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69] 지는 게 이기는 거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지는 게 이기는 거
-백민주
털게와 꽃게가
권투시합 하기로 했다.
털게는 털장갑 끼고
싸울 준비하는데
꽃게는
기권인가 보다.
털게에게 주려고
꽃을 들고 온 것을 보니
꽃게가 이겼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
-잘 이기는 기술
어떻게 지는 게 이기는 것이 될까요? 어떤 이들에겐(특히, 아이들) 고개 갸우뚱해지는 말이지요. 그러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걸까요? 정직하게 이겼다면, 지는 게 이기는 게 될 수 없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겼다면, 이긴 게 아니라는 걸 속으로는 알아요. 비겁했던 마음을 숨길뿐이지요. 애초에 싸움판 같은 걸 벌이지 않는다면, 이 또한 경쟁 사회에 뛰어든 이상 개개인의 발전에는 장애가 되어요. 상황에 따라, 맞기도 틀리기도 한 게 참 애매하긴 하네요.
우리 눈엔 엇비슷하게 보이는 게일뿐인데, ‘털장갑을 낀 게’와 ‘꽃을 든 게’로 구분한 발상이 남다르네요. “털게에게 주려고/ 꽃을 들고 온” 꽃게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리자가 되었어요. 봐 준건지 실력이 안 돼서 포기한 건지는 꽃게의 속마음이 표현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꽃 먼저 준비한 꽃게의 마음은 잘 이기는 기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어요.
지는 게 이기는 것, 손해 보는 게 남는 것. 이 말들의 속뜻은 날카로운 완벽보다, 물처럼 부드러운 게 인간적이고 순리적이란 것에 있는 듯해요.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잖아요. 그거면 됐지요. 아이들에겐 언제나 엄마 말이 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