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애향인 인터뷰[115] 고향집을 가꾸는 송상호 중앙방재㈜ 대표의 나의 살던 고향은

바쁜 일상에도 고향집 찾아 정원 가꾸기 “주말이 기다려집니다”

2025-03-28     황재천 기자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 증가 정책이 출산 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 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무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 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 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폐가 같던 시골집이 풍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중

태백에서 어린 시절 보냈지만 부친이 계신 풍기가 고향

고향의 옛 지명 ‘참남배기’의 정취를 되살렸으면

풍기역 뒤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정원이 축소되기 전 고향집 모습
정원내 주상절리 거석 (인도네시아산으로 반출 불가 조치 전 수입)

풍기역 뒤편의 서부3리엔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멋진 정원이 있다. 15년의 세월 동안 주말이면 정원이 가꾸어진다.

정원의 주인은 전문소방시설업체(소방시설공사점검 및 소방기자재, 위험물 설계)인 중앙방재㈜ 송상호 대표이다. 송상호 대표는 토요일이면 고향집을 찾는다. 부친이 살던 집이다. 그의 고향집은 지나가는 사람이 자꾸만 들여다보고 돌아보게 만든다. 정원 속에는 인도네시아 주상절리 거석과 큰 구상나무를 비롯,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다.

고향집이 있는 많은 출향인이 고향집을 보전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송상호 대표는 계속 가꾸어가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부친이 좋은 환경에서 사셨으면 하는 목적에서 시작한 고향집 정원 가꾸기는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3월의 폭설에 부러진 소나무 가지와 전정을 한 정원목 가지를 치우고 있는 그를 찾았다. 산업안전에서 명성이 높은 송대표지만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게 수수한 작업복 차림으로 일하는 중이었다.

바쁘신데 찾아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폭설에 우리집 소나무도 여러 개가 부러졌습니다. 여러 해를 두고 만든 수형이 망가졌네요. 나무들 가지치기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해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지난 폭설에 금선정 주변의 그 좋은 소나무도 많이 부러졌다는 소식에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은퇴하시고 돌아오시면 도시 생활에 익숙한 부인이 좋아하실런지요? 집이 한옥인데...(함께 웃음)

이 집은 상량문을 보니 1947년도에 지은 집입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잠시는 괜찮지만 아무래도 거주는 불편할 수도 있지요. 아내는 이곳에 친구도 없고요. 저는 강요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집에 왔다 갔다 하는 건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합니다. 편한 대로 하면 됩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셨나요?

저는 봉현면 두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태백에 취업하신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태백으로 이사했습니다. 당시 태백은 탄광으로 발전하는 곳이었습니다. 학교도 태백 장성에서 다녔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그곳에서 다녔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를 다녔습니다. 5년제였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고등학교와 전문대학 과정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향 친구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친구이지만 저는 그런 학교 친구들이 고향에 없습니다.

당시 태백은 고향과 비교해 어떤 곳이었나요? 고생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태백은 탄광으로 발전할 때였지요. 제 어릴 때 태백은 벌써 집에 수도가 나오고 전기로 불을 밝혔습니다. 쌀밥을 먹었고요. 방학이면 고향집에 왔는데 그때 고향은 쌀밥 구경하기 힘들었고 물도 샘에서 길러 와야 했고 호롱불 키던 시절이었습니다.

부친의 경제활동이 괜찮았나 봅니다?

아버지는 대한석공에 계셨습니다. 석탄을 캐시는 일은 아니었고 거기서 목공 일을 하셨습니다. 안정된 직장이었습니다. 자연히 집안의 생활 형편도 고향보다 더 좋았습니다. 일단 전기 수도 등 사회 인프라가 더 빨리 만들어졌으니까요.

봉현면 두산리에서 5살까지 생활하셨어도 워낙 어릴 때라 추억이 별로 없을테고... 주로 태백시에서의 어린 시절을 보내셨으니 영주에 대한 그리움이 별로 없지 않나요?

방학 때면 풍기에 왔거든요. 영암선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이곳에 친척들이 많이 살았거든요. 큰아버지가 송지향 향토사학자셨습니다. 송태욱 교감은 젤 큰집 장손입니다. 아버지도 태백 생활을 정리하신 후엔 현재의 이 집에 계셨고요. 아버지가 계신 이곳, 제가 태어난 이 지역이 고향이잖아요.

선친은 재작년 102세로 타계하셨습니다. 선친은 고관절을 다쳐 입원한 기간을 빼면 돌아가시기 전까지 누워지내지 않으셨습니다. 늘 허리 꼿꼿하고 정정하셨습니다. 넘어지셔서 고관절을 다치지 않으셨으면 지금도 건강하셨을 것 같아요.

주말이면 고향집을 방문 정원을 가꾼다

선친의 타계 후에 이 집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셨는지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부터였습니다. 아버지 뵈러 오는 김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을 가꾼지 15년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오지 않는 주중에는 아버지가 정원 돌보신 흔적이 있기도 했고요. 제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건 첫째 아버지로 하여금, 좋은 집에 사시길 바라서였고 또 저도 나중에 번잡한 도시와는 다르게 고향에 와서 지낼 수 있는 곳을 꾸미고 싶어서였습니다.

옛 어른들은 정원보다도 밭을 조금이라도 넓혀 채소를 심으려 하셨을텐데요?

예전 어른들이 그러셨지요. 아버지는 정원 가꾸기를 반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아들이 돈 많이 쓴다고 걱정하셨습니다만 돈이 얼마나 드는지 제가 말씀을 안 드렸거든요(함께 웃음), 저는 한옥인 이 집의 정원 가꾸는 게 재미있습니다. 방안에 쌓인 책 중 상당수가 정원 가꾸기입니다(방안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된 외국의 정원 관련 책이 많이 쌓여있었다).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을 땐 집이 폐가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혹시 직장 생활을 정원관리 하는 회사에 계셨거나 전공이었나요?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 졸업 후 바로 현재 계시는 지역인 울산으로 가셨나요?

정원관리는 취미입니다. 전공도 아니었습니다. 직장은 처음부터 지금 하는 일인 안전 설계 관련 회사였습니다. 졸업 후 울산으로 가서 취업한 곳이 금호석유화학인데 그곳에서 안전팀장으로 퇴직하기 전까지 계속 안전 관련 일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시다 창업하셨군요?

네. 약 16년 석유화학 공장에서 공장 안전 설계 업무를 하다가 안전팀장을 끝으로 창업했습니다. 창업한 회사의 사업도 안전 관련 사업입니다. 안전 설계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사업이라 보람도 큽니다. 화공안전기술사로서 또 중앙방재㈜ 대표로서 점점 더 안전한 사업장으로 변하는 우리나라에 저도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혹시 자녀에게 가업 승계 중에 있나요?

아들이 현대그룹에 다니는데,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그런 의사를 비치지 않고 있습니다. 직장 생활이 더 편할 것 같아요. 아들에게 경영권을 이어 받으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몇 년 더 일할 수 있고요.

'참남배기' 지명을 낳은 참나무 군락지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참나무
고향집에 있는 정원 관련 외국어 서적들

참.. 이곳을 옛날에 ‘참남배기’라 부르지 않았나요?

맞아요. 참나무가 많았습니다. 그 많던 참나무가 베어지고 이젠 사과 과수원 등 밭으로 바뀌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참나무가 우리 마당에 있습니다. 제가 애지중지합니다. 참남배기가 되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옛 흔적이 없어지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별로 쓰지 않는 건물 짓는 것보다 관광객 유치에 더 효용이 높을 겁니다.

이 방 저 방에 책들과 LP판이 엄청 많던데요?

책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쌓아 두고 있습니다. 정원 가꾸기, 나무나 꽃 가꾸기 그런 책들이 많지요? 안전 설계 등 사업 관련 책은 전부 울산에 있습니다. 연못 옆에 건물을 하나 더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연못이 꽤 컸습니다. 몇 년 전 집 앞으로 큰 도로가 나면서 집터와 연못이 약 5~6미터 밀려 축소되었습니다. 여러 해 가꾼 정원도 그때 축소되었고 옛 돌담이던 담도 지금의 담으로 바뀌었습니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많이 놀았는데 수달이 와서 다 잡아먹었습니다.

수달이 이곳까지 침범했군요. 이 멋진 정원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던데 개방을 하시는지요?

그럼요. 제가 들리는 주말은 정원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주변 이웃이나 정원을 감상하고 싶으신 분은 오시면 됩니다. 저는 이 정원이 나중에 정원 자체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로 관리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상호 중앙방재㈜ 대표 프로필>

- 봉현면 두산리 출생

- 강원도 태백시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

- 삼척공업고등전문학교(5년제) 화공과 졸업

- 금호석유화학 근무 (안전팀장 재직 시 창업으로 퇴사)

- (현) 울산 소재 중앙방재㈜ 대표 (1995.3.15.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