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67] 산산조각
*시영아영-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부서진 그다음
정호승 시인은, 그가 쓴 시 중에서 가장 위안을 받는 시가 이 시라고 했습니다. 깨져버린 부처상으로 우화소설을 썼고 시로도 썼는데,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라는 시구가 많은 사람에게 좌우명이 될지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시적 상상 속 부처님께서는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완벽이라는 강박에서 해방된 삶은 조각의 크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크기는 다를지언정 무게와 가치는 같다고요. 그래서 산산조각인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싶은 삶도 그때그때 조각인 삶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고, 내 손으로 꼭 쥘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완성품이 아니라 사금파리 같은 조각인 것을 안다면요.
삶이 산산조각 나듯 깨어져 본 적 다들 있잖아요.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고 합니다. 삶이 깨어졌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새로운 조각을 얻을 수 있고, 깨어지지 않은 빛이 내 안에 들어 있음을 아는 것! 그렇게 숨 한번 다시 쉬어보는 것이 삶의 방향을 배우는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