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애향인 인터뷰 [112] 대한변리사회 김두규 회장의 나의 살던 고향은

고향 후배들 진로 결정 조언: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후회하지 않아

2025-02-28     황재천 기자

여느 지방 중소 도시처럼 영주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어 지방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당국이 각종 인구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구증가 정책이 출산장려와 귀농 귀촌 운동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귀향운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머물고 있는 지역 출향인은 대략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에 본지는 이들 출향인이 은퇴 후 자신이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륜을 귀향을 통해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애향인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애향인 인터뷰를 통해 인구증가를 위한 귀향정책과 지역발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편집자 주>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우리나라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노력

계엄과 탄핵 블랙홀서 빠져나와 국가 기술경쟁력 강화 제도 개선 노력해야

낡은 방식이나 모습 고수가 아니라 영주 옛 선비의 진취적 정신을 살려야

2024년 3월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취임한 김두규 박사는 젊은 회장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는 군 제대 후 바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 후 특허법인에서 해외 관련 업무를 주로 하다가 변리사 동료이기도 한 아내와 함께 첫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했다.

세인트 루이스 워싱톤 대학에서 석사 공부 후 부부가 공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후 장학생으로 박사과정에 선발되고 학위 취득 후 미국 변리사 업계에서 근무하는 등 7년 동안 활동하다 귀국했다. 그의 귀국 이유가 아들들이 미국인이 될 것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할 정도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그는 대학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며 서울대에서 해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적재산권 과정 설계에도 참여하는 등 글로벌 차원의 교육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HP에서 Senior IP Manager로 재직하며 43대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우리나라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어디에서 태어나셨나요?

영주 구성산성 아래에서 태어났습니다. 동네는 많이 바뀌어 살던 집이 어딘지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이산면 석포에 사시다 철도 업무 하시면서 영주로 이사하셨는데, 어릴 적에 이사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추억의 장소이겠군요. 언제 출향하셨는지요?

고등학교 졸업 후 KAIST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산 거지요. 학교는 영일초등학교, 영광중학교, 영광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017년 한일변리사회 이사회(2017.7.17)
유럽 변리사회와의 교류 출장 시

지난해 대한변리사회 회장으로 선출되셨는데 젊은 회장이시지요?

예, 젊은 편입니다. 그러고 보니 회장단도 좀 젊어졌습니다.

변리사 업무가 고향 같은 지역과 관련이 어떤가요?

변리사 업무는 대부분 수도권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는 특허 관련 업무는 별로 없고 상표, 서비스업 표장 정도가 주로 해당합니다. 변리사 업무가 있더라도 많지 않아서 영주에서 활동하시는 변리사는 없고 대도시의 변리사가 처리할 겁니다. 고향이 크게 발전하고 변리사 업무도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변리사 업무는 연구 활동이 왕성한 곳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향도 R&D(연구개발)활동 육성이 이루어진다면 변리사 업무도 많아질 것 같습니다. R&D가 꼭 서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부 R&D 예산 삭감과 연구 인력 해외 유출 발생이 있어 큰 문제란 말도 나오던데...

지난해, R&D 예산 삭감은 큰 파동이었습니다. 연구개발 활동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금년 R&D 예산이 깎인 것 같지 않지만 지난해 받은 타격의 여파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연구개발자들의 해외 유출 문제는 그전에도 있었습니다. 국내 유입 연구개발자도 있는 것이고요. 연구개발자들이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셨는데 법의 영역인 변리사 업무로 진로를 정하셨군요.

변리사는 대부분 이공계 출신입니다. 변리사란 직업이 있다는 건 대학 선배에게 놀러 갔다가 알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다른 업무를 해보지 않았습니다. 군 제대 이틀 전 변리사로 진로를 정하고 제대하자마자 영주 집에 짐을 옮기고 상경해 친구 자취방에서 변리사 시험공부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본격 수험 준비는 의자를 책상에 올려야 잘 자리가 만들어지는 정도로 작은 고시원으로 옮겨서 했습니다. 제가 밥을 많이 먹는 편인데, 안동에서 오신 아주머니의 식당에서 고향 사람이라고 밥을 많이 주셨던 추억도 있습니다. 제대하고 바로 시험 준비해서인지, 군기가 바짝 들어 공부했다고 할까요(함께 웃음). 1년 4개월 정도 공부하고 98년도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모교인 영광고 후배 대상 특강(2016.11.11)

시골에서 KAIST를 가고 또 변리사도 단기간 합격하시고 공부 역량이 대단합니다. 진로와 관련해 고향 후배들에게 조언하신다면?

앉아서 꼼짝 안 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고향에서 만들었나 봅니다. 진로 관련 무언가를 할지 말지를 고민한다면 하라고 합니다. 고민이 있다는 건 하고 싶긴 한데 걱정이 있다는 겁니다. 진로 선택을 되돌아볼 때, 해서 하는 후회보다 안 해서 하는 후회가 대부분입니다. 하고 싶으면 하라고 저는 조언합니다.

고향의 후배들이 진로 선택 시 참고했으면 하는 말씀이군요. 고향에는 자주 오시는지요? 형제자매 중 고향 지키고 계시는 분도 있고요?

1년에 한 네다섯 번 정도 갑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영주에 계십니다. 제가 5남매 중 막내입니다. 누님 세 분 중 큰 누님이 영주에 계속 살고 있고, 작은 누님이 대구 쪽에 있다가 고향으로 귀향했습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도 여럿이고요.

50대 초반에 대한변리사회란 큰 단체의 회장이고 나이로 젊단 생각도 듭니다만 동년 세대에게 귀향을 권유한다면?

저 같은 경우는 하는 일이 서울에서 주로 일어나니 귀향은 계획하기 힘듭니다. 일률적으로 우리 세대의 귀향이 힘들다고 할 수는 없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서도 본업이나 새로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세대가 귀향을 결정하는데 참고가 되는 정보와 도움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결정은 자기 책임이지만 귀향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주는 지자체나 고향 사람들의 노력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녀 세대가 아빠의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시대가 아니고 강요하면 역효과도 납니다. 가족 여행을 고향으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고향의 지자체 또는 관련 단체가 만들면 가족 여행 또는 체험을 통해 영주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레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변리사회 단체장을 맡으셔서 책임의 부담도 클 것 같습니다만...

하고 싶은 바가 있어 공약으로 내 걸고 1년을 뛰었는데 노력만큼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습니다. 임기의 반이 되었는데 하고 싶은 큰 줄기의 일이 법령 개정이 필요한 일로 진행이 빠르지 않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는 계엄령 후유증으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계엄을 둘러싼 논쟁이란 블랙홀에 빠져있어 지적재산권 관련 법령 개정 논의 진전이 답보 상태입니다.

나라 전체가 계엄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매우 빠른 시대에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문제가 크지요?

시국 문제 때문에 굉장히 소모적인 쪽에 에너지가 집중되어 답답합니다.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게 나라 발전에 매우 필요합니다.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 개선에 애를 쓰고 있는데, 시국이 안정되면 좀 더 빨라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고교 친구들과 소백산 일출을 배경으로

지역소멸론이 고향의 화두입니다. 고향의 발전과 관련, 조언을 하신다면?

서울에서 고향 모임에 가면 50대 초반인 제가 거의 막내입니다. 고향의 인구가 계속 감소한다는 소식도 듣고 있습니다. 현 거주 인구의 두 배 가까운 사람이 출향해 있고요. 영주가 문화적으론 좀 보수적이라 젊은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에 쉽지 않은 면이 있는 듯합니다.

외지 출신들도 더 따뜻하게 품어주면 좋겠고요. 영주 지역 출신 선비들이 진취적인 분들이었잖아요. 옛 방식 고수가 아니라 선비들처럼 진취적으로 더 나은 길을 찾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배타적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요.

옛 방식의 고수가 문제일 수 있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옛 방식이나 모습이 영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옛 옷을 입고 명심보감 한 구절을 쓴다든지, 제사를 준비하고 지내는 활동을 한다든지 그런 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거든요. 오히려 신선할 수 있죠.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현 업종 일을 하시면서 보람이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면?

R&D 결과물 보호의 효과를 보는 것입니다. ‘특허 잘 받아서 이렇게 사업에 도움이 되었다.’ 같은 말을 들으면 가장 보람입니다.

 

 

 

 

 

 

 

 

 

<김두규 변리사 프로필>

- 영주 영일초, 영광중, 영광고

   KAIST 기계공학과 졸업

   Washington University 로스클,

   법학석사, 법학박사

-(현) 대한변리사회 회장(43대)

   HP, Senior IP Manager

-(전) 서울대 법대 강의교수 / 성균관대 겸임교수 / 한국대학기술이전협회 멘토

   미래창조과학부 자문위원

   법무부 자문위원

   국제라이센싱협회 사무국장/ 아시아태평양 부위원장

   특허법인 우인 파트너 변리사

   법무법인중앙

   리인터내셔널 IP & Law Group

   Kang Intellectual Property Law, LLC(미국)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전문위원, Law School 지재권법 강사

   상명대 지재권법 강사

   가치와특허법률사무소 대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기술사업화아카데미 기획자문위원

   한국연구재단 KIC 자문위원

(저서) 지적재산권 관련 법규 개정 방안, 판례, 소송 등 지재권 관련 논문 다수

(수상) 교육부장관 표창