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시인의 시영아영[156] 백비탕

*시영아영- 시를 읽으면서 나를 되돌아본다는 뜻입니다

2025-03-07     영주시민신문

             백비탕

                                    -엄재국

 

누가 불 지폈을까?

부글부글 살구꽃 한 세상이 담장을 넘쳐 흐른다

건더기 없으면 넘치지 않을 맑은 물의 봄

사람들은 봄빛에 지쳐 쓰러지는데

약 없는 세상

누가 저 담장 너머

지독한 봄을 여태 끓이고 있을까?

 

-봄, 봄

시로 보는 풍경화 한 점을 새봄에 걸어봅니다. 언어의 경계를 허문 자유와 새로움이 “넘치지 않을 맑은 물의” 맛으로 눈부신 봄을 그리고 있습니다. 봄의 감흥을 동그랗게 말아 올리며 꽃밥 뽀글뽀글 끓이고 있습니다.

실핏줄 터져 소화도 안 되는 겨울 끝자락, 한 뼘 넘는 눈이 내려 세상이 타원으로 휜 아침(글 쓴 시점)에 백비탕(맹물을 백번 끓여 임금님에게 진상한 것-동의보감)을 훌훌 들이킵니다. 겨울의 아랫배가 꺼지기 전에, “저 담장 너머”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봄을 펼쳐서 출발선에 섭니다. “약 없는 세상”이지만 “봄빛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새로운 기운만큼은 또 지펴야 하니까요.

봄의 생동감은 허락받는 것일까요, 허락하는 것일까요. 봄꽃들은 어디쯤에서 꿈을 이룰까요. 마음을 죄었다 풀었다 하는 잔설을 뚫고, 슬며시 걸어 나온 봄꽃의 향내가 사뿐히 감기는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