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社說)]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앞선 행정은 없다

2025-06-27     영주시민신문

지난 18일 오후 7시 영주역 광장은 촛불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외치던 광화문 집회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았다.

지방의 언론들이 본 이날의 광경은 이러했다. 안동 MBC는 '납공장 대법 패소 후폭풍....영주시 늑장 대응 ‘질타’'라는 방송을 내보냈고, 매일신문은 '영주 도심에 납 제련소가 웬 말 구름 떼 시민들, 소극 행정 규탄'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납 공장 절대 불가… 영주 도심 인근 제련시설 허가 앞두고 시민 반발 확산'이라 했고, 경북일보는 '영주시민은 울고, 행정은 외면한다'고 쓰고 있다.

본지 역시 1면 기사에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시민 행동, 엄마들이 뿔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18일 영주역 광장은 시민 1천500여 명(주최 측 추산 2천 명)이 모여 “납 공장,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어르신들은 자전거를 타고 또는 걸어서 광장으로 모여 들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궐기대회를 주관했던 납폐기물제련공장반대대책위원회 관계자들 조차 예상 밖의 인파에 놀랄 정도였다.

이날 연단에 오른 시민들의 외침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영주시가 시민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므로 이 싸움,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납 공장은 연간 3천500톤의 폐기물을 다루는 시설임에도 연 16톤 수준의 오염방지시설만 설치돼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심지어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 무대에 올라와 납 공장은 절대 안된다고 했다. 앳된 목소리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기도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놀고 싶다고도 했다. 분위기는 뜨거웠고 완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밤 시민들의 열기가 가시지도 않은 익일, 시민들은 우울한 소식을 접해야 했다.

영주시의회 제293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납 공장 설립 승인 관련 시정 질문에 대해 시장 권한대행(부시장)은 “판결 취지를 배제하거나 무시한 채 공장 신설 승인 거부 처분을 반복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다만 공장이 가동되면 전문 검사기관에 오염도 검사를 의뢰해 배출허용기준 준수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겠다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납공장 설립 승인이 예정된 가운데 시민의 반발이 거세지자 민의를 대변하는 일이 주된 역할이면서도 지금까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시의회가 구원 등판을 자처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20일 납폐기물 재생공장 대책 특별위원회(위원장 전풍림)를 구성하면서, 납 공장 관련 환경 영향과 행정 행위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남은 절차의 투명성 확보와 유사 사례의 재발 방지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의회는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헌법 제35조에 따라 환경 보호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했던가. 시의회 역시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시민사회는 시의회에 대해 특별히 기대는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모 시의원이 말한 것으로 알려진 법을 따라야 하지만 시민의 우려와 신뢰를 저 버려선 안된다는 게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고도 했다.

정리해보면 시가 엎질러진 물 위에서 격랑이 일어나자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인 반면, 시의회는 뒤늦게 얼굴이나마 내밀어 알리바이라도 만들겠다는 느낌적 상황이다. 아무튼 시민 행동 이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어 보이는 시민들만 곤혹스러워졌다.

이제라도 영주시는 더 이상 판결 뒤에 숨어선 안 된다. 사법적 판단이 행정의 무책임을 면죄해주지 않는다. 환경권은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기본권이며, 그 책임은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모두에게 있다. 시의회 역시 말뿐인 결의가 아니라 실질적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환경 영향 검토와 행정 적정성 확보는 뒤늦은 수습이 아니라 애초에 했어야 할 기본 절차였다. 시민의 외침은 진즉 들었어야 했고, 이제는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도시의 품격은 위기 앞에서 드러난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앞선 행정은 없다. 영주는 지금, 그 원칙이 통하는 도시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