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애향인 인터뷰[120] 신도리코 안양점을 개척해 현재까지 외형 성장과 내실을 다진 송수근 대표의 나의 살던 고향은

“신도리코 34년, 고향은 늘 제 마음의 중심입니다”

2025-05-17     황재천 기자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무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편집자 주>

학비 없는 공고 선택, 고신대 중퇴 후 신도리코로

31세 대리점 창업, 신도 브랜드와 함께한 34년

 

자전거 통학, 스쿨버스, 선산의 공원화까지…영주의 기억들

“영주시민신문 같은 고향 소식 창구, 더 많아졌으면”

매일 아침 청계산을 오른다
최우수 대리점 선정

송수근 대표는 신도리코 안양지점 대표이다. 신도리코 안양지점은 전국 신도리코 지점 중 우수 실적으로 3년 연속 신도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영주에서 중학교 졸업 후 학비가 들지 않는 공고에 진학했다. 당시 공고는 학비가 들지 않았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시 소재 공고에 입학했다. 부친의 타계로 대학도 중퇴하고 취업을 모색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지 복사기 개발 업체인 신도리코에 입사한 후 일찍 지점 영업을 자원해 지금까지 외길을 걷고 있다. 처음엔 혼자 뛰었지만, 지금까지 급격한 환경변화를 헤치며 직원 10명을 두고 있다. 송대표와의 인터뷰로 당시 학생들의 생활상이나 사회 환경에 관한 이야기도 알 수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전화 인터뷰로 인터뷰한 날은 그의 손자․손녀가 방문한 날이었다. 손자․손녀가 있는 가정이라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시간이 좀 나세요?

부산 사는 딸네 애들이 왔는데, 왔다 갔다 하고... 애들이 오니 정신이 없군요. 거기다 어제 치과 치료를 해서 말도 좀 어색합니다. 하하.

손자·손녀가 와서 떠들썩하다니 좋은데요(함께 웃음). 치과 치료가 마취를 동반했었나 보군요?

네. 임플란트를 위한 잇몸 치료를 했습니다. 찢고 꿰매고... 그런데 제가 잘난 것이 없어 인터뷰해도 되는지...

인터뷰한 애향인들이 모두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군요(함께 웃음). 고향 사랑이 중요합니다. 어디서 자라셨나요?

장수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장수면 두전2리입니다. 띠밭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는 장수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는 장수국민학교였습니다. 당시 이 마을 저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장수초등학교 학생 수도 1,500명 정도였을 겁니다. 지금은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다는군요.

중학교는 영주 시내로 다니셨고요? 영주 시내에서 하숙을 했나요?

장수초등학교 나오고 영광중학교에 다녔습니다. 5km 정도의 거리입니다. 중학교 때 하숙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걸어서 다니기도 했지만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 다닌 친구가 많았습니다. 입학할 땐 스쿨버스가 없었는데 학교 다니는 중간에 스쿨버스가 생겼습니다. 그 버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 버스를 영광중학교 영광고등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타고 다녔습니다. 1975년도 쯤 영광중고 스쿨버스가 생겼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그때 교회에도 다녔는데 그 스쿨버스로 교회도 다녔습니다. 학교 옆 교회인 제일교회입니다. 학교가 미션스쿨이었거든요. 꼬박꼬박 예배 참석했습니다.

자전거로 통학하면 얼마나 걸렸나요. 시간이?

자전거로 다녀도 어렸으니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자전거 속도를 내기도 힘들고 그때 고개는 지금처럼 길이 직선이 아니라 꼬불꼬불했거든요. 당시, 비포장도로였는지라 비 오면 바지에 흙탕물이 마구 튀었습니다. 비 오면 움푹한 곳도 생기고... 버스가 지나가면 먼지도 엄청 났습니다.

며칠만 자전거 타고 다니다 지나가는 버스를 만나면 교복에 먼지가 하얗게 앉았습니다. 그 먼지 일으키는 버스를 자전거로 쫓아가기도 했습니다. 매번 그러지는 않고 어쩌다가 발동이 걸리면 말이지요(함께 웃음). 걸어서도 다녔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렸을 겁니다.

군 복무시절

고등학교는 어디를 다니셨나요?

중학교 졸업 후 부산으로 갔습니다. 부산기계공고에 진학했습니다. 학비 면제에 숙식 제공이었습니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엔 집안 형편이... 아버님이 안정면장을 6년이나 하셨는데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습니다. 형제들도 학비 들지 않는 학교로 진학을 했고요. 형님은 경찰로 퇴직하셨고 남동생은 안산시청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저희가 3남4녀였거든요. 제가 아들로 두 번째..

송대표께서는 대학 진학을 못하시고 취업을?

고등학교 졸업 후 고신대 교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고신대는 신학과, 교육학과, 종교음악과, 의예과. 이렇게 4개 학과가 있었습니다. 저는 고신대 2학년 1학기 마치고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저도 복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택했습니다. 신도리코 영업직으로. 몇 년 근무하다 신도리코 안양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31세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도리코 브랜드로 34년을 살고 있습니다.

31세에 독립이라... 젊은 나이에 홀로서기를 하셨군요. 현재도 그 일을 하시니 신도리코 대리점 역사의 산증인이겠습니다.

당시 안양영업소에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대리점으로 전환할 때 제가 맡았습니다. 당시 경제가 막 활성화하는 시기였잖아요. 신도리코는 사무기기 중심 기업입니다. 대리점도 이젠 판매보다 렌탈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조그맣게 했는데 지금 많이 커졌습니다. 친구들 거의 퇴직 다 했거든요. 오하이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학 제 아들이 귀국해서 2년 정도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제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들이 재미있어하는 듯합니다.

아들이 하는 일이 아버지의 방식과 차이가 있을 듯도 하군요? 갈등은 없나요?

제가 영업 시작할 당시는 찾아가는 영업으로 100% 오프라인 영업이었습니다. 지금은 환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무작정 거래처 방문도 시건 장치나 경비를 통한다든지 그래야 하거든요. 요즘엔 영업도 온라인 홍보 등 온라인이 대세입니다. 아들이 그런 사업환경에는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아직도 전단지 뿌리는 영업 방식은 쓰고 있습니다(함께 웃음).

해외여행 시

고향 이야기로 돌아가서…고향 사람들과는 자주 만나시는지요?

현재 재경 77회 6기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초대 회장이 이강기 친구입니다. 77년도에 중학교를 졸업한 영주인 모임입니다. 학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학교가 달라 일면식이 없던 사람도 77회 모임에 오면 바로 친구가 됩니다. 이달 16일, 재경 77회 골프 모임이 있습니다. 60명 정도 참가할 것 같습니다. 또래 모임으로 영주에 61회가 있다면 서울에는 재경77회가 있습니다.

영주에 골프장이 있었더라면 고향으로 오셔서 라운딩하실텐데 아쉽습니다.

고향에 골프장이 생기면 좋지요. 고향 생각 때문에 고향에서 가까운 예천, 안동, 충북 단양에 가기도 합니다. 영주에 골프장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빨리 생기기를 바랍니다.

동감입니다. 저는 서울 살 때 고향 친구들과 등산을 주로 했는데…

고향 생각 때문인지 특히 소백산을 좋아합니다. 집 앞의 산인 청계산엔 혼자서도 아침 6시에 올라 갔다 옵니다. 자전거 라이딩도 자주 하곤합니다. 안양에서 한강까지 갔다 오곤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회갑 모임도 벌써 몇 해 전 일이다

고향에는 자주 오시나요?

부모님 산소도 고향에 있거든요. 저희 야성 송씨 일가는 두전2리 띠밭 선산을 공원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명절 때는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합동 제례를 지내곤 합니다. 또 바로 위의 누님이 고향에 삽니다. 매형이 영주와 봉화 농촌지도소 근무하다 퇴직하셨습니다. 또 친구들도 많습니다. 최근엔 장수초등학교 동문 운동회가 있어 갔었습니다.

나라 전체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었고 거기다 시골은 더 심각합니다.

네. 걱정입니다. 제 사는 곳에서도 유모차에 아이가 아니라 개나 고양이를 태우고 다니는 걸 봅니다. 아침 등산을 하다 보면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제가 회사 일 하면서 눈으로 보는 현상인데 이곳 안양은 수도권이지만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감소하고 있고 학원가도 어렵다고들 합니다. 놀라운 건 강아지 유치원이 있습니다. 강아지도 반장이 있는데 그 강아지 주인은 그 강아지 반의 부모 회장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회장은 개껌도 돌리곤 한다는군요.

고향을 위해 한 말씀 부탁합니다.

그건 고향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노력하고 있겠지요. 국회의원도 있고요. 귀향을 생각지 않은 출향인은 없을 겁니다. 실행한 분들은 매우 적고요. 고향을 떠나 산 시간이 깁니다. 외지에서의 삶이 이미 익숙해졌고 귀향하면 새로 시작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근처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엔 은퇴하지 않고 도시에서 계속 일하는 사람도 많고요.

고향의 특산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풍기인삼, 영주사과, 영주쇠고기 경쟁력을 높였으면 합니다. 저는 행사 시 영주문어와 배차적(배추전)을 영주에서 배달합니다만 사람들이 잘 모르더군요. 경북 북부권의 간고등어는 이제 안동 특산이 되었고... 소백산도 단양 쪽 접근이 많습니다. 그 많은 문화 유적도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 같고... 문중 모임도 주로 장남 중심 참석이고... 영주시민신문처럼 고향 소식을 알 수 있는 매체 구독도 늘었으면 합니다.

 

<송수근 대표 프로필>

- 장수초등학교, 영광중학교,

   부산기계공고 졸업

- 고신대 중퇴

- 신도리코 입사

- (현) 신도리코 안양지점 창업 대표

        (신도 브랜드로 34년),

  (현) 영주77회 회장(6기)

- (수상) 신도네트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