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68] 성냥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성냥
-임영조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출옥하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다
오랜 연금으로
흰 뼈만 앙상한 체구에
표정까지 굳어버린 돌대가리들
언제나 남의 손끝에 잡혀
머리부터 돌진하는 下手人이다
어둠 속에 갇히면
누구나 오히려 대범해지듯
저마다 뜨거운 敵意를 품고 있어
언제든 부딪치면 당장
焚身을 각오한 요시찰 인물들
(주목받고 싶은 者의
가장 절실한 믿음은
최후의 만용일까?
의외의 죽음일까?)
그들은 지금 숨을 죽인 채
어두운 棺 속에 누워 있지만
한순간 화려하게 데뷔할
절호의 찬스를 노리고 있다
빛부신 出世를 꿈꾸고 있다.
-내 머리, 남의 손끝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떤 일을 주도할 수 있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숨 쉬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어도 보는 사람에 따라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사지 멀쩡한데 무엇인들 못하랴 싶긴 해도 행동이나 포기를 결정하는 것은 신체보다는 보이지 않는 머릿속(생각)에 달려있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성냥’이라는, 이제는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흰 뼈만 앙상한 체구에/ 표정까지 굳어” 있는 사물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쓴 시가 감정을 후벼내고 있습니다. 사물을 대하는 섬세한 관찰에 먼저 놀라고, 하나의 삶으로 풀어낸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울화를 토하기도 하게 하는 투영에 깊이 젖어 들게 됩니다.
나는 언제 한번 화끈하게 불살라 볼까요? “최후의 만용”이든 “의외의 죽음”이든, “빛부신 出世를 꿈꾸”던 시간이 새롭게 타오르고 있어요. 어제의 내일을 다시 태울 불꽃으로요. “절호의 찬스를 노려” “화려하게 데뷔”하려는 대선 차량의 확성기가 크게 흔들리는 오월의 끄트머리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