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곧 사람, 함께 만드는 지역 공동체 “예술이 도시의 품격을 바꾼다”

우리동네 영주人터뷰 [78] 한국예총 영주지회 김진동 지회장

2025-06-07     이영선 기자
영주시민오케스트라
영주 심포니 지휘자 _김진동

피아노에서 지휘자까지, 예술로 걸어온 36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지역 음악 생태계 만들어

 

시립합창단 창단은 예술도시 영주의 출발점

예술은 혼자가 아닌 함께… 지역문화는 ‘연대’에서 완성

“예술은 도시의 품격을 결정짓는 힘입니다”

우리고장 영주에서 36년 넘게 지휘봉을 잡아온 김진동 한국예총 영주지회 회장(65)은 자신을 ‘지휘자이자 문화 기획자’라고 소개한다. 단순한 무대 위의 예술가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영주지회 제10대 지회장을 맡고 있다. 7대 회장에 이어 두 번째 회장 역임이다.

김 회장의 예술 여정은 그림에서 시작됐다. 유년 시절, 그는 색채와 선에 매료된 소년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삶의 방향은 음악으로 전환됐다. 서울에서 음악을 공부하던 형의 영향이 컸다. 그는 피아노를 시작으로 바이올린, 플루트 등 멜로디 악기를 익히며 음악적 기초를 다졌고, 작곡에 필요한 화성학과 청음은 물론 고전음악 이론도 깊이 있게 습득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안동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면서도 작곡과 지휘를 함께 공부했다. 특히, 당시 처음 개설된 작곡 수업의 ‘1호 수강생’으로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합창단 활동을 해왔고,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음악극 ‘오페레타’를 시도하는 등 도전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학생이었다. 교회에서도 뮤지컬 형식의 무대를 기획·제작했으며, 오케스트라 소리가 처음 귓가에 꽂혔던 중학교 3학년 때를 지나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지휘자’라는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영주 심포니 행복음악회

# 그의 예술적 기반은 결코 즉흥적이지 않다

“중3 시절이죠. 어느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를 처음 들었어요. 그 감동이 잊히지 않았죠. 그 무렵 ‘나도 지휘자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김 회장은 대학교에서 음악과를 졸업한 뒤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전문 음악 교육을 이수했다. 이후 이탈리아 로마에서 Arts 국제음악원 지휘 전공을 수료했고, Bracciano Summer School에서도 전문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유럽 음악 현장을 직접 체득한 이 경험은 그가 지휘자로서 감성과 기술을 정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예술 인생은 두 개의 선율이 흐르고 있으며, 지역 예술계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꿈은 1990년 12월 1일, 영주에서 민간 차원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며 현실이 됐다. 이후 36년간 단 한 번도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고, 지역과 호흡하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왔다. 1994년 경북체전을 앞두고는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의 대형 무대를 지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문 합창단과 성악가들을 초청해 대규모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는 본격적인 활동의 출발점이 됐다.

초기에는 공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개인 후원으로 행사를 이어갔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영주시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현재는 경북도와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 등을 통해 연간 3회 정도의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 회장은 단순한 지휘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음악 감독이자 창작자로서 기획부터 대본, 공연 구성, 홍보와 연출까지 전반을 스스로 도맡는다. 때로는 총감독, 때로는 예술감독으로 전방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구노의 「장엄미사」, 헨델의 「메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같은 고전 대작을 지휘했으며, 창작 뮤지컬 「금성대군」, 「무섬아리랑」, 「안향」, 「통한의 붓」 등 지역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도 총감독으로 이끌며 깊은 족적을 남겼다. 즉흥적인 예술을 지양하고 철저한 준비로 완성도를 높였기에 인근 지역에서도 그의 예술 세계는 주목을 받고 있다.

2013년 영주 최초의 창작 뮤지컬 ‘금성대군’을 성공적으로 선보인 그는 이후, ‘구르메 마음태우고’ 등 여러 작품에서 지역의 스토리를 담아 창작물을 잇달아 무대에 올렸다. 특히 무섬마을 모래사장을 무대로 펼친 실경 뮤지컬은 지역 관광과 문화 콘텐츠가 융합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성과는 대구의 어린이 전문극장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 9대 회장이 기획한 창작극 「덴동어미 화전놀이」는 매번 각색을 거쳐 관객 눈높이에 맞춘 표현력과 언어 감각을 살려낸 작품으로, 600석 규모 극장에서 연일 호평을 얻었다.

뮤지컬 '금성대군'
독도오페라 '금지옥엽'

# 예술을 엮고, 세대를 잇다

김 회장은 영주와 타 지역을 넘나들며 예술을 공동체로 확장하는 데에도 힘써왔다. 창신대학교 음악과 외래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6년째 독도오페라단에서 예술감독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오는 6월 공연 예정인 ‘금지옥엽’ 작품에서 전체 음악을 맡는 등 공연 준비에도 한창이다. 또한 영주문화원 이사로 27년간 활동하며 여성합창단과 시민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무대에 올랐다.

특히 1991년 창단한 ‘개나리어머니합창단’은 초기에 30명으로 시작해 80명 규모로 성장시켰다. 1994년 설립한 영주음악협회도 그의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다. 이 협회를 기반으로 시민합창단, 영주청소년오케스트라, 소백예술단 등을 조직해 지역 음악 생태계를 폭넓게 구축해 왔다. 그는 “기획력과 추진력은 내 장점”이라며 웃어 보였다.

실제로 합창단 구성 시 회원 모집부터 기획, 홍보까지 대부분을 스스로 도맡았다. 최근에는 30대 이하 젊은 음악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30대가 20대를 끌어줘야 한다. 기회를 줘야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며 “현재 음악협회에서도 30대 인재에게 지부장 등의 역할을 맡겼다”고 밝혔다.

영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청년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그는 젊은 세대를 문화 분야에 정착시키는 것이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합창교향곡 '무섬외나무다리'

# 시립합창단, 도시의 품격을 위한 필수

김 회장은 영주에 시립합창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북 전체를 놓고 보면 포항, 경주, 구미, 안동, 문경, 상주시에 이어 심지어 울진군에도 시립합창단이 있는데, 영주와 영천만 없습니다. 합창은 아름답고 고귀한 음성을 들려주는 역할을 하죠. 예산도 비교적 적게 듭니다. 이후에도 프로와 아마추어를 계속 양성할 수 있어요”

그는 합창단이 단순한 공연을 넘어 도시를 대표하고, 지역민의 정서를 치유하는 중요한 문화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병원, 양로원, 지역 순회 등 힐링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청년을 유입하기에도 좋고, 아이들을 키우기에도 좋은 도시의 표본이 될 수 있죠”

그는 합창단이야말로 적은 비용으로 지역 문화를 가장 깊고 넓게 파고드는 예술 형태라고 강조한다. 심지어 그는 시립합창단이 창단되면 전문 합창단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합창단, 아동합창단, 남성·여성 중창단 등 다양한 문화 그룹도 함께 활성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영주에는 이미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기본적으로 15개 이상의 악기를 사용하죠. 민간이 운영하지만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은 다 마련돼 있습니다”

그의 현재 최대 과제는 바로 ‘시립합창단’ 설립이다. “우리는 이미 예술이 도시의 수준을 말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합창단 하나만 있어도 도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젊은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타 도시로 떠나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김 회장은 영주시와 시의회, 지역 예술계가 삼박자로 협력해 이 꿈을 실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영주에는 그가 창단한 영주심포니오케스트라가 있고, 공연 기반도 마련돼 있다. 그는 “젊은 인재들이 영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때”라고 조언한다.

합창교향곡 '소수서원'

# 예술이 곧 사람이자, “도시를 살린다”

안동이 영주를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김 회장은 문화예술인 단체 간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처럼 공연예술과 전시예술이 따로 노는 구조에서는 발전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지난해 송년의 밤 행사에서 무용협회, 연극협회, 음악협회, 문인협회 등 총 8개 협회와의 만남을 통해 소통의 시간을 마련했다. 각 협회가 자율적으로 ‘끼’를 선보일 수 있도록 장기자랑 무대도 열었다.

공약 중 하나였던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김 회장은 “정말 놀랐다. 연말에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끼를 보여주셔서 무척 다채로웠다”며 “예술은 자존심으로 하는 게 아닌 만큼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인의 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술행정가, 작곡가, 지휘자, 연출가, 교육자, 공동체 기획자라는 여러 역할 속에서도 일관되게 한 가지를 강조한다.

“예술은 결국 사람입니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예술은 살아납니다”

한국예총 영주지회 회장으로서 그는 지역 예술단체 간의 화합과 소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예술은 자존심 싸움이 아닙니다. 겸손과 봉사, 진심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총 지회장으로서도 리더십은 언제든 내려놓을 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끈 송년의 밤 행사는 단순한 연말 모임이 아니었다. 무용협회가 개그 무용을, 연예협회가 연극을 선보이는 등, 예술인들이 장르를 넘어 서로의 끼를 발산하며 어우러진 장이었다.

2024 제1회 영주예총 송년의 밤

“서로 웃고, 박수 치고, 어깨를 나란히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회장으로서 그는 하나의 단원을 지휘하듯, 예술계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김 회장의 음악 인생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공동체와 도시의 미래를 위한 ‘문화 행정’에 가깝다. 예산을 계산하고, 기획을 설계하며, 교육과 예술을 연결하는 그의 모습은 지휘자이자 도시 기획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그는 후배들을 위한 무대, 시민과 함께하는 무대, 지역의 역사와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지녔다. 그의 예술 철학은 “예술이 도시를 살린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지금은 제가 있지만, 다음은 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무대를 넘겨줄 준비는 돼 있습니다. 저는 기꺼이 그 길을 닦아놓겠습니다”

그는 특히 매력적인 시민오케스트라 활동에 대해 “앞으로 함께 늙어가겠다”고 표현했다. 벌써 9회째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 회장은 예총 회장으로서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있다. 바로 영주시민회관의 위탁 운영권을 예총이 맡는 것이다.

“시민회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지역 예술의 심장입니다”

현재 시민회관은 공간 활용도도 낮고 시설도 노후화돼 있으며, 실질적인 문화 콘텐츠 중심의 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총 소속 단체들은 대관료를 내야 하고, 공연팀이 많은 협회들은 외부 연습실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주말에 공연이 많은 예총은 공연팀도, 전시팀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며 “시민회관이 문화 플랫폼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민회관은 그런 공간을 품어줘야 하고, 최소한의 품격을 갖춰야 시민들도 이 공간에 다시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