 단식에 나섰고, 누군가는 꽃 한 송이로 마음을 전했다. 특정 단체가 아닌 풀뿌리 시민의 자발성과 연대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이는 영주의 지방자치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며,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자발적 시민운동의 모범 사례다. 동시에 낮은 행정과 높은 시민의식 사이의 뚜렷한 간극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2022년 건축허가가 먼저 나간 데다, 공무원이 수백 차례 업체와 통화하며 허점을 노출한 점은 행정 신뢰를 근본부터 흔든 대목이었다.
하지만 시민은 좌절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료를 모으고, 환경부에 질의서를 보내고, 법령을 분석하며 설득과 대응을 이어갔다. 그 과정은 “지식 없는 시민”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엎고, 누가 진정한 공익의 주체인가를 되묻게 만들었다.
영주시의 이번 불허 결정은 시민을 위한 행정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준 결정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납공장 반대 대책위는 ‘불허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선언하며, 법적 사유 공개, 허위 서류 기반 허가의 직권취소, 외부 감사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당하고 상식적인 요구다.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 시민 참여의 제도화 없이는 이 같은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주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공공갈등을 예방할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공청회 의무화, 정보공개 확대, 환경영향평가의 투명성 확보는 물론, 사전고지 제도도 제도권에 포함돼야 한다. 주민의 삶에 직결된 문제일수록 행정은 미리 알리고, 함께 논의하고,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이번 싸움은 결국 ‘생명을 지킨 도시’라는 이름을 영주에 안겼다. 시민은 분명히 증명했다. 작은 목소리도 모이면 큰 결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이 희망을 이어가야 할 몫은 다시 시민의 것이고, 행정과 정치가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이다.
영주는 ‘시민이 만든 도시’다. 앞으로도 ‘시민이 지켜낼 도시’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