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애향인 인터뷰[119] 초선으로 시의회 의장을 하는 하남시 의회 금광연 의장의 나의 살던 고향은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만학으로 박사까지...‘월화수목금광연’

2025-05-03     황재천 기자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편집자 주>

주말에도 하남시 일로 바빠 별명이 ‘월화수목금광연’

지방자치 33년, 이젠 지방의회법이 제정돼야 할 시점

하남시 육아종합지원센터 2024사업보고대회(2024.12.18)
경기동부권 시군의장협의회

금광연 의장은 하남시 시의회 의장이다. 그는 초선이다. 초선이 의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도 하남시 일로 바빠 ‘월화수목금광연’이란 별명이 붙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없는 금광연이란 말이다. 금의장이 고향 이야기할 땐 목소리에 열기가 느껴진다.

그가 인터뷰에 시간을 낸 것도 자신이 시의회 의장으로 있는 하남시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의 교집합으로 보였다. 자신이 인터뷰 대상이 되는지 조심스럽다는 금의장과 그의 하남시 활동을 주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활동하시는 모습을 페이스북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앙정치의 정쟁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하남시 지역민을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이 특이했습니다.

하남시 시의원으로서 하남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활동 전념은 당연합니다. 제가 소속한 정당에서 저를 공천했던 것도 하남시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늘 바쁘신데 요즘은 어떤 일로 바쁘세요?

날씨가 풀리니 문화체육행사가 많습니다. 하남시민이 모이는 곳이니 행사가 잘 치러지도록 하고 또 현장에서 시민의 삶을 직접 보고 시민의 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있습니다.

시민 시민 시민.. 역시 의장님이십니다(함께 웃음). 고향은 산불이 나지 않았지만, 인접 시군의 대형 산불 재난으로 행사가 많이 취소되었습니다. 5월 초 선비문화축제는 예정대로 합니다만..

안타깝습니다. 고향을 떠나 있지만 고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신경을 쓰게 됩니다. 고향인 영주는 직접 피해가 없었지만, 우리 하남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영양군은 직접적 피해가 커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고향인 영주의 선비문화축제는 취소되지 않았다니 기쁩니다. 저는 아직 시간을 정하지 못했지만 가능하면 가보려고 합니다.

의정활동 우수의원 공로패 수상(2022년12월 경기도 시군의회의장협의회)

어디에서 태어나 자라셨나요?

저는 봉화 문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너무 어려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봉화 재산에 계시다 영주로 이사하셨고 그 뒤 쭉 저희 4남매가 영주에서 성장했습니다. 저는 영주동부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중앙고등학교, 경북전문대를 고향에서 나왔습니다. 아버님은 당시의 영주군청에 계약직으로 계셨다가 퇴직하시고 또 다른 일도 하셨는데 제가 중앙고 입학 무렵 타계하셨습니다. 저는 4남매의 둘째로 형님은 영주에 계시고 누님과 여동생은 미국에 거주합니다.

선친께서 일찍 타계하셨군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님이 타계하셨는지라 어렵던 형편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어머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고등학교 졸업 후 시험을 보아 영주에서 공무원을 했습니다. 경북전문대는 원래 주간으로 입학했는데 공직 근무하며 야간으로 바꾸어 다녔습니다. 그 뒤 방송통신대의 공부도 했습니다.

박사학위까지 하셨지요?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늘 업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보니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제 하는 일이 행정인지라 행정학으로 한양대에서 석박사까지 공부했습니다. 늦은 나이의 박사학위였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 또는 하고자 하는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기를 고향의 후배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일을 잘 하기 위한 학업 지속이라.. 선비정신입니다. 참 멋집니다. 공직으로만 근무하셨나요?

영주시에서 하남시로 전출해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과장으로 동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뒤 국민의 권익 보호에 관심이 커서 국민권익위원회로 옮겨 일하다 금융감독원으로 옮겨서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보통 퇴직하면 하던 일과 관련된 일을 찾거나 연금 생활을 하는데 정치로 입문하셨군요?

원래 정치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퇴직 후 공직의 대부분을 보낸 하남시에서 ‘국민 권익 보호 전문 행정사’ 개업을 했거든요. 그 일을 하며 시민에게 불편부당한 사례들과 행정 처리의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행정 행태가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면들을 보고 행정사 업무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 변호사 조력을 받기 힘들거든요. 이런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직접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행정은 대체로 관례 중심적이고 그게 외부로는 군림으로 보입니다. 일을 해결이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시민을 위한 행정이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시의원 출마로 이어졌습니다.

현장을 찾아 듣다

공직 생활을 하며 느낀 보람이 많겠지만 하나를 소개하시면?

하남시는 지형적으로 한강과 접하고 금단산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갖고 있다지만 한강의 활용은 서울과 연결되어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한강 둔치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하남시 체육팀장으로 발령받고 국토부와 국토관리청을 여러 번 찾았습니다.

당시 둔치에 큰 돌 작은 돌이 많았는데 국토부 승인도 안 난 상태에서 제가 책임진다고 하며 황토로 덮고 생활체육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좀 이상한 친구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남시민이 사랑하는 공간이라 보람이 큽니다.

기존의 관행에 익숙한 행정 관료를 만나곤 합니다. 금의장님의 사례는 지방행정사에 기록되어야 하겠군요(함께 웃음).

타성에 젖은 공무원도 있지만 적극적 공무원도 많습니다. 변하는 시대에 맞는 적극 행정을 하는 선출직과 공무원이 많으면 그런 자세가 다른 공무원들에게 복제가 되는 선순환을 보입니다. 지방행정에서도 중요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하남시 발전을 위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가요?

지금 33만 명 인구입니다. 교산 신도시가 개발이 완료되면 인구 50만 도시가 됩니다. 과거 중앙집권적 신도시 개발처럼 하면 안 됩니다. 하남시가 서울의 베드타운(bed town)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이곳에서 소득을 창출하며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점을 계속 강조하며 관련 기관들과 계속 소통하고 있습니다.

시의원이 되며 하남시 고충처리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이 고충처리위원회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행정처분 배심원제 조례를 제정해서 부당하거나 위법한 처분을 전문가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한 번 더 심의 처리해 시민의 권익이 적극 보장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활동지원사 보수교육 및 송년회(2024년)
하남시 미래도시 간담회

더 나은 공직 생활을 위해 계속 공부도 하셨고 현재 하남시 의회 의장이시니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와 관련해 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하는 것도 있을듯한데요?

국민의 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해 국회는 국회법이 있습니다. 지방자치시대가 33년이나 되었으니 지방의회법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제가 발의한 지방의회법 제정 건의안이 전국 시군구의장협의회를 거쳐 국회와 중앙정부에 전달되었고 국회에서 한 차례 세미나도 열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어머니가 우등상을 받아오면. 찐빵을 주겠다 하셨어요. 당시 찐빵은 그냥 군침만 흘리는 존재였거든요. 우등상을 받았더니 찐빵이라고 만드셨는데 빵이 아니라 떡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찐빵을 만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친구에게 도저히 나눠줄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그 마음이 짠하게 느껴집니다.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게 효도란 걸 느끼기도 했고요. 영주중학교 빨간 명찰이 늘 멋있게 보였어요. 입시 시절 영주중 교문에 붙은 엿을 보고 ‘저 맛있는 걸 왜 저기 붙여 놓았을까’라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영주중학교 다닐 땐 멋있게 보이던 악장을 했습니다. 그때 기분이 얼마나 들떴던지(함께 웃음).

영주중앙고를 다니셨는데 개교 초창기였지요?

제가 3회입니다. 당시 선생님들이 밤 10시까지 퇴근도 안 하고 학생들 공부하는 걸 지켜보셨습니다. 소풍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간 소풍이 어느 토요일 선생님과 함께 친구들이 풍기 금선정에 간 것이었습니다. 그때 금선정은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노송 아래 바위에 앉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물놀이도 하고... 반나절의 소풍이었는데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향에 자주 오시는지요?

시의원이 되기 전에는 가곤 했는데... 시의원 당선 후에는 좀체 시간을 내기 힘듭니다. 재경향우회에도 잘 나가지 못해 송구하지요. 그렇지만 고향사랑 마음은 늘 같습니다. 지역 소멸론이란 말이 나오는데 고향사랑기부제를 적극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이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고향 친구들을 만나 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은 특화를 시키고 거기에 세제 혜택 등 실질적 도움이 있도록 중앙정부와 국회가 노력해야 합니다. 또 제도는 이미 있는데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으니 찾아야 합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향에도 시간 내어 자주 오시길 바랍니다. 생각만이라도(함께 웃음). 바쁘실수록 건강도 챙기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금광연 하남시의회 의장 프로필>

- 영주동부초등학교

- 영주중학교

- 영주중앙고등학교

- 경북전문대학

- 한국방송통신대학

-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석사 및 박사)

- (현) 하남시의회 의장, 행정사 금광연사무소 대표

 

- (역임) 하남시청(사회복지과장, 덕풍3동장, 초이동장)

- (역임)국민권익위원회 부이사관

- (역임)금융감독원 제재심의 및 제재면책심의위 위원

- (역임)하남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

- (수상) 경기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 의정활동 우수의원 공로패(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