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60] 복사꽃 아래 천 년
*시영아영- 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복사꽃 아래 천 년
-배한봉
봄날 나무 아래 벗어둔 신발 속에 꽃잎이 쌓였다.
쌓인 꽃잎 속에서 꽃 먹은 어린 여자아이가 걸어 나오고,
머리에 하얀 명주 수건 두른 젊은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허
리 꼬부장한 할머니가 지팡이도 없이 걸어 나왔다.
봄날 꽃나무에 기댄 파란 하늘이 소금쟁이 지나간 자리처
럼 파문지고 있었다. 채울수록 가득 비는 꽃 지는 나무 아래
의 허공. 손가락으로 울컥거리는 목을 누르며, 나는 한 우
주가 가만가만 숨 쉬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 꽃들
의 길.
차마 벗어둔 신발 신을 수 없었다.
천 년을 걸어가는 꽃잎도 있었다. 나도 가만가만 천 년
을 걸어가는 사랑이 되고 싶었다. 한 우주가 되고 싶었다.
-숨은 꽃 찾기
벌겋게 달았던 회오리(산불)를 견딘 3월이, 구김살 다 벗으라고 꽃을 보냈습니다. 4월과 함께요. 막 얼굴을 씻은 듯 말간 복사꽃들도 “꽃 먹은 어린 여자아이”처럼, “명주 수건 두른 젊은 어머니”처럼, “허리 꼬부장한 할머니”처럼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시간과 공간” 사이 “벗어둔 신발 속에” 가득 쌓이도록요.
“가만가만 숨 쉬”면서 기다렸던 겨울의 꼬리를 벗어던지고 짧은 봄날 속 사유의 꽃을 만나 봅니다. 노란 생각, 초록빛 향유, 분홍빛 환상, 새하얀 고찰에 잠긴 천 년 같은 찰나를 반어(反語) 해 봅니다. 낭만적인 천 년으로 부풀어 봅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의 순리가 맞물리도록요. 그러다 보면 “봄날 꽃나무에 기댄 파란 하늘”처럼 봄꽃들이 주는 설렘이, 시에 관한 믿음이, 우주에의 교감과 소망이, 어쩌면 봄날 후의 먼 날까지 조용조용 받쳐줄 것 같습니다.
참, “천 년을 걸어”갈 나만의 봄꽃은 찾으셨나요? 마음속 봄이 동글동글 키워 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